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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아 롬브로조: 오늘의 에세이-낱말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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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6.

 

낱말의 마법

The Magic of Words

 

―― 타니아 롬브로조(Tania Lombrozo)

 

철학자 조지 버컬리(George Berkeley)는 [존 로크(John Locke)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정말로 추상적인 관념―모든 특수자들과 세부 내용이 제거된 관념―을 결코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어떤 삼각형에 관해 생각할 떄, 나는 "삼각형"이라는 어떤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어떤 특수한 삼각형을 상상한다. 내가 어떤 개에 관해 생각할 때, 나는 모든 비본질적인 특징들을 결여하고 있는, "견성(犬性)"의 본질만을 구현하는 '일반적인" 개가 아니라, 골든리트리버 또는 요크셔테리어 또는 잡종을 상상한다.

 

그런데, 아무튼 "삼각형은 세 개의 변을 갖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삼각형(그리고 결코 특수한 삼각형이 아닌)에 관한 소통을 해내며, 그리고 나는 내가 밖에서 막 듣게된 동물 유형("개!')에 관한 유의미한 것을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데, 당신이 그것의 특수한 것들에 관해 아무것도 모를지라도 말이다.

 

로크의 경우에는 이런 두드러진 위업이 낱말은 결코 특수자가 아니라 추상물―범주 일반―에 해당한다는 그의 견해에 의해 설명되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낱말은 일반 관념의 기호가 됨으로써 일반적인 것이 된다." "삼각형"이라는 낱말은 정삼각형 또는  이등변 삼각형이 아니라, 삼각형들에 관한 일반 관념을 나타낸다. "개"라는 낱말은 저 푸들 또는 이웃의 새 강아지가 아니라, 개들에 관한 일반 관념을 나타낸다.

 

그런데 버컬리의 경우에는 이렇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항상 특수자들에게 묶여 있는데, 우리가 범주 일반에 관해 성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그렇다. 버컬리는 이렇게 적었다. "낱말은 한 추상적인 일반 관념이 아니라 여러 특수 관념들의 기호가 됨으로써 일반적인 것이 되는데, 그것은 그 관념들 가운데 무엇이든 어떤 것을 무심하게 마음에 제시한다."

 

이 논쟁은 끔찍하게―글쎄, 더 좋은 낱말이 없기 때문에―추상적인 듯 들린다. 그런데 인지심리학과 심리언어학에서 이루어진 수십 년 간의 연구가 인간의 "관념들"―우리의 개념과 낱말들을 포함하여―의 본성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차원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특수자들에 빠져 나올 수 없게 묶여 있는가(버컬리가 그랬듯이)? 또는 때때로 우리는 순전한 추상화에 성공하는가(로크가 주장했듯이)?

 

<<코그니션(Cognition)>> 저널에 발표될 심리학자 피어스 에드미스턴(Pierce Edmiston)과 게리 루프얀(Gary Lupyan)의 새 논문은, 추상화에 관한 한 낱말은 특별하다고 주장한다. "실재적 세계는 비, 독수리 그리고 멍멍 짖는 요크셔테리어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그들은 적고 있다. 그런데, "언어적 세계는 이런 구체적인 것들의 전제를 초월하는데, 그래서 더 추상적인, 범주적인 심리적 풍경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서, 낱말들 덕분에 우리는 특수한 것들을 넘어서 추상적인 것들로 가게 된다.

 

이런 착상을 자극하기 위해, 에드미스턴과 루프얀은 어떤 주어진 관념―예컨대, 개들에 관한 관념―을 끌어내는 상이한 방식들을 고려한다. 한 가지 수행 방식은 언어적으로 "개"라는 칭호를 발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수행 방식은 개 짖는 소리 같은, 개들과 관련된 지각적 신호로 행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개들에 관한 관념을 끌어내는 데 있어서 똑같이 효과적인가?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끌어내는 관념에 있어서 상이한가? 그리고, 특히, 그것들은 추상화의 수준에 있어서 상이한가?

 

개 짖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것은 어떤 개의 (개연적인) 현존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그 개의 크기와 위치에 관한 것을 추리할 수 있다. 특히 여러분이 개 전문가라면, 그 개의 품종이나 기분에 관한 것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개 짖는 소리는 전적으로 특수자들과 관련된 것이다.

 

"개"라는 낱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에드미스턴과 루프얀은 주장한다. 낱말은 이런 구체적인 것들에 관여하지 않은 채 관념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식을 제공한다. 낱말은 추상물이다.

 

이런 주장들을 시험하는 첫 번째 조사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소리를 들은 다음에 어떤 그림을 보게 되며, 그리고 그 소리와 그 그림이 동일한 범주―새, 개, 드럼, 기타, 모터사이클 또는 전화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나타내야 한다. 이런 범주들이 선택된 까닭은 최초의 소리가 발설되는 해당 낱말("새", "개", "드럼" 등)이거나 아니면 해당 범주의 구성원에 의해 생성되는 소음(새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드럼 울리는 소리 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자들이 어떤 개 그림을 보기 전에 "개"라는 낱말을 듣거나 아니면 개 짖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예"라고 대답했는데, 소리와 영상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어떤 새 그림을 보기 전에 "개"라는 낱말을 듣거나 아니면 개 짖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했는데, 소리와 영상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드미스턴과 루피얀은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이런 판단들을 내릴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추리는 이러했다. 소음들이 구체적인 특성들을 갖춘 어떤 범주의 구성원들(예컨대, 큰 닥스훈트가 아니라 작은 요크셔테리어)을 가리킨다면, 사람들이 어떤 소음을 듣게 됨으로써 그런 구체적인 것들에 해당하는 후속 그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구체적인 것들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의 경우에는 그것이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을 것인데, 비록 그림이 같은 범주에 속할지라도 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낱말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범주에 관해 구체적인 것이 결여된 추상적인 형태로 생각하게 만든다면, 사람들이 그 낱말을 듣게 됨으로써 구체적인 것들이 무엇이든 간에 그 범주로부터의 후속 그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그들의 알아낸 것이다. 참여자들은 소리가 소음(개 짖는 소리)이었을 때보다도 낱말(개)이었을 때 후속 그림이 그 소리에 어울린다는 점을 더 빨리 가리킬 수 있었다.

 

소음이 그림과 완전히 일치한다면 어떠했을 것인가? 예를 들면, 참여자들이 짖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영상을 보는 동시에 요크셔테리어가 짖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떠했을 것인가? 이런 조건에서 참여자들은 소리가 소음이었을 경우보다 더 느리지는 않았지만, 낱말을 들었을 경우보다 더 빠르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낱말이 요크셔테리어가 짖는 소리가 제공하는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것들을 결여하고 있더라도, 사람들은 낱말을 듣게 됨으로써 요크셔테리어가 짖는 소리 자체만큼이나 효율적으로 짖고 있는 요크셔테리어를 처리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로크의 주장이 입증되고 버컬리의 주장은 반박되는가? 낱말은 특수자들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추상물에 해당하는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에드미스턴과 루피얀의 발견은 낱말이 어떤 의미에서 특수한 소리보다 더 일반적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낱말에 해당하는 심리적 표상은 진정한 추상물이 아니라 여전히 특수자들의 집합체일 수가 있을 것이다. 집합체가 더 클수록 우리는 특별한 특수자들과 덜 결부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추리는 더 추상적인 듯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낱말은 놀라운 힘, 즉 일반 특성들("적색성" 같은)이나 객체들의 일반 집합들("개" 같은)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낱말이 진정한 추상화를 포함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낱말은 추리하고 소통하는 방식―구체적인 것들의 전제로부터 한숨을 돌리는―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