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록의 사진들

한가람 2013. 2. 9. 23:37

 4대문과 4소문
 

서울의 한양도성은 1396년(태조 5) 축조, 1422년(세종 4) 중수되었는데, 처음에는 석성과 토성이 섞여 있었으나 세종이
중수할 때 전부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이 성곽에 사대문과 사소문이 있었는데, 이것을 통틀어 팔대문이라 하였다.
 
즉, 도성을 축조할 때 정동의 흥인지문(동대문), 정서에 돈의문(서대문), 정남의 숭례문(남대문), 정북의 숙청문(북대문)

등의 사대문을 세우고, 동북의 홍화문(중종 6년 혜화문으로 개명, 동소문), 서남의 소덕문(후에 소의문으로 개명, 서소문),
동남의 광희문(수구문),
서북의
창의문(자하문) 등의 사소문을 세웠는데 이 문들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창의문(彰義門) - 북소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창의문은
도성 4소문의 하나로 태조5년(1396) 도성을 쌓을 때 건립되었으나, 태종 13년(1413)
풍수설에
따라 숙정문과 함께 폐쇄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문루는 영조17년(1741) 세운 것으로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목조 문루는 튼튼하고 정교하며, 석문인 홍예는 아담하다. 
항상 숙정문(북대문)이 닫혀있어 북쪽의 대문역할을 했었다.
문에는 지금도 성벽의 일부가 연결되어 있고, 현재 서울 성곽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래 모습으로 보존되어 남아 있는
창의문은 우리에게는 자하문으로 더 익숙하다.

조선시대에 이 일대를 자하동이라고 해서 자하문(紫霞門)
 으로 불리워졌고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 1800년대 말 창의문(자하문) 4소문 중 유일하게 보존된 창의문 모습. 문루아래 벽돌이 훼손되지 않은 모습이 보인다. 
     사진 촬영을 한 사람의 주문? 때문인지 지게에 짐을 지고 멈춰 서있는 모습이다.

북대문(숙정문)이 항상 닫혀있어 창의문(북소문)은 경기도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왕래 했기에 북대문의 역활을 해온 문이며, 인조반정의 세력들이 도끼하나로 대문을 부시고 들어와
궁을 장악하여 인조를
임금으로
모시는 쿠데타를 성공시킨 유래가 있는 곳으로서, 누문 다락에는 인조반정 때의 공신의 명단을 적은 게판(揭板)이
있다.
 


  ▲ 1892년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속칭 자하문(紫霞門) 외측. 단청 모습도 희미하게 보인다.

  ▲ 담쟁이 넝쿨은 홍예부분까지 덮혀 더 무성해지고 문루의 성곽은 조금 파손된 모습이다. 

 

  ▲ 1910년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속칭 자하문(紫霞門)밖, 지금의 세검정쪽에서 본 모습.
     담쟁이 넝쿨이 성곽에도 덮혀있는 모습이 보인다.


  ▲ 1907년 창의문 속칭 자하문.  시대상을 잘 대변하는 집세기(집신) 상점이 보이고, 서양인이 말을타고 갓을 쓴
     사람이 꼬삐를 잡고 말을 끌고 있다.
(설명에 의하면 외국 공관원 이라고 표시됨) 
 

  ▲ 4소문 중 하나인 북소문(창의문)을 통행하는 사람들 모습 중에 말을 탄 사람도 보인다

 

  ▲ 1890년대  창의문과 성곽. 당시의 성곽은 높아보인다. 
     왼편이 자하문 밖, 변하지 않은것은 북악산(백악산)모습
(맨 위에 배열할려다가 여기에...)


북대문으로 칭하는 숙정문의 통행을 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풍수설에 따라 금했다고는 하나 가장 큰 이유는
북대문 안쪽은
바로 경복궁, 창덕궁 등이
위치해 있어 무엇보다 궁의 수비에 어려움이 따를것이고, 지형상 산악에 위치해 있는 숙정문을
이용하기란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조선말기와 일제 치하에서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었던 창의문은 산악과 도성 주변의 개발에 저해 요인이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이고, 4소문 중 위의 사진에서 보듯 구한말과 일제하에서도 사람들의 왕래가빈번하고
실직적인 북대문의
역활을 한 창의문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으로 부터 45년 전 1.21 사건에서 보듯 1968년 1월21일 밤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중무장한 북한 공작원 31명이 서울의
이곳
침투했다가
김신조만 생포되고 나머지는 사살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패한 사건을 잘 알것이지만 소위 말하는
김신조 루트 라는
것이 있다. 
그 일당들은 주로 산악지형인 북한산- 북악산을 통해 아무런 저지(沮止)도 받지 않고 이곳 자하문(창의문)까지 왔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한 끔찍한 그 사건,,,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그 뒤 경비가 강화된 그곳 북악산 능선길...
 
얼마전 그 루트를 개방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잘 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안위를 위해
대문을 만들고 성을 쌓고 그곳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조선시대때 사람들 만큼 감지하지 못한 현세(現世)
사람들의 무사안일주의적(無事安逸主義) 행태는 더이상 되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필자의 생각)

년대표기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시고, 숙정문(북대문) 폐쇄로 인해 동소문(혜화문)도 일부 북대문 역활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아래는 최근의 창의문 모습

  ▲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속칭 紫霞門).

  ▲ 옛과 같이 담쟁이가 덮고 있는 외측 모습. 
 


 ▲ 자하문과 성곽. 출처:네이버백과
  

  ▲ 창의문(彰義門) 외측. 
 

  창의문(彰義門)의 내측.

 

청운동에서 세검정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자하문(창의문)고개를 의존했다가 1986년 8월 30일 자하문터널이 준공되어

세검정을 경유해 홍제동 방향과 구기동, 평창동, 정능 방향을 가기 용이해 졌다.
이곳 창의문도 다른 소문처럼 지대가 낮은 곳에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원형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
 
서울 한양도성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지 한 달도 못되어 한양 천도계획을 명하고, 태조 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鄭道傳)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 한양도성을 수축
하기 시작하였다.


서울 한양성곽은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59,500자(약 18.2km)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 2월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고, 가을 농한기인 8, 9월의 49일 동안에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구역을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과 사소문을 준공하였다. 

그 후 27년이 지나 세종은 서울 한양도성을 전면 석성(石城)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사업을 벌였다.

세종 4년(1422) 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고, 이 공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지금 서울 성곽의 기본 골격이다

이후 서울 성곽을 재정비했던 숙종 30년(1704)까지 260년간 서울 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

본래 서울 한양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제구실을 하지 못해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기 때문에 성곽 자체는 전란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다.
1704년,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 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 성곽이다.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에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를 부설하기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2006년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서울 한양성곽을 가능한 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출처 : 북악산 서울성곽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