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록의 사진들

한가람 2014. 8. 6. 17:24
서울 한강과 주변의 옛 모습 - 8

18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주제별이 아닌 년도순으로..

 


1968년 제방완공 직후의 여의도. 서울신문


1968년 개발중인 여의도 윤중제 공사완료

 

1968년 5월 29일 윤중제 완료. 밤섬의 자갈과 모래를 퍼다가 쌓은 윤중제 오른편은 샛강


여의도 제방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김현옥 서울시장.

‘비상용 활주로’ 5·16 광장… 거대한 집회장소 기억 남기다
밤섬의 저주’였나. 밤섬 폭파 후 2년여 흐른 1970년 4월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명이 죽고, 39명이 다쳤다. 공교롭게도 밤섬에서 강제 이주한 주민들이 사는 밤섬 마을 바로
옆에서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건설은 나의 종교’를 외치던 김현옥은 물러났다. 같은 해 10월
여의도 한운데에 12만 평 규모의 텅 빈 대광장을 만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 졌
다. 여의도 계획에 잡혀 있는 상업·업무지구를 동서로 나누라는 허탈한 지시였다. 여의도 입체
도시 건설의 꿈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5·16광장’ 건설로 여의도 계획은 뿌리째 뒤틀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1971년 8월 서울시는 서울시청사를 1976년까지 여의도에 건립하며, 여의도 전역을 미관
로 지정하고, 통행금지 해제지역으로 지정하며,
여의도를 통과하는 지하철 2호선을 건설
내용의 새로운 여의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김수근보다 더 허황했지만 불가피했다.
예산은 50여억원인데 수입은 국회 제공 부지 10만평을 평당 1만원에 판 10억원이 전다. 
대법원 지구로 예정된 땅 전부와 시청이 들어설 땅 절반에 시범아파트를 지어 팔기로 다. 
후임 양택식 시장을 비롯한 시 간부들이 거리나서서 시범아파트를 선전하는 홍보단을 돌
렸다. 분양이 쉽지 않았다. 서울시민들은 11일만에 급조한 여의도 제방의 안전이 미덥못했
고  모래섬 에 사는 것을 꺼렸다. (생략)
서울신문 노주석 기자의 글과 사진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025023006

 

 

길게 누워있는 소의 형상이라고 하는 와우산이 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밤섬주민은 이곳 부근으로 이주를 했다.

1968년 윤중제가 완공된 모습.
현재의 국회의사당자리에 있던 야트막한 양말산은 아직 밀어내기 전이네요.

 

 

1968년 개발중인 여의도

 
서울대교(현 마포대교) 건설
공사
 
 
 

 1968년 여의도 양말산(좌측) 제거공사.


개발전 서울 한강 상류의 광나루 일대의 모습.
좌측은 워커힐 호텔이 있는 아차산과 구의동 일대, 천호동 으로 건너가는 광나루다리와 흰색의
모래사장 강변은 강나루 유원지의 강수욕장 모습이다. 예전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면 전차와

같은 궤도(경성궤도:동대문 - 왕십리 - 뚝섬 - 광나루 운행)가 이곳 건너편의 광나루까지 연결
되어 있어 여름철이면 서울시민들이 뚝섬과 광나루​ 강수욕장을 많이 오가고 했다.
필자60년대 초 초등학교 방학 때 형과 함께 이 기동차를 타고 뚝섬과 광나루에 간 추억이 있
다.  동대문 - 광나루를 오갔던 경성궤도는 기록에 의하면 예전 수인선 협궤처럼 궤도폭이 좁아
전동차 뿐만 아니라 디젤기동차 증기 기관차도 다녔다고 하는데 본적이 없고, 필자가 탓던 기동
모습을 아무리 찾아도 당시의 기록사진을 찾을 수 없어 비슷하게 만들보았습니다. 기동차는
(그림) 앞쪽 모양 비슷하게 생긴 작은 기관차가 당시
전차와 같은 2량을 달고(견인) 기관차에만 집전 장치가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필자가 타보았던
경성궤도를 달리는 기동차가 아닌 전차 모습은 있군요. 같은 형태의 기동차는 아니지만 같은 노
선을 다녔던 전차(기동차?) 모습을 올리겠습니다. - 아래-


1930~ 1940년대로추정 성동교의 경성궤도(京城軌道)기동차 (전차)


1963년 성동교와 기동차.<서울역사박물관 제공>성수동에서 한양대 방향으로 찍은 사진


1968년 한강 노들섬(중지도)에서 본 인도교 모습.
안양 석수동에 있었던 美 제83보급대대에서 근무한 Neil Mishalov 사진


1968년 한강 중지도 유원지.  Neil Mishalov 사진


1968년 한강의 중지도 유원지 뽀드장. Neil Mishalov 사진


1968년 한강의 중지도 유원지 뽀드장 건너편은 흑석동. Neil Mishalov 사진
 
 
1968년 제1한강교 (인도교)의 중지도 주변의 유원지 모습. Neil Mishalov 사진

 

1968년 한강의 중지도 유원지 뽀드장. Neil Mishalov 사진

 

1968년 한강 중지도. 닐 미샬로프 사진


 

 

1968년 한강 인도교 북단 아래 탑차에 '중앙자동차 학원'이란 문구가 보인다.

  
1968년 자동차 운전학원 코스연습장. Neil Mishalov 사진

 

 1968년 여름 한강 노들섬의 이원등 상사 동상. Neil Mishalov 사진 

1935년 경상북도 경주군에서 태어났다. 1959년 공수기본 6기 교육을 수료하고 1961년 미국 포 
트리 육군 군사방위학교에서 낙하산 정비교육을 수료하였다. 이후 육군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

치되었다.

1966년 2월 4일 고공침투 낙하조장(중사)으로 한강 백사장에서 고공 강하훈련을 하고 있던 도중

한 동료의 낙하산이 고장이 나 낙하산을 펴지 못하고 낙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지체 없이 정
확하
게 몸을 날려 동료에게 접근 낙하산을 고쳐 산개시켜주고  이탈하는 순간 강렬하게 전개되

료의 주 낙하산줄에 걸려 오른팔이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상에 너무 접근하여자신

하산을 산개할 최소한의 시간적 여유가 없이 2M 두께의 한강 얼음판에 추락 사망하였다. 사후 육

군에서는 그의 군인정신을 기려 그를 상사로 1계급 특진하였고 1966년 2월 16일 고 이원등 상사

기념사업 위원회를 구성하고 1966년 6월 9일 한강 중지도에 동상을 세웠다. 시신은 국립 서울
충원 제53묘역 30531번 묘에 안장되어있다.



1969년 초 한강 인도교 북단. 닐 미샬로프 사진


1969년 초 한강 인도교 북단. 닐 미샬로프 사진


1969년초 인도교와 한강 철교사이의 서부이촌동 강변의 스케이트장. 닐 미샬로프 사진
Neil Mishalov 씨는 1968년 3월에 석수동에 있는 美 제83보급대대에 배속되어 그곳에서 복무
하다 1969년 4월에 귀국했는데 복무기간동안 우편물 수송담당으로 서울, 경기지역의 미군부
대를오가며서울, 인천, 수원, 안양주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간직하다가 2002년, 2003
자신홈피에 사진을 올려서 넷티즌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어 안양의 석수동이 인터
넷상
에 유
해졌다. 안양시는 시승격 30주년을 맞이하여 미샬로프씨의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미샬로
의 홈피 www.mishalov.com 에는 서울 경기 등의 사진 외에 Suck-su Dong village란 
제목
의 갤러리가 있는데, 당시 마을 풍경과 함께 노인,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담겨있
으며 모심기,
대기, 쟁이갈기 등 농사짓는 생활상뿐 아니라 안양지역의 주변 농촌과 미군부
대 인근의 생활상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68년 당시의 닐 미샬로프 씨 모습
미국인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 그는 1968년도에 석수동 ‘제83보급대대’에 근무하는 동안 당
시 안양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었는데 최근 이를 인터넷에 띄웠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된 시당
국은 시승격 30주년을 기념하는 2003년 안양시민축제 기간 중에 ‘특별사진전’을 마련할 것을 축제
추진위원회에 제의 추진위에서 이를 수용한 것. 
본지에서는 이러한 내
용을 모든 시민들에게 알릴 겸 안양시청 문화예술과 정월애계장통해 인
넷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했다. 자가 시한 문항마다 긴 내용의 답변이 있었지만, 지면관계로
요지만
추렸다. 

 
김대규발행인:귀하의 출생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미샬로프씨:나는 1943년 1월22일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모두 유럽 이민이어서, 내가 우리 가문의 미국인 1세대다.
김: 언제 안양에 왔고, 얼마 동안 근무했었나? 미:1968년 3월에 석수동에 있는 ‘제83보급대대’에
배속되어,
거기서 복무하다가 1969년 4월에 귀국했다.  인터뷰 내용 이하 생략 
 
↑ 2003-05-20 안양 시민신문 기사내용


​1969년 뚝섬 유원지의 돛단배. - 홍순태
예전의 황포돛배와 다른 물놀이용 작은보트를 개조한 돛배로 보인다.

 


1969년 한강 인도교 아래 쪽의 부교. 비상시 상황의 연습으로 보인다.

 
1969년 제3강교 공사 (현 한남대교). 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69년 12월 18일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공사 현장. 한남동 사거리에서 본 모습


1969년 12월 20일 한강의 3번째 다리가 된 개통 직전의 제3한강교 모습. 서울시 홈피에서


1969년 12월 26일 신사동과 한남동을 연결하는 제3 한강교 모습.

 
 
1969년 강남 개발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경부고속도로 서울기점 제3한강교(현 한남
대교)개통돼 차량이 오가고 있다. (건너편이 한남동일대)


1969.12. 26 제3한강교 개통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나룻배가 떠나고 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영동지구(강남) 도시계획 모형전시관 관람모습.


1970년경 제3한강교 개통을 전후 한 강남쪽의 고속도로공사중과 신사동 일대 모습.


1970년 한남동 일대의 항공사진 모습. 서울시 제공
보광정수지는 이미 완공되었고 김영삼시절 헐린 남산외인아파트가 신축중에 있군요.

아직 남산제1터널이 완공되지 않아 고가도로 진입 램프의 기단공사가 진행중입니다.

그 옆에 한남면허시험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1970년 보광동쪽에서 바라본 제3한강교 모습. 출처:용산구 오산고교 63회 홈피


1970년대 ​한남동 유엔빌리지에서 바라본 한강 모습.

상류쪽엔 영동대교가 보이고, 오른쪽은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압구정의 모습이며 당시 서
울 한강 뿐만아니라 팔당댐 아래 경기지역 한강
에서도 골재를 채취선을 많이 볼 수 있었다.


1970년 완공단계의 개통되기 전 무렵의 제4한강교 (현 마포대교)
1968년 3월 착공될 당시에는 제4한강교와 서울대교로 이름이 혼용되다가 1970년 5월에 완

공될 때는 서울대교로 명명되었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다는 뜻에서 마포대교로 다시 바뀌어
리게 된것은 1984117일부터다.- 서울신문


1970년도 쯤의 여의도 위성사진.
활주로와 완료된 윤중제, 샛강, 완공 직전의 제4한강교인 서울대교(현 마포대교)모습이다


 1970년 한강 뚝섬,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


 
1970년 11월 20일 새로 조성된 여의도 5.16광장 모습


1970년대 초 국군의 날 열병식 장면


1970년대 국군의 날 경찰 분열


국군의 날 기념
여의도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70년대와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 초기인 1980년
초까지 5·16광장으로 부르던 지금의 여의도공원에서 매년 10월 1일 국군의 날 사력을 시
위하는 육해공군과 학도호국단, 향토예비군의 분열과 사열이 벌어졌다.

지난 1970~1980년대 대한민국 국군의 일부 부대는 매년 9월과 1, 2월이 가장 바빴다.  9월은
5·16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10월 1일 벌어지는 ‘국군의 날’ 행사 준비, 1월부터는 한미 연합
련(Team Spirit) 훈련 준비 때문이었다. 국군의 날 행사 동원부대는 한 달여 전부터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아스팔트로 포장된 5·16광장에서 끊임없는 분열과 사열을 거듭했다.

당시 도보로 분열과 사열을 하는 부대원들은 전투화 뒷 굽을 수차례 갈아 끼워야 했고 행사 직

전원 A급 전투화를 수령했다.  당시 ‘국군의 날’ 행사에는 보병뿐만 아니라 기갑, 포병, 해·

군은 물론 예비군, 한때는 학도호 국단이란 이름으로 교련복을 입은 남녀고교생까지 원됐다.

여의일대는 이들 행사 부대를 지원하는 병참, 취사, 의무부대까지 주둔했다. 1972년 약 39

6000㎡(12만평) 규모로 만든 5·16광장은 100만 명을 수용하는 국내 최대의 광이자 군사

정권의 아이콘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광장을 통한 권력 우상화 효과를 얻는 동시에 5·16 군사 쿠데타를 합리화하는

권의 성지(聖地)였다. 이후 1979년 12·12사태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 폭압으로 정권을

잡은 두환 전 대통령은 이듬해 5·16 광장에서 ‘국풍81’을 개최, 국민들의 저항을 순화시고자

했다.  출처:서울타임스 http://www.seoul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22114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제3한강교 북단 끝에 조형물 설치


 1970년대 영등포 여의 2교 사거리  방향에서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를​ 방향을 보고 촬영한사진.
샛강건너에는 윤중재 일부가보이고, 다리북단엔 UN참전 기념탑이 보인다.



1970년 강남구 삼성동 일대, 한강과 탄천
모습도 보인다


1970년 신천나루의 차량 도강선(차배) 현 잠실 신천동. -조선일보   

한강에 건설한 서울의 6번째 다리인 잠실대교는 1970년 10월 착공하여 1972년 7월 준공
는데 잠실대교 완공으로 사라진 나룻터이다.

 

잠실 한강물막이 공사 모습.  그 후 아랫쪽은 석촌호수로 변하였다.

 


1970년 초 한강의 겨울. 한강은 스케이트장

(50개 이미지)

서울 한강과 주변의 옛 모습 - 9로 계속

 


참고가 되는 옛날 그림들 모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수미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