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촌 이야기 4 >

나무사랑 2005. 8. 3. 08:07
 
지난 8월 중순에 배추 모종을 하고 꼭 한 달만에 본 배추밭.
잡초를 뽑아내고 보니 그런대로 잘 자라있었다.
(2005.9.13)


배추 심는 날. 마침 비가내려서 모종하기 좋았다.

주인이 자주 못 보더라도 제발 잘 자라 주기를...

뒤로 고추와 옥수수와 고구마싹이 보인다.

옥수수는 늦게 심어서 추석에나 맛을 몰 수 있을려나. 제 때 거름을 주지 않아 색이 바랬다.

작년엔 고구마를 세 배 정도 많이 심었었는데 몇 개 먹지도 못하고 겨울에 얼어터져서 모두 버렸었다.

 (2005. 8.13)

 

 

 


           

                 

 

 

< 산촌 이야기 4 >  

 

 

 

 

 

 

 

 

 

 

 

김장배추 모종

 

                                                            

                                                

           

4) 산촌의 가을날

9월은 벼 익는 냄새와 메밀잠자리 떼가 함께 온다.
깜둥이들 모두는 그 무더운 여름을 잘 견뎌내고 모두들 살이 통통하게 찐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들의 행동반경은 산뿐 아니라 집 앞의 텃밭을 지나 개울까지 매우 넓다.
산 능선에서 떼지어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꿩인지 산까치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날렵하다.
저마다 이름을 붙여 줬는데, 수탉 깜둥이를 비롯해서 숯껌정, 꽥꽥이, 몬난이, 혹부리, 말썽이 등으로 불렀다.
물론 그 애들이 자기 이름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 깜둥아~이리와~"라는 소리는 신통하게 잘 알아챈다.
나무 그늘 밑이나 뒷산에 올라가 놀다가도 내가 부르면 쏜살같이 주변으로 모여드는데, 낯선 사람이 집안에 들어오면 일제히 꽥꽥대며 위험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숫탉은 사납게 공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럴 때 보면 닭대가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청일점 수탉 깜둥이는 언제부턴가 홰를 치며 숫놈다운 우렁찬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첨엔 아주 어설픈 소리로 "끼끼오오~~"하고 울어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는데, 내가 옆에서 킥킥대고 웃으면 자신도 쑥스러운지 눈을 껌벅대며 내 바지가랑이를 부리로 콕콕 쪼아대곤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덩치가 큰 숯껌정부터 알을 낳더니 암탉 다섯 마리 모두가 마루 밑이나 헛간 같은 곳에다 자리를 잡고 알을 낳았다.
먹이도 풍부한테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었으므로 매일 거르지 않고 낳는 것이었다.
그들의 알은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크기는 좀 작지만 단단하고 맛이 있으며 영양가 또한 불문가지. 그렇게 모인 알들은 며칠 지나면 수북하게 쌓여서 처치가 곤란해지곤 했는데 동네 사람들한테 나눠주곤 했다.

내가 이 골짜기에 처음 들어 왔을 때 놀란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동네 영감님이 자신의 집앞 개울에서 허리를 구부린채 뭔가에 열중하고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메기와 퉁가리, 꺽지를 잡아서 손질하고 있었다.
"어디서 잡으셨어요?"
"여기서."
"강에서요?"
"아니, 요앞에서."
노인은 턱짓으로 개울 웅덩이를 가르켰고 족대가 옆에 놓인 걸로 보아 아마 그것으로 잡은 모양이었다.
당시는 그만큼 오염되지 않았고 강의 고기가 개울의 먼곳까지 거슬러 올라왔던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반해 단박에 이 동네에서 살 터를 구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두 번째 놀란 것은 개울가의 풀섶에서 이리저리 뛰어 오르던 벼메뚜기들을 보았을 때였다.
메뚜기 구경을 못한지가 오래라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시절에 빈 병이나 주전자를 들고 메뚜기 잡는다고 온 들판을 뛰어 다니던 추억이 있는 세대들은 그런 정경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워한다. 모두가 농약의 과다 살포 탓이다.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면적은 넓고 농가 수는 적은데다가 산비탈이 많은 관계로 농약에 의한 오염 범위가 넓지 않다.
초가을부터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의 메뚜기 잡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가을볕은 머루와 다래에게도 고마운 존재다.
수십 갈래의 골짜기로 이루어진 이곳의 지형 또한 산열매가 몰래 숨어서 익어 가기에는 좋은 조건일 터이다.
골짜기 뿐 아니라 개울가나 가까운 뒷산에도 굵은 머루 넝쿨이 나무에 걸처져 있다.
올망졸망 달린 까만 알들이 햇살에 빛나는 모습들은 보기만 해도 연신 군침이 돌게 만든다.
과일 술항아리들이 오디, 산딸기, 앵두, 오얏, 더덕 술에서 머루, 다래, 모과, 대추 술까지 더하게 됐다.
머루, 다래가 익는 계절과 함께 뒷산의 아름드리 밤나무에서도 가을을 알리는 신호가 있다.
후두둑하고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다람쥐들이 부지런을 떠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 시기도 그때이다.

찔레꽃 향 속엔 봄날이 스며 있듯이 들국화 향기엔 스산한 가을이 녹아 있다.
여름 내내 집 돌담 틈새를 비집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 온 들국화 한 무리가 노랗게 만발해서 갈바람 속에 아련한 향기를 분분히 흩날리고 있다.
숲에 가면 나무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그 말이 관념의 사슬에 묶인 사람의 추상적인 언어인 줄로만 알았다.
오랜 세월을 두고 무념으로 숲 속을 거닐다 보니 그의 말이 단순히 언어의 기교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체험으로 알 수 있었다.
집 뒤의 산에는 온갖 나무들로 우거져 있다.
그 숲 사이로 좁다란 오솔길이 나 있는데, 낙엽지는 가을 날 그 길을 걷노라면 잎새 떨어지는 소리와 나무들의 옛 얘기를 바람결에 들을 수 있다.
새털구름 한 조각이 두둥실 떠가는 비취빛하늘이 저만치 물러나 있다.
아침저녁의 공기가 상큼하다.
마을 어디선가 피우는 연기에서도 가을 내음이 짙게 배어있다.
단풍은 골짜기부터 시작된다.
화살나무의 이파리들이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하고 싸리나무 숲이 노란 색깔로 무리를 지어 물들면 여름내 자장가처럼 들려주던 꾀꼬리와 소쩍새가 자취를 감춘다.
벼가 베어진 논에는 노릇노릇 살이 오른 메뚜기들만 빛 바랜 풀 섶에서 날아오른다.
우리 집 닭들은 더 넓어진 자신들의 영역을 매일 같이 순시하며 벌레 잡기에 여념이 없다.

마당가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간다.
저녁나절, 마른 잎을 모아서 불을 지폈다.
이 만추의 계절에 맡는 매콤한 연기는 달콤하고 구수하기까지 한데 낙엽 태우는 냄새가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만든다.
바람이 한차례 불 적마다 나뭇잎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꽃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가을이 깊어 감을 실감한다.
첫서리가 내리자 텃밭의 김장 배추를 짚으로 묶어 뒀다.
이제 서서히 겨울 채비를 해야 할 때다.

-- 다음에 계속 --


                                          산촌가는 길(2005.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