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록의 사진들

한가람 2013. 2. 9. 22:40

소의문(門)

속칭 서소문(西小門)이라고도 한다. 숭례문(崇禮門)과 돈의문(敦義門) 사이, 즉 지금 서소문동 큰길에 위치 하였던 서남
간문으로 일반적인 통행로가 되었고, 광희문(光熙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성밖으로 운반하던
통로 구실을 하였다.

이 문의 창건 당시인 1396년(태조 5) 9월에 다른 성문과 함께 지어졌을 때는 소덕문(昭德門)이라 하였다. 이 부근은 지대
가 아서
태조 때 토성을 쌓았던 곳이며, 1422년(세종 4)에 이것을 석성(石城)으로 개축한 것으로
미루어 소덕문으로 고쳐

서 지었으리라 믿어지나 확실한 기록이 없다. ≪경성부사 京城府史≫에 1472년(성종 3)에 예종비(睿宗妃) 한씨(韓氏)의

시호를 소덕왕후(昭德王后)라 한 까닭에 이것을 피하여 문 이름을 소의문으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1472년에 ‘소의’
고쳤다는 것이 통설로 되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1738년(영조 14)에 문루(門樓)를 건축하였는데, 석문을 개축할 때 왕이 문명(門名)을 고치라는 명을 내리고, 1744년
에 문루를 건축한 뒤 문명을 소의로 고쳤다는 것이≪영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문 이름이 소의로
고쳐진 것은
1472년이 아니라 영조 때였음이 확실하다.


남아 있는 사진을 통하여 그 모습을 대략이나마 살펴보면, 광희문과 마찬가지로 성보다 약간 높게 석축(石築)을 쌓고 가운데
홍예문(虹霓門) 하나를 내어 통로를 마련하였다.
석축 위 4면에 나지막하게 벽돌로 쌓은 담을 두르고 양옆에 출입문을 세워
문루로 드나들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구조의 그 상세함은 알 수 없으나 단층 겹처마 팔작
지붕의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붕 위 용마루에는 용두(龍頭), 내림마루에는 여러 상(像)을 각각 장식하여 건물에 위엄을
더해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1974년에 복원된 광희문과 비슷한 형식이었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문은 1914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하여 그 부근의 성곽과 함께 완전히 철거되어 그 형태는 사진으로 겨우 전해지고 있다. 
<
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울성곽과 성문. 출처:경향신문
 

  △ 1890년대 초중반의 소의문, 소덕문(昭義門, 昭德門) 속칭-서소문(西小門) 外측 모습.


 
 左 위사진과 동일.                                          右 소의문(서소문) 김영택화백의 펜화 30 x 40cm   2007년. 출처:중앙일보
                                                         


  △ 소의문 內측 모습


 △ 소의문(昭義門). 사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 사진도 서소문이라고 설명 되어 있는데 확장된 길과 배수로가 있는것이 다를뿐 문루 좌우 성곽 상단부의 훼손된 
    부분을 볼때 
첫번째 사진과 같으며 오른쪽 초가의 모습이 같은 모습이다.

 △ 소의문, 또는 소덕문(昭義門, 昭德門) 속칭:서소문 바깥쪽 모습.   
  성문 안팍 왼편에 성곽이 아닌 석축이 보이며,
왼쪽 성곽너머 안쪽에 수평으로 된 건축?구조물과 굴뚝으로 보이는 것이 
  있으며 
전봇대를 보면 구한말이나 일강점기 초의 모습으로 추정된다오른쪽 성곽의 나무 모습도 보이며, 성문앞길 오른
  쪽의 지형이 여느
성문주변과 다른 모습이다.


 △ 1926년 서소문 터. 이미지출처:블로거 봉워이님

 

  △ 1926년 소의문[昭義門] 서소문 터.                            △ 소의문 [昭義門] 터. 사진출처:네이버 백과


 서소문(西小門) 이라고도 불리운 소의문(昭義門)은 조선시대 서소문동(현 중앙일보사옥 야외주차장 부근 추정) 
 큰길에 있던 서남간문(西)으로,
일반적인 통행로이면서
광희문()과 함께 시체를 성 밖으로  옮긴 통로

 구실을 하였다.
 
서소문은 1915년 일제강점기의 경성도시계획에 따라 근처 성곽과 함께 철거되어 사진으로만 그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