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우치다 타츠루: 오늘의 인용-좋은 입문서란?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1. 4. 8.

 

1. 아래 글은 우치다 타츠루의 "입문자를 위한 구조주의에 대한 해설서"인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이경덕 역, 갈라파고스, 2010)의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좋은 입문서'에 대하여 서술한 부분(pp. 6―9)을 옮겨 놓은 것이다.

 

2.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는 현재 고베여학원대학에서 문학부 종합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다른 책은 <<하류지향>>(박순분 역, 열음사, 2007)이 있다.

 

3. 이 책의 뒷표지에 실린 소개글을 옮겨 놓는다.

"이 책은 구조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구조주의의 기원과 역사, 그 내용을 추적하고, 난해하기로 소문난 구조주의의 대표적 인물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그들 사상의 핵심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정리한 구조주의에 관한 탁월한 해설서이다. 어려운 사상이나 개념을 쉽게 풀어 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저자의 재능이 십분 발휘된 책으로, 구조주의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구조주의에 대해 알고 싶었던 일반 대중 모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최고의 구조주의 개론서이다."

 

 

"좋은 입문서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전문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을 다루며 앞으로 나아갑니다(이를 거꾸로 하면 변변치 못한 입문서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겠지요. 초보자가 모두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전문가라면 누구나 말하는 것을 알기 쉽게 고쳐 써서 끝내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입문서와는 다르지요). 좋은 입문서는 먼저 첫머리에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에 대해 묻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는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요? 왜 이제까지 그것을 모른 채 지내왔을까요? 게을러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거짓말 같나요? 부모가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순간 갑자기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아이들은 부모가 '돌봐주기 모드'에서 '설교 모드'로 바뀌는 순간을 확실히 알아차리고 곧바로 귀를 닫습니다. 그게 선생님이거나 다른 어른의 경우에더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설교를 듣지 않기 위해 설교의 징후가 있는지 없는지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지요. 아이가 부주의하고 태만해서 어쩌다가 부모의 설교를 진지하게 끝가지 들어주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어떤 것을 모른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른 채로 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물음을 정확하게 인지하면 우리가 '거기에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의학 전문서에는 질병에 대한 다양한 치료법이 적혀 있지만 사람은 왜 늙는가? 또는 왜 죽는가? 등의 질문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무도 그 해답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눈을 돌리려고 하는 바로 그 질문입니다. 참으로 근본적인 의학 입문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사람은 왜 죽는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출발하겠지요. 그리고 '죽는 것의 의미'나 '늙는 것의 필요성'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하겠지요. 병의 치료법이나 오래 사는 방법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그 뒤에, 그러니까 근원적인 성찰이 있고 난 뒤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입문서는 전문서보다 근원적인 물음과 만날 기회를 많이 제공합니다. 이것은 내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사실입니다. 입문서가 흥미로운 것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 물음 아래에 밑줄을 그어주기 때문입니다.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

 

지적 탐구는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늘 '나는 무엇을 아는가?'가 아닌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할 수 없는 물음, 그러니까 시간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성이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화폐란 무엇인가, 기호란 무엇인가, 교환이란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일련의 물음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근원적이고 인간적인 물음입니다.

 

입문서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서비스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과 '일반적인 해답이 없는 물음'을 제시하고, 그것을 독자들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천천히 곱씹어보고 음미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