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한인들

무지한 2013. 4. 3. 18:17

실리콘밸리 들여다보기---4



    이처럼 외견상 소박한 전원도시 풍경의 이 실리콘밸리는 사실 미국을 넘어 글로벌 최대 부촌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2011년 미국 연방 인구센서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리콘밸리의 한복판인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가계 가운데 미국내 소득 상위 5% 내에 드는 비율이 15.9%나 됐다.

    미국내 소득 상위 5%이내에 포함되려면 매년 19만1천만달러(약 2억7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

    물론 샌타클래라 카운티보다 소득 상위 5%의 비율이 더 높은 지역이 있다.

    뉴욕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는 코네티컷주 남서부 지역이다.

    지난해 말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던 샌디훅 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또다른 실리콘밸리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프리몬트 지역의 경우는 소득 상위 5%의 비중이 13%나 돼 워싱턴DC(14.1%)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실리콘밸리 지역이 부촌비율이 높은 지역 가운데 상위 2위와 4위를 차지한 것으로 그만큼 부자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누가 부자인지를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이미 소개했던 이처럼 외견상으로는 부자들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도드라지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옷차림만해도 그렇다.

    스탠퍼드대로 이어지는 팰로앨토의 유니버시티 애브뉴에 있는 커피숍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비록 낡아빠진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다 텁수룩한 수염까지 길러 지저분해 보이지만 백만장자인 경우가 많다.

    이른바 IT업계 '긱스'(Geeks,괴짜들)의 전형적인 유니폼(?)이 바로 구글이나 애플의 행사 등에서 받은 티셔츠에 청바지 또는 반바지차림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같은 긱스들이 넘쳐나는 페이스북 IPO로 본사 직원 가운데 3분의1에 해당하는 1천명 정도가 백만장자가 됐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이런 부촌에 아시아계가 넘쳐나고 있다.

    2010년 인구센서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컴퓨터 프로그래머, 시스템 애널리스트,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실리콘밸리내 첨단기술 관련 일자리의 50.1%를 아시아 계가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백인은 40.7%였다. 이어 히스패닉(4.2%), 흑인(2.3%), 기타(2.7%) 등 순이었다.

    10년전인 2000년에는 백인이 50.9%로 가장 많았으며, 아시아계가 38.7%였다.

    백인 비중이 줄어든 만큼 아시아계의 비중이 늘어났다.

    이에 비해 히스패닉과 흑인은 각각 4.6%와 2.8%로 큰 차이가 없었다.

    아시아계 젊은이들은 이른바 스템(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분야의 강력한 배경을 가지고 성장한 후 첨단기술업계로 진출하면서 백인이 다수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아시아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도 많지만 현지 2,3세 출신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민자 자녀인 이들은 현지 중.고교에서 대부분 수학이나 과학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둬 이른바 명문대학에 진학해 수학한 후 이곳에 돌아오고 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내 중.고교에는 인도계와 중국계가 상위권을 거의 휩쓸다시피하고 있다. 이는 사립과 공립학교에 모두 해당된다.

    이들 학교 학부모의 교육열은 이른바 강남 '대치동'을 뛰어 넘는다고 현지 동포들은 혀를 내두른다.

    애플이 자리하고 있는 쿠퍼티노 학군은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명문학군으로 통하는데 아시아계가 70∼90% 수준에 이른다.

    이 지역은 각종 학원들이 즐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지 학부모들은 비싼 학원비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녀들의 방과 후 활동을 위해 다른 지역에 있는 유명 강사를 직접 초청하기도 한다.

    최근 쿠퍼티노 지역에서는 한국계를 중심으로 대학진학에 필요한 자녀들의 과외활동을 위해 한국에서 국가상비군 출신의 유명 강사를 초빙해 양궁강습을 받기도 했었다.

    결국 백인들은 이들 아시아계의 교육열에 밀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이 일대 또다른 명문학군으로 알려져 있는 스탠퍼드대학 인근 팰러앨토 학군도 쿠퍼티노 학군 만큼은 아시아계가 많지는 않지만 요즘 아시아계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곳은 현지 백인들도 아시아계 못지 않은 교육열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에서 대학진학과 관련된 각종 행사는 아시아계 뿐아니라 백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조금만 늦게 가면 아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이곳에서는 백인 부모들도 진지한 모습으로 수첩을 꺼내 들고 대학진학 등과 관련된 내용을 메모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연히 이 곳도 한국 강남과 마찬가지로 선행학습 또는 심화학습이 만연돼 있다.

    수학의 경우 한 단계 또는 두 단계 월반하는 학생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3년이나 앞선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고교 1학년 때 이미 대학생 수준의 수학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와 관련된 일화 한토막.

    팰러앨토내 터먼 중학교는 3년전까지 수학 경시반이 없었다.

    하지만 한 중국계 아빠가 회사까지 그만두고 경시반을 구성해 이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엔지니어 출신인 중국계 H씨는 벤처기업에 참여해 상당한 재력을 얻은 뒤 아들의 공부를 지원하기 위해 아예 회사를 그만둔 것.

    그는 자녀에게 직접 수학을 가르치는 한편 같은 학교 내 학생들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아예 경시반을 만들어 경시대회가 있을 때마다 직접 차를 몰고 이들을 인솔해 참가하고 있다.

    심지어 대회 전에는 경시반 학생들을 자신으로 집으로 불러모아 합숙(?)훈련까지 시킨다.

    중국계 학부모 가운데는 H씨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자녀를 가르치는 학부모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현지 학교들도 이에 부응해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의 수준과 강도를 타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그러다 보니 학교 숙제만을 하기 위해서도 새벽시간까지 공부를 해야 할 정도.

    팰러앨토 학군에 있는 건(Gunn) 고교에서는 2009년과 2010년 학생들이 인근 열차에 뛰어들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됐다.

    현지 언론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뤘다.

    물론 그 이유가 공부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학교 측에서는 이를 계기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과제물을 줄이기로 결정한 만큼 학업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건고교의 학부모 간담회에서 한 체육교사가 "이 학교 학생들은 학문적인 부분은 학부모들이 열성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어 체육시간에는 학생들의 체력적인 부분과 함께 학업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이 같은 교육열에도 아시아계는 아직 이른바 '대나무 천장'에 갇혀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 고교에서 성적 상위권을 휩쓸고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기업에도 비교적 쉽게 취업하지만 거기까지만이라는 것.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실리콘밸리에 처음 발을 디딘 외지인은 이곳은 미국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워낙 전세계 인재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보니 길거리에는 다양한 인종이 넘쳐나고 아시아와 중동, 남미 등 전세계 전통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모두 모여있어 마음만 먹으면 전세계 곳곳의 다양한 맛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시리얼 안트러프러너(Serial entrepreneur)로 이름이 높은 한인 창업가 조너선 리(53.한국명 이종민)씨는 이처럼 인종차별이 없는 다문화가 공전한다는 점을 실리콘밸리의 장점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물론 아시아계 약진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첨단기업들이 미국인을 채용하지 않고 전문직 단기취업비자 H-1B를 이용해 아시아계 인력을 수입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특히 흑인이나 남미계는 물론 백인들마저 밀리고 있는 것에 대해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구글이나 애플 등 미국내 IT기업들은 버럭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민법 개혁과 관련해 아시아 지역의 고숙련 엔지니어를 더 많이 수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