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에 잡힌 낚시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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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일기

2019. 10. 8.

기회와 위기는 샴쌍둥이다

야구에서 노 아웃 만루 기회에 득점하지 못하면 다음 수비에서 실점하거나 경기에서 진다는 것은 정설이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전환하는 혜안은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다

말은 쉽지만 보통 사람은 흉내 내기 힘든 인고가 따른다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인 낚시가 그렇다

속을 알 수 없는 물가에서 가는 낚싯줄에 작은 미끼 하나를 달아 놓고 큰 붕어가 물려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낚시다

낚시꾼은 붕어가 잡힌다는 소문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낚시터를 정한다

어쩌다 한번 큰 붕어를 잡았던 희열을 잊지 못해 매번 허탕을 치면서도 다시 낚시를 떠나는 것이다

낚시를 떠나는 확실한 이유는 큰 붕어를 잡겠다는 희망 하나뿐이다

실패의 경험보다는 한 번의 성공, 인장력이 뛰어난 낚싯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낚시는 기술보다 운이 성패를 가른다

붕어의 습성 변화는 날씨, 자리, 미끼 모두가 민감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낚시꾼은 거짓말쟁이다

붕어가 잘 잡힌다는 친구의 꼬드김에 따라나서고 보면 그것은 어제의 일이다

서툰 낚시꾼은 풍문에 따라 움직이고, 귀동냥으로 채비를 바꾸는 부산을 떨지만, 결과는 항상 빈 바구니다

고수 낚시꾼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 날씨와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낚시를 한다

붕어가 안 잡혀도 종일 자리를 지키고 긴 밤도 하얗게 지새우며 붕어가 미끼를 물기만 기다린다


나는 서툰 낚시꾼이다

월척의 욕심만 크다

남들보다 일찍 떠나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미끼도 충분히 준비한다

잔챙이 붕어라도 올리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꽝이다

욕심이 크지만, 포기도 빠르다   

두세 시간 꿈쩍 않는 찌톱을 지키다 지치면 다른 낚시꾼 낚시 구경을 다닌다

할 일 없는 사람의 시간 죽이기 취미가 낚시라는 게 세간의 평이다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이 그런 낚시꾼을 구경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개도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날씨가 온화하고 바람도 없어 수면이 거울 같다

낚시하기 딱 좋은 날씨다

낚시하기에 좋은 날씨이지만 붕어는 잡히지 않는다

나만 못 잡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많은 사람 모두 붕어를 못 잡았다

옆자리의 낚시꾼이 무료하다며 커피를 끓였다

같이 커피나 마시자며 나를 부른다

동호인 낚시꾼 끼리는 인심이 후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잡담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다

내 낚싯대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커피잔을 집어 던지고 황급히 달려가 가까스로 낚싯대는 붙잡았다

두 팔로 잡아당겨도 버거운 저항이 낚싯대에 실려있다

엄청나게 큰 잉어가 물렸다

요행으로 낚싯대를 건졌고 잉어도 잡혔지만, 낭패다

잉어가 낚싯대를 끌고 나가면서 주변에 있던 여러 개의 낚싯줄을 휘감은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다른 낚싯대를 걷어 올려 수습을 도왔지만 달아나려는 잉어가 수초에 들어가 낚싯줄은 더욱더 심하게 얽히고 설켰다


요즘은 붕어도 영악하다

아날로그 시대 붕어는 순박하고 배가 고파서 미끼를 잘 물었다

의리도 있어서 바늘을 두 개 쓰면 친구를 따라 두 마리가 함께 잡히는 붕어도 많았다

디지털 시대에는 붕어가 낚시꾼을 낚는다

몰래카메라를 달아 놓았는지 드론을 띄워서 살피는지 낚시꾼이 딴짓할 때를 기다려 미끼만 먹고 달아난다

잉어같이 큰 고기는 낚싯대를  훔쳐서 저수지 깊은 곳으로 끌고 가 아예 낚시를 못 하게 보복하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엉킨 낚싯줄을 풀어보려고 나섰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낚싯줄에 걸려 용트림하는 잉어는 대충보아도 엉청난 대물이니 포기할 수도 없다

낚싯대를 세워들고 잉어와 싸우랴, 엉킨 낚싯줄 풀어내랴, 수초를 걷어내랴 정신이 없다

낚시 구경꾼에게는 더없이 좋은 눈요기다

물속으로 들어가 수초에 엉킨 잉어를 들고 나오라는 사람도 있다

심하게 엉켰고 낚싯대가 부러질 것 같으니 잉어를 포기하고 낚싯줄을 끊으라는 사람도 있다

심심하던 낚시터에 큰 구경거리가 생겨서 모두 몰려와 한마디씩 거들지만, 답은 없다

국회 청문회 같다 


진득이 붕어를 기다리며 낚시에만 집중했으면 이렇게 난감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낚시가 안 된다고 해찰을 떤 탓으로 멋지게 대어를 낚아 올릴 기회도 버렸다

기회가 순식간에 위기를 몰고 온 것이다

한길도 넘는 물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걸고라도 잉어를 건져 올려야 하는 것일까

낚싯줄을 끊어 잉어를 버리고 비싼 낚싯대라도 보존해야 하는 것일까

구경꾼도 잉어 파와 낚싯대 파로 나뉘어 저희끼리 다툰다

내가 잉어를 잡은 건가, 잉어가 나를 잡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