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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히크먼: 오늘의 에세이-과학의 등장과 실재의 수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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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4.

 

과학의 등장과 실재의 수학화: 경쟁하는 견해들

The Rise of Science and the Mathematization of Reality: Competing Views

 

―― 스티븐 히크먼(S.C. Hickman)

 

그것[수학]은, 그들이 생각했듯이, 실재의 객관적 구조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방법이었고 진리들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그것의 도움으로 우리는 규칙적인 것들―외부 세계에서 현상들의 발생―을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왜 그런 식으로 발생하는지, 또는 무엇을 위해 발생하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이사야 벌린은 그가 "대항계몽주의(counter-Enlightenment)"라고 명명한 것에 관한 항목에서 "...프랑스 계몽주의의 중심 관념들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의 계몽주의 협력자와 신봉자들에 대한" 반대는 "그 운동 자체만큼이나 오래 되었다"고 말한다. 계몽주의 기획에 있어서 이런 반동적 작가들이 반대한 공통의 요소들은 권위와 전통, 종교 그리고 이성이 아니라 신앙에 기반을 둔 지식에 관한 초월적 관념들에 대한 계몽주의의 거부와 개인의 자율성, 경험주의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관념들이다. 벌린 자신은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와 그의 <<새로운 학문(Scienza nuova)>>(1725; 1731년에 급진적으로 개정됨)을 "이 대항운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위치시킨다. 벌린은 특히 "대항계몽주의"라는 명칭보다 "대항운동"이라는 술어를 사용한다.

 

[...] 그런데, 나 자신의 경우에, 많은 다양한 학자들을 통해서 [대항계몽주의] 관념을 추적하는 것을 넘어서 나는 이 시기의 역사와 과학의 전체적 전통뿐 아니라 계몽주의 기획에 대한 상이한 반응들의 실제 역사 가운데 일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계몽주의 자체는 여러 세기 전에 과학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한 과정의 절정이라는 점을 정말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

 

과학과 그것이 근대성의 형성에 미친 영향에 대한 스티븐 고크로저(Stephen Gaukroger)의 해박한 평가는 이 시기 초기에 근대성을 특징짓는 기계론적 세계관의 기반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과학의 출현과 역사에 관한 내 자신의 생각의 대부분에 있어서 핵심적이었다. 그 작업의 실마리들 가운데 하나는 인간학을, 고크로저가 말하듯이, "세계와 그 속에서 우리의 지위에 관한 지식 형식의 고유한 부분으로서" 옹호하려고 노력하는, 현재 "인문학"으로 불리는 것―철학, 역사, 시학, 웅변술 등과 더불어 고대 문학에 관한 연구―의 전통주의적 학자들 사이의 전투이다. 그는, 당대에 "탁월한 학문 형식"으로서 물리학과 수학에 관한 연구가 순수 문학(belles lettres)에 관한 연구를 압도해 버렸다는 기번(Gibbon)의 진술을 언급한다. 우리 자신의 시대에도 역시 철학과 인문학은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필요에 비본질적인 것이라는 관념이 약간의 우위를 나타내게 되었다.

 

환상소설 작가이자 [...] 독립 사상가인 내 친구 R. 스콧 베커(R. Scott Bakker) 같은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탈지향적(post-intentional)"이라고 부른다. 탈지향적 견해는 우리가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관념, 우리의 정보 부족이 자연을 인지할 수 있는 우리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의식적 존재자로서 우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우리 능력까지도 범위와 역능에 있어서 극심하게 한정된다는 관념이다. 그가 진술하듯이, "정보 부족이 우리로 하여금 세계에 관한 전통적인 생각을 넘어서는 길을 보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면, 그것이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관한 소중한 전통적 견해를 넘어서는 길을 보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정보 부족이 도대체 무지 또는 오해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면, 인간의 전통적인 자기 이해의 거대한 체계는 진행 중인 정보 홍수에 침몰할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사적인 대화와 블로그 글에서 그는 우리의 인간주의적 학문의 대부분이 과거의 유물, 방문하여 즐기는 멋진 장소이지만 세계 자체를 들여다 보는 시야를 더 이상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있다고 거듭해서 진술했다. 철학은 죽었다. 물론 이런 소거주의적이고 환원적인 접근 방식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이것을 둘러싼 논쟁들은 끝이 없다. 스콧 자신의 반응은 "기다려 봅시다"라는 것이다. 베커는 과학이 결국 그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는 학파에 속한다.

 

그런데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학문을 과학에만 기반을 둔 하나의 통일된 과정으로 환원시키는 관념들을 거부한 최초의 사람들 가운데 일인이었다. 흄의 경우에 단일한 탐구 형식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계속해서 그는, '이성'에 기반을 둔 18세기 계몽주의 기획의 상이한 관념들 속에 그런 관념들이 내재하는 경우에도, 이런 관념들이 지식에 관한 명제적 형식과 비명제적 형식 사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흄의 경우에 과학은 명제적 지식 형식들에 기반을 둔 것이었던 반면에, 자연사 및 다른 지식 형식들은 비명제적 형식들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고크로저가 입증하듯이, 자연사에 대한 흄의 독법은 '통시적인' 것이 아니었고, 필로소프(philosophe)들의 계보학적 방법론들에 맞서는 것이었으며, 우리가 자연철학의 경험적 또는 현상학적 판본들로 부르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흄의 기획은, 본유 관념들이라는 개념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명제적 이성에 기반을 둔 체계적인 이해로 탐구를 한정하는 필로소프의 환원적 견해들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었다. 그 대신에 흄의 경우에는, 명제적 오성에 제한을 둠으로써, 그리고 중심 문제는 우리가 입수할 수 있는 오성 형식들과 어떤 정황에서 그것들에 의지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한 개념적 쟁점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탐구에 관한 의문을 재서술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흄의 전통으로부터 "추론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 발생하였다. '예술과 과학의 등장과 진보에 관하여(On the Rise and Progress of the Arts and Sciences)'라는 에세이에서 흄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인 지각이라기보다는 추론의 문제이다라는 관념을 전개하고, 그런 연결들은 개인적 층위가 아니라 예술과 과학의 등장과 진보 또는 통상의 등장과 진보의 경우에서처럼 인간 조건의 변화가 대규모의 인간 행동의 변화를 산출할 때 더 쉽게 확립된다고 주장하며, 그리고 문화적 변화와 개인적 행위에 각각 해당하는 두 가지 역사 형식을 구별짓는다.

 

흄은, 변증법적 대립의 이진적 양태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경쟁하는 견해들을 서로 맞서게 하는 대립적 방법이 아니라, 이런 견해들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 대립적 관념들에 기반을 둔 과학적 사유에서 나타나는 어떤 사유 양태들에 반대하면서 흄은 이렇게 믿었다. "다른 한 집합보다 어떤 한 집합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그저 역사를 적어야 하는 방식에 관한 쟁점이 아니라, 인간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에 놓여 있는지에 관한 구상의 중추적인 양태이다." 다른 한 학자 리빙스턴(Livingstone)을 인용하면서 흄의 방법을 요약하는 고크로저는 이렇게 말한다.

 

흄의 철학은 우리가 과학, 도덕, 정치 그리고 종교에서 합리성이라고 부를 것이 갈등하는 인간 욕구와 욕망들의 조정과 충족이 목적으로 삼는 관행들의 장기적이고 점진적이며 대체로 비성찰적인 진화의 결과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몇 가지 점에서 "관행들의 비성찰적인 진화"라는 이 관념은 계몽주의와 대항계몽주의에 관한 쟁점들뿐 아니라, 과학 자체와 진리 및 실재에 관한 우리 견해에 있어서의  많은 논쟁들의 핵심에 이른다. 벌린의 에세이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제시된 인용문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학문>>에서 비코는 합리주의자들을 의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과학들의 과학으로서의 수학의 역할과 관련하여 대단히 잘못 생각했다. 수학이 확실했던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 인간의 발명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생각했듯이, 실재의 객관적 구조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방법이었고 진리들의 집합체가 아니었다. 그것의 도움으로 우리는 규칙적인 것들―외부 세계에서 현상들의 발생―을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왜 그런 식으로 발생하는지, 또는 무엇을 위해 발생하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발명품, 즉 실재의 구조를 서술하지 않는 하나의 언어, 진리들의 집합체라기보다는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수학과 존재목적론적 최종 상태들에 관한 형이상학에 대한 존재론적 견해가 아닌 현상학적 탐구의 도구로서의 수학의 병치를 보게 된다.

 

흄의 경우에, 수학은 누군가의 진리가 유일한 타당한 진리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성의 독단론자들에 맞서서 흄은 탐구의 경험적 방법론을 제안하였는데, 그것은 결코 최종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진리하고 명명하는 것은 불변하는 실체의 어떤 고정된 범주가 아니라, 문제 해결과 결정 과정의 일부로서 탐구하는 정신을 통해서 가려지게 되는 명제적 및 비명제적 자료들의 항상 변화하는 다발이었다. 흄은 이것이 결코 종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역사의 진리는 진리의 역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하는 견해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내기라는 그의 관념은 현재 과학과 철학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들의 경우에도 좋은 접근 방식인 듯 보인다.

 

실재에 관한 경쟁하는 견해들 그리고 하나의 언어로서의 수학이 궁극적으로 실재의 구조를 서술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관념이 철학에서의 논쟁들과 물리과학의 핵심에 놓여 있다. 유물론적 실재관과 관념론적 실재관의 경쟁하는 목소리들은 지난 이백 년 이상 동안 허약해졌다. 이백 년 전에 칸트는 세계를 두 가지 객체들의 집합들로 나누었다. 첫 번째 집합은 "본체계"인데, 플라톤적 철학에서 본체계는, 무식한 정신에게 알려진, 감각적 실재의 세계와 동일시된 현상계와는 대조적으로, 철학적 정신에게 알려진 관념들의 세계와 동일시되었다. 대부분의 근대 철학은 일반적으로 감각과 독립적인 지식의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고, 임마누엘 칸트는 이 관점에 고전적인 판본을 제공하면서 본체계는 현존할지도 모르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전적으로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칸트의 철학에서 알 수 없는 본체계는 알 수 없는 "물 자체"와 흔히 관련되는데, 그 관계의 본성을 특징지을 수 있는 방식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두 번째 집합은 "현상계"인데, '감성계와 예지계의 형식과 원리에 관하여'(1770)라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칸트는 인간 정신은 논리적 세계에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사건들을 물리적 외양에 의거하여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인간들은 현실적 객체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각이 허용하는 만큼만 추리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므로 현상이라는 술어는 탐구와 조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우연한 사고를 가르키는데, 특히 특별히 이례적이거나 두드러지게 중요한 사건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요점은, 우리는 유한한 존재자들이고, 우리의 유한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한정된 감각를 통해서 얻게 되는 추론적 지식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수학은 실재에 관한 언어라는 관념, 즉 수학은 실재의 구조를 서술하고, 그래서 조만간 수학은 이런 개념적 틀에 기반을 둔 통일된 지식관을 구축할 것이라는 관념을 긍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관념은 음악에서 완전수와 화음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피타고라스적 관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부친으로서 루트 연주자이자 제작자였던 빈첸조 갈릴레이에게 잘 알려져 있었음에 틀림없다. 피타고라스적 사고 양식들을 좇았을 빈첸조는 현 장력과 음색 사이의 새로운 수학적 관계를 찾아내었고, 그래서 음악과 악기들이 수학적으로 수량화되고 서술될 수 있다는 관념의 일반화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모든 물리적 현상들이 수학적 언어(물리적 "법칙들"로서의)로 정량적으로 서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아들의 중요한 통찰에 이르고, 그래서 근대 물리학의 시대를 개시하며 규정하는 길을 닦았다.

 

그런데 왜 이러한가? 우리 마음/뇌에 거주하고 있는 듯한 수학이 어떻게 우리 마음/뇌 너머의 실재의 구조도 서술할 수 있을까? 현대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가 진술하듯이, "천문학의 슈퍼영웅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연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진 책"이라고 천명하도록 우리의 물리적 세계가 극도의 수학적인 규칙성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노벨 상 수상자 유진 위그너(Eugene Wigner)는 설명이 필요한 불가사의로서 "물리과학에 있어서 수학의 터무니 없는 유효성"을 강조했다. 테그마크가 말하듯이, 그의 과학적 기획의 목적은 수학이 어떻게 실재의 구조를 서술하는지 증명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그가 "미친 듯이 들리는 자신의 믿음"이라고 명명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다. "우리의 물리적 세계는 그저 수학에 의해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수학인데, 그래서 우리를 거대한 수학적 객체의 자기의식적인 부분으로 만든다. 우리는 이것이 매우 방대하고 신기한 평행 우주들의 새로운 궁극적인 집합체를 생성하여 앞에서 언급된 모든 당혹스러움은 비교적 미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실재에 관한 가장 깊이 각인된 관념들 가운데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평행 우주들의 다원론적 다중우주 속의 한 객체일 뿐인 더 큰 조립체 또는 수학적 개체 내의 성분들이라는 이 관념은 물리학에서 진행 중인 논쟁들의 일부이다.

 

철학에서 그것은 "과학의 수학화가 양과 운동의 무의미한 익명의 변수들을 위해 정성적 본질들(단단함, 가벼움, 매끈함 등)에 대한 뒤얽힌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해석을 단박에 제거한다"고 말하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작업이다. 뉴턴주의적 틀 내에서 이 관념 덕분에 수학과 물리학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설명 논리, 즉 물질성 자체의 합리적 질서로 직접 표명되는 연역적 사유의 형식적 질서가 된다. 홀워드(Hallward)가 진술하듯이, 바디우가 "과학혁명이라는 거대한 운동과 후속적으로 전개된 편협한 미신에 맞선 계몽주의 운동으로부터 유지한" 것은 "전적으로 적합한 유일한 진리의 운반체로서의 무심한 수학화된 합리성과 자기정초적인 개별적 주체성의 이런 결합이다." 바디우는 자신의 철학을 데카르트 사변들의 수학적 합리성 내에 확고히 위치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상 나는 데카르트주의자이다...". 심지어 바디우는 자신의 마르크스주의를 이런 수학적 실재 속에 정위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는 해방 정치의 야망과 자본의 작동 사이에 형식적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수용했다. 우리는 결코 보편주의를 지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호 또는 회복을 요청하는 이전의 영토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자본에 맞서서 대응하고 있다기보다는 자본의 경쟁자이다. 그것은 보편주의에 맞서는 특수주의의 투쟁이 아니라, 보편주의에 맞서는 보편주의의 투쟁이다."

 

근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자체의 행로에 대한 어떤 반작용적인 대립 대신에, 바디우는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을 그것의 보편적 체계가 진리와 실행 가능성을 획득함으로써 경쟁자를 대체하는 경쟁적인 경제적 체계로 간주한다. 홀워드는, "한 개체 또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다양체의 문제, 즉 그 개체가 다른 개체들과 맺는 관계들의 체제에서 그것이 제거당하게 될 때에만 입수할 수 있는 비일관성이다..."라는 의미에서 주체성과 사건에 관한 바디우의 관념들을 특징짓는 바디우의 지도적 가정을 서술한다. 우리로 하여금 개체 또는 객체라는 변칙적인 또는 "일관성이 없는 다양체"를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관계들부터의 제거라는 이런 소거주의적 움직임은 모든 관계들로부터 단절된 "물러서 있는 객체"라는 그레이엄 하만(Graham Harman)의 관념과 꽤 으스스하게도 유사한 듯 보인다. 이 두 견해를 동일시할 수는 없는데, 전자는 일관성이 없는 다양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객체를 모든 관계들로부터 소거하거나 제거하는 결정적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바디우 자신이 거부하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바로 그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상기시키는 실체적 형상론이라는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실상 비관계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 두 관념 사이에는 여전히 연결점이 존재한다. 무언가가 어떻게 모든 관계들로부터 제거될 수 있는가? 아니면 무언가가 어떻게 자체적으로 모든 관계들로부터 물러설 수 있는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의문들에 대답하는 것은 이 글의 논제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게 될 것이다. [...]

 

나는 실재의 수학화라는 이 중요한 관념에 맞서 싸울 사람들을 탐구해야 한다. [...] 이런 전통 전체 내의 핵심은 두 개의 주요한 경쟁적인 과학관―하나는 신경과학이 자체의 소거주의적 과정들과 영상 기법들을 통해서 언젠가 마음과 실재를 통일하는 메커니즘(들)을 찾아낼 것이라는 점을 수반할, 실재의 구조가 수학적 언어로 환원된다는 과학관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수학에서 마음과 실재의 그런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 또는 철학에서 실재는 비수학적이고 비명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학도 어떤 형식의 명제적 진술도 실재의 구조를 결코 서술할 수 없을 것이라고 흄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의 과학관―사이에 벌어지는 전투로 귀결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내게는 이것이 오늘날 과학과 철학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