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호두

댓글 43

생원일기

2019. 9. 21.



호두 세 알


내 땅에

내 손으로 심고

내가 4년을 가꾼

호두나무 첫 수확물이다


하찮은 물건이어도

내 손에 들린 호두 세 알은

후반기 인생에서 거둔 감격의 결과물이다


  어머니는 생전에

고향에 땅을 사두라고 소원하셨다

가게가 딸린 상가주택에서 살자고 말씀하셨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인이라

농사지을 까닭이 없고

장사할 이유도 없었지만

어머니의 세뇌에

고향에 땅을 사고, 상가주택도 샀다


어머니는 선지자였다

백세시대가 올 것이니

그때 나이 든 노인이 되어도

그 땅에 농사짓고 건물주가 되어서 

사람답게 살라는 예언이었다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고 보니

비 오는 날이나 엄동설한에

먹고 살기 위해서

돈 벌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왕에 세상에 태어났으니

명예와 부를 누리고 사는 것도 좋지만

청문회 나가서 패가망신 당하고

돈 욕심에 쇠고랑 차고 감옥에 갈 바에는

부족하지 않을 만큼만 가지고

걱정 없이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도 알았다


                       


은퇴 후의 후반기 인생

무료하게 사는 것이 싫어서

고향 땅에 나무를 심었다


집 주변에 심어두면

저절로 크던 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호두나무를 심었다


게으른 농사꾼은 

잡초밭을 만들고 생초농법이라고 한다

유기농 자연농법이라고 비료도 안 주고 농약도 안 친다

나도 게으른 농사꾼이 되어

나무를 심고 길렀다


생초농법도 자연농법도

넘어야 할 고비는 있다


농사는 풀과 싸움이다

섣부른 농사꾼이 농사를 포기하는 이유는

풀과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작물과 나무는 풀에 지면 죽는다


정성을 다해서 심은 나무도

가뭄과 장마를 거치고 나면 절반이 죽는다

다음 해 봄에 보식해도

또 그다음 해에 군데군데 죽은 나무다

밭 근처에 살면서 아침 저녁으로 돌보면

그럴 일이 없지만

어쩌다 한 번씩 먼 길에서 찾아가 보니

나무보다 풀이 먼저 우거져 도리가 없다


그렇게 4년

아직도 호두나무밭은 미완성이다

듬성듬성 죽고, 병든 나무가 많다


한해 한해 풀과 싸움이 힘에 겹지만

적진을 뚫고 달려가는 장수처럼

사납게 덤비는 풀섶을 예초기로 쳐부숴

호두나무 빈자리는 거의 채웠다

 

                      



풀과 싸움에서 이겨야

내 자식과 손자들이

아버지가 심은 나무,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말하며

봄에는 매실 

여름에는 복숭아

가을에는 호두를 딸 것이다

백 년이 지나도 딸 것이다


호두나무에 첫 호두 4개가 열렸다

7년은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무심했고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안 보여서 몰랐는데

장마와 태풍이 지나고

낙엽 진 가지에서 호두를 찾았다

한 개는 맛 보려고

아내와 둘이 나누어 먹었다 


내 손에 호두 세 알

인생 후반기에

내가 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