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아름다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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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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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가치들"]은 사랑, 우정, 아름다움, 동정, 건강 등과 같은, 그것들 자체로 우리가 높이 평가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다. [...] 아름다움은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자연주의적 틀 내에서 그렇다. 내가 중세 시대,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초기 계몽주의 시대 동안 쓰여진 건축 이론을 읽을 때, 아름다움은 진리에 대한 지표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공명하는 까닭은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우리 안에 거주하는 신성한 것에 대한 일종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성한 것 또는 유일신으로 끌리게 하는 것이고 피조물 위에 새겨진 신의 서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자연주의적 틀에서는 그런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 [...] 우리는 아름다움에 관한 내재적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그때 의문은 왜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깨닫게 되는가, 도대체 왜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마주치는가라는 것이 된다. 이것은, 최소한 처음에는,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깨닫게 되는가라는 의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조화, 패턴 그리고 비례에 대한 논의가 적절한 대답이 될 의문이 아니다. 또 다시, 여기서 의문은 무엇이 아름다운가라는 것이 아니고, 왜 그런 것들이 도대체 우리에게 아름다울 것인가라는 것이다. 칸트가 서술하듯이, "사욕 없는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능력 또는 사물들이 아름답다고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의 근거는 무엇인가?

 

처음에 이 의문은 꽤 추상적인 듯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그것이 흥미롭다고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이유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중요한 성분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도구화하는 데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자들은 점점 더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에 의거하여 이해되게 된다. 예를 들면, 실제로 우리는 교육과 지식의 고유한 가치[...]에 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는 대신에 그것들이 어떻게 세계에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지와 "취업"에 의거하여 말한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의 일부는 자체적으로 가치가 있는, 용도나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닌 가치를 갖는 그런 것들에 대한 감성을 계발하는 데 놓여 있다. [...] 아름다움은 자체적으로 가치가 있거나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 즉 좋은 삶에 기여하는 그런 것들의 한 가지 예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름다움이 환경적 쟁점들과 우리가 다른 생명 유기체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깨닫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깨닫게 되는 그런 것들 속에서 우리 자신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반영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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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