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꼬우유 2014. 6. 20. 12:15

 

 

 

 

 

 

 

 

 

 

 

음유시인 님

문숙, 첫사랑

 

 

 

공사중인 골목길
접근금지 팻말이 놓여있다
시멘트 포장을 하고
빙 둘러 줄을 쳐 놓았다
굳어지기 직전,
누군가 그 선을 넘어와
한 발을 찍고
지나갔다


너였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님

김용택, 첫 눈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새벽달빛원숭이 님

정채봉, 쫓기듯 살고 있는

 

 

 

쫓기듯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물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 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poet 님

박상천, 가정법 고백

 

 

 

사랑 고백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한마디를 입에서 꺼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사랑 고백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

이라고 했던 의미를.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녀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가슴에 눌러둔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며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입 안의 침만 마를 뿐,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골목길에 이르러

그녀에게 고백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어쩌겠니.'

 

오,어리석었던

가정법 고백.

 

 

 

 

 

 

 

 

 

 

 

 

 

 

 

 

정영 님

박노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

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

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

그날,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돈 없으면 죽는 구나

그날 이후 삶이 두려워졌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알아요,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겨쳐야 하는

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아버지, 어머니,

돈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하늘입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잖아요

못 배웠어도, 힘이 없어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하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

가슴 펴고 살아가라고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

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

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

 

 

 

 

 

 

 

 

 

 

 

 

 

 

 

시네마천국 OST - Love Theme

출처 : 새벽녘 
글쓴이 : 새벽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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