실리콘밸리 한인들

무지한 2013. 3. 12. 16:14



    ▲ "첫날의 감격 잊을 수 없어 지금도 벤처한다"

    우리 기술로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 실패한 벤처신화를 얘기할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원조격인 인터넷 커뮤니티 싸이월드와 함께 거론되는 인터넷 전화서비스 다이얼패드.

    다이얼패드 신화는 안현덕 씨가 1997년 새롬기술의 미국 지사장으로 실리콘밸리로 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서울대 84학번 동기로 LG에서 근무하고 있던 조원규 씨와 당시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공부를 하고 있던 조 씨의 매제 김 씨를 이곳으로 불렀다.

    이들은 이곳에서 엔지니어 4명과 함께 비디오 컨퍼런싱(화상회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하지만 1997년말 외환위기 때문에 새롬기술의 지원이 거의 끊긴 상태에서 1년간 고생을 하게 된다.

    엔지니어들에겐 급여가 일부 지급됐지만 안 씨를 포함해 3명에겐 거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김 씨는 1년간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다 1998년 말 크리스마스 휴가 때 인터넷 광고단가는 올라가고 반대로 전화비용은 내려가는 것을 보고는 광고를 보여주는 대신 공짜 전화를 제공하는 수익모델이 떠올랐다.

    김 씨는 "이 기술은 새롬기술의 지사로 있으면서 개발했던 비디오 컨퍼런싱 소프트웨어와 원천기술은 같은 것이었다"며 "인터넷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무료 이메일인 핫메일을 보고 수익모델 아이디어를 냈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때도 이미 인터넷전화가 있었지만 내려받기(다운로드)를 해서 설치해야하는 등 복잡한데다 통화음질이 좋지 않은데도 유료였다.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사용하기 불편한데다 돈을 주고 쓰기에는 음질도 나빠 기술은 있었지만 실용화되지 않았던 것.

    이에 비해 다이얼패드의 모델은 광고를 수익모델로 한 무료전화였고, 디이얼패드 홈페이지에서 곧바로 전화를 걸 수 있는 웹기반이어서 그만큼 편리했다.

    "수익모델이 떠오르자 사흘 잠을 설친 뒤 새해 이튿날 두 형(조씨와 안씨)을 만나 창업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한달간 쫓아다니며 졸라 끝내 허락을 받아냈다"

    최고경영책임자(CEO) 안현덕, 최고기술책임자(CTO) 조원규, 마케팅담당 이사 김도연과 엔지니어 4명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1999년3월 한국계 투자회사에 찾아가 프레젠테이션(PT)을 해서 자금과 사무실을 투자받아 실리콘밸리 동북부에 있는 포천드라이브 거리에 있는 한 건물에서 다이얼패드를 창업하게 된다.

    김 씨와 함께 처음 창업한 사무실을 찾았으나 김 씨는 처음에는 제대로 찾지 못했다.

    김 씨는 "솔직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며 "아마도 (가본 지) 10년은 된 것 같다"고 했다.

    투자회사가 제공한 사무실은 2개로 나눠져 있었다. 4∼5평 크기의 큰 방은 4명이 사용하고 2∼3평 크기의 작은 방에는 3명이 사용했다.

    6개월의 개발기간을 거쳐 같은 해 10월13일 첫 제품을 출시했다.

    출시에 앞서 주변 사람들을 테스터(시제품을 미리 사용해 피드백을 주는 사람)로 해서 미리 사용하게 한 결과, 반응이 좋아 기대가 컸다.

    하지만 당초 계획했던 13일 자정에는 제대로 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했다.

    잘못된 부분을 모두 고친 후 새벽 4시에야 겨우 서비스를 할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

    출시 직후 가입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성공적으로 출시를 마치고 새벽 5시에 귀가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길을 걷는데 무엇인가를 한 기분. 이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지금도 벤처를 한다"

    3개월 만에 이용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당초에는 몇만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곧바로 투자자들이 밀려들었다.

    유명 벤처캐피털 등 3곳으로부터 2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사무실도 더 넓은 곳으로 이전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해졌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유명 인사가 됐다.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가입자 수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TV 출연요청이 들어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언론들도 앞다퉈 다이얼패드를 다뤘다.

    회사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가입자 수가 최대 1천400만명까지 늘어났고, 투자받은 자금 규모가 6천만달러에 달했으며, 직원 수도 170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급성장한 만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