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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루치아노: 오늘의 에세이-비인간적인 인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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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9.

 

비인간적인 인류세

The Inhuman Anthropocene

 

―― 다나 루치아노(Dana Luciano)

 

최근에, <<네이처(Nature)>> 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는 이전에 제시되지 않은 인류세 시작 년도로서 서기 1610년을 제안하고 있다. 처음에 그것은 선택하기에 이상한 해인 듯 보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후 변화에 결부된 것으로 간주하는 사건들과 아무 관계도 없으며, 20세기 중엽에 시작된 "거대한 가속"과도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1610년은 추천할 것이 많이 있다. 그 제안 논문을 집필한 기후과학자 사이먼 L. 루이스(Simon L. Lewis)와 마크 A. 매슬린(Mark A. Maslin)은, 그것이 우리가 인류세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재정향하여 환경 정책에 있어서 극적인 변화의 추구를 사회적 정의를 위한 진행 중인 운동과 일치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파악한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류세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상, 그 개념에 관한 광범위한 보도를 감안하면, 인류세는 우리가 공식적으로 여전히 살고 있는 지질학적 시대인 충적세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인류세"는 새로운 한 조각의 지질 시대, 즉 지구와 그것의 기후에 미치는 측정 가능한 두드러진 인간의 영향으로 뚜렷히 구분되는 시대를 가리키기 위해 제안된 층서학적 이름이다.

 

층서학은 지구 체계에 대한 현저하고 명백한 변화들에 의거하여 방대한 지질 연대를 조직하고, 그래서 인류세 제안―2008년에 공식적으로 제출된―은 의외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인정된다면, 그것은 인간들이 지구의 기후뿐 아니라 지구 자체를 변화시켜 버렸다는 새로운 인식이 될 것이다. 국제 지질 연대에서 시대 구분의 인정을 감독하는 집단인 국제 층서 위원회(ICS)는 그 문제를 고찰할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내년 경에 그 쟁점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여전히 살고 있는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인 "충적세"는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이 약 11,500년 전에 일어난 마지막 빙하 시대의 종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구획한지 50년이 지난 후인 1885년에 채택되었다. 충적세는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고, 그래서 이 시대를 종식시키려는 결정은 현재를 독특한 시대, 새로운 시대 이후(after the recent),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엉뚱한 시대로 특징지울 것이다. 인류세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은 사실상 현재를 이중화하는 움직임, 우리 자신의 순간뿐 아니라 다른 한 순간의 시각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그런 이중화된 입지에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다른 순간을 어디에 위치시키는지에 의존한다.

 

인류세의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 또는 국제 표식 지층 단면과 포인트(GSSP), 즉 시대 구분을 정당화하는 전지구적 물질을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지질 연대에서 인정받은 시대 구분을 특징짓는 현장을 가리키는 수많은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가장 이른 것은 농경의 채용과 전파에 의거하여 개시 년도를 6천 년 전과 11천 년 전 사이에 위치시킬 것인데, 농경에 필요한 토지 개간이 필연적으로 지구의 기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인류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인간의 삶과 동등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기후 변화를 우리가 원상태로 돌리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수렵-채집 상태로의 복귀를 옹호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와 관련시킴으로써 그것은 그 술어가 함축할 어떤 정치적 에너지도 사실상 제거할 것이다. 그리고 인류세는, 그것의 과학적 검증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정치적 전략이다. 그것의 의도는 층서학적 지도(결국 인간들이 애초에 그 지도를 발명했다) 위에 인류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결코 아니라, 어떤 인간 활동을 바꾸거나 완화시킬 의도를 품은 채 그런 활동들의 부정적인 전지구적 영향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제안된 다른 GSSP 현장들은 산업혁명이 개시된 18세기 말 경에 나타난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상승을 보여주는 충적세 빙하 코어를 포함한다. 그때부터 대기 탄소에 점점 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화석 연료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채광과 유연 가솔린 사용의 결과로 토양이 납에 심하게 오염되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암석이 명백히 생성되었는데, 그것은 20세기 중후반을 인간 쓰레기가 독자적인 지질학적 삶을 취하게 된 순간으로 특징짓는다. 그리고 핵폭탄의 폭발을 기록하는 전지구적 암석 기록에서 방사성 동위 원소들이 검출될 수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오브 런던의 지질학과에서 기후학 및 전지구적 변화 과학의 교수직을 갖고 있는 루이스와 매슬린이 제안한 년도인 1610년은 약간 다르게 작동한다. 그 년도가 선택된 까닭은 남극의 빙하 코어에서 발견된 흔적으로 측정 가능한, 대기 이산화탄소의 수십 년에 걸친 감소에 있어서 최저점이 그 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대기 변화는 유럽인들이 접촉한 후 일 세기 동안 "유럽인들이 전파한 질병에의 노출과 더불어 전쟁, 노예화 그리고 기근의 결과"로서 일어난 5천만 명 이상의 아메리카 대륙 토착 거주민들의 사망으로 인해 초래되었다고 루이스와 매슬린은 추정하였다.

 

토착 인구의 파멸(17세기 중엽에 북아메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 둘 다에서 6백만 명으로 추정되는 생존자들만 남게 되었다)은 농경, 산림 화재 그리고 대기 탄소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인간 활동들의 현저한 감소를 의미했다. 루이스와 매슬린은 생물 다양성의 현저한 상실과 멸종 속도의 가속을 초래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식물 및 동물 종들의 이전을 비롯하여 유럽-아메리카 접촉의 지질학적으로 유의미한 다른 양태들도 지적한다. 이런 견해에서 바라보면, 인류세는 근대성의 전지구적 경로들을 따라 전개된다. 루이스와 매슬린은 이 제안을 "지구(globe)"를 가르키는 라틴어 낱말에서 비롯된 "오르비스 가설(Orbis hypothesis)"로 명명한다.

 

루이스와 매슬린의 제안이 설득력이 있는 까닭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그것이 대량 학살을 시대 구분의 원인의 일부로서 인식하는 인류세 "골든 스파이크"에 대한 첫 번째 제안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의 정착이 멸종 속도의 급격한 상승을 동반했다는 점을 지질학자들이 알게된 지는 오래되었다. 지질학을 정초한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1832)라는 저서의 제2권에서 찰스 라이엘은 이것을 사물들의 자연적 질서일 뿐이라고 정당화한다.

 

"다수의 종의 소멸은 이미 일어났고, 향후에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고등한 문명 국가들의 식민지들이 비어 있는 땅으로 확산된다...그런데, 우리가 전진하면서 절멸의 칼을 휘두르더라도, 우리는 저질러진 대파괴를 한탄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스코틀랜드 시인과 함께 우리가 '자연의 사회적 결속을 침해한다"고 상상할 이유도 전혀 없다....정복으로 지구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고, 힘으로 우리의 획득물을 지키는 데 있어서 우리는 어떤 배타적인 특권도 행사하지 않는다는 점을 숙고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작은 영역에서 넓은 영역으로 확산된 모든 종은, 비슷한 방식으로, 어떤 다른 종들의 축소 또는 완전히 절멸로 자체의 진보를 특징지웠다..."

 

라이엘이 유럽의 아메리카 정복의 파괴적인 결과는 또 하나의 자연적 순환일 뿐이라고 묘사한 것은 현대 기후과학자들이 그것의 지속적인 영향을 진행 중인 반자연적 재난으로 인식하는 것과 모순된다.

 

루이스와 매슬린은 인류세 논의들에서 가장 흔히 인용되는 두 인자―인간이 초래한 대기 탄소 수준의 변화와 전지구적 생물상의 균일화―를 우리가 "1492"로 알고 있는 사건의 지연 효과로 규정한다. 수많은 우주론들이 지구가 인간 내 폭력 행위들을 기억할 것이고, 지구 자체가 인간들이 자기 종의 구성원들에 가한 야만 행위들을 증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르비스 가설로 기후과학은 그것들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인류세 논쟁이 무의미한 듯 보인다.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대단히 긴급한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 때, 지질학자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골든 스파이크를 위치시킬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런데 그 논의의 생생함은 인류세 개념의 설명적 약속을 반영하는데, 그것은 지구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에 관해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제시될 수 있고 제시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기후 변화는 너무 거대하여 볼 수 없는 것―생태비평가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이 거대객체(hyperobject)로 명명하는 것, 즉 어떤 구체적인 사례에서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흔히 제기된다. 인류세는 기후 변화에 시기성뿐 아니라 서사성도 제공한다. 그리고 잘 구성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의식적인 줄거리 구상과 느낌의 조작에 의존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잘못 명명하고 있다― "인류세"는 제안되는 해결책에서 다루어져야만 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및 역사적 사실들을 은폐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들" 전체가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같은 속도로 영속화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종의 이름을 따서 위기를 명명하는 것은 그 문제의 뿌리에 놓여 있는 (인간과 "자연" 모두에 대한) 착취의, 지질학적이 아닌, 사회적 역사들을 은폐한다. 우리가 이런 역사들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단일한 낱말을 찾아낼 개연성은 없다[제이슨 무어(Jason Moore)의 "자본세(Capitalocene)"는 미학적 근거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반면에, 현대 자본주의의 심대한 낭비성을 가리키는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의 "앤스로브신(Anthrobscene)"이 더 근접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류세 이야기는 지난 몇 세기 동안의 결과들을 일반화하거나 자연화하기를 거부하면서 그것들을 소통할 방식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오르비스 가설은 과학적 검증 가능성의 기준에 의해 여전히 한정될지라도 다른 가설들보다 더 성공적이다. (예를 들면, 어떤 종류의 지질학적 흔적이 "접촉"의 동학과 파괴성에도 중요한, 동시에 발생한 대서양 노예 무역의 역사를 새길 수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사실상, 인류세의 개시 년도를 확립된 층서학적 관행에 따르게 하고 싶은 욕망이 ICS의 인류세 작업 집단을, 그 집단의 의장인 얀 잘라시에비츠(Jan Zalasiewicz)에 따르면, 행성의 화석 기록에서 정말로 전지구적이고 지울 수 없는 최초의 자국들을 남긴 핵 시대의 개시에 의거하여 20세기 중엽으로 밀어붙이는 듯 보인다. 루이스와 매슬린의 보고서는 20세기 중엽을 두 번째 선택지로 명명하는데, 그들이 지적하듯이, 그 두 기원은 상이한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지만 말이다. 1610은 더 광범위한 것으로서 "식민주의, 세계 무역 그리고 석탄"을 가리키는 반면에, 핵 시대 인류세는 거의 순간적으로 지구에 폐기물을 쌓을 수 있는 "엘리트 집단에 의해 추동된 기술적 발전"을 강조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인류세 이야기는 그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이 아니라, 다른 인간적 삶들에 대한 인간의 무시를 자체의 기원으로 삼는다. 그런데 후자 프레임은 너무나 협소한데, 1492년 이후의 전지구적 줄무늬의 역사들 대신에 "엘리트"와 "기술" 같은 추상물들을 지향한다. 1492년 사건에 대한 뛰어난 설명에서 실비아 윈터(Sylvia Winter)는 그 사건을, 몇 가지 점에서, 루이스와 매슬린이 강조하는 지구 생명에 미치는 균일화 효과에 비견되는 인지적 과정의 개시 년도로 식별한다. 그 사건은,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되지만 제공되는 편익들의 정말로 보편적인 분배를 끝없이 유예하는 인간주의라는 특정적으로 서구적인 관념―인간주의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인종적 폭력, 식민주의적 폭력 등을 정당화하고 은폐하는 관념―의 전지구적 확산의 시작이라고 윈터는 주장한다.

 

1492년의 여파는 인류의 대부분을 실망시킨 인간주의의 확산―남극의 빙하 코어까지도 증언할 수 있는 실패―이며, 그리고 인간주의는 확산되면서 지구에도 심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점을 윈터는 보여준다. 비인간적인 인간주의. 일부 사람들이 제안된 시대의 이름에서 찾아낸 모순―"인류세"는 인류라는 종의 모든 구성원들에 의해 초래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해결하는 것이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는 바로 그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