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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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일기

2020. 10. 11.

古稀가 불원인데 이제야 헛살았음을 깨달았으니 나는 바보다

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은 70살 나이 먹도록 살기가 힘들다는 말인데 그 나이에 임박해서 보니 그 말부터가 헛 것이다

나이가 비슷한 내 친구들 거의 모두는 아직 팔팔하고 멀쩡하다

경로당에도 못 간다

웬만한 시골에서는 청년단원이다

 

나이 70을 이르는 말 중에 고희보다는 공자가 말했다는 從心에 마음이 간다

나이 70을 넘기면 마음먹은 대로 처신해도 법도에 그르지 않더라는 말이니 내가 그렇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이제는 하늘의 섭리에 따르리라고 결심을 하고 나니 누구에게라도 진심을 말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한다 

 

살 만큼 살았다는 고희에,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나이인데 어쩌다가 한낱 미생물인 바이러스에 진 세상을 산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돈과 권력과 지식인 줄 알았는데 바이러스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으니 이 또한 헛 산거다

친하게 지내야 할 사람이 매개체가 되고 일터와 학교와 대중시설이 오염원이 되어 기피 장소가 되었다

코로나 19가 목줄을 움켜잡고 온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전쟁 중에 태어나 아직도 그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국에서 살고 있는 나다

나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전쟁이고, 그중에서도 핵전쟁이 공포의 대상이었다

군대에서 배운 핵무기의 막강한 파괴력은 우리가 겁먹기에 충분하다

핵전쟁이 일어나는 날 지구의 종말이 오고 인류가 파멸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 핵무기를 우리와 대척점에 있는 북한이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핵 공격 위협도 있었다

핵 공격 위협에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서 방독면을 쓰고 다니거나 땅굴을 파고 숨지는 않았다

국경을 폐쇄하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핵폭탄보다 무서운 바이러스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으니 어디서 어떻게 숨어있다가 나를 공격할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국가와 인종과 이념의 구분도 없이 스멀스멀 퍼져만 가니 난감하다

정체는 알아도 치료약이 없고 백신도 만들지 못한다

대처라는 것이 사람을 만나지 말고, 밖에 나가지도 말고, 부득이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쓰라는 것이 전부다

온 세상이 동작 그만이다

과학문명을 위업으로 여겼던 인간 우월주의가 허무한 공염불이 되었다

 

첨단 과학 무기의 위협에도 꿈쩍 않던 인류가 바이러스 미생물의 공격에 굴복한 모양새다

선진국도 별 수 없고, 학문도 쓸모없고, 개인의 능력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이런 가공할 무기는 생전 처음이다 

 

앞으로는 증명사진이 마스크를 쓴 사진만 유효하다는 법이 생길지 모른다

옆 사람과 대화도 휴대폰으로만 하자는 사회운동이 생길지 모른다

직장에 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우주복처럼 생긴 방역복을 입어야 한다는 제도가 생길지 모른다

코로나 19로 지금 까지 살아온 방법이 모두 헛것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