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프랭크 윌첵: 오늘의 에세이-지각의 다중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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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7.

 

지각의 다중 우주

The Multiverse of Perception

 

―― 프랭크 윌첵(Frank Wilczek)

 

<<한 가지 아름다운 의문(A Beautiful Question)>>은 단일한 의문에 관한 긴 성찰이다. 세계는 아름다운 관념들을 구현하는가?

 

나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것에 관해 생각했는데, 물리 과학뿐 아니라 역사, 미술, 음악, 심리학 그리고 철학에 도입했다. 증거를 조사한 후에 나는 단호하게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대답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달리 될 수 있었던가? 세계는 아름다운 관념들을 구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즉,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이해는 난잡하거나 이목을 끌지 못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고 실험들을 통해서 그런 반사실적 의문들에 접근할 수 있다.

 

언젠가 컴퓨터 성능, 가상 현실 그리고 인공 지능의 발달 덕분에,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프로그램된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세계'를 갖는 자기 의식적인 존재자들이 생성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하게 된다. 자기 의식적인 슈퍼 마리오가 자기 세계의 법칙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프로그래머의 변덕을 반영하는, 느슨하게 연결된 변덕스러운 규칙들의 방대한 집합체를 찾아낼 것이다. 나는 그가 그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우리가 그러하듯이―이지만, 대단히 아름답지는 않은 것이라고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우리의' 우주가 다른 종류들의 지성적 관찰자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지 고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우리 인간들은 무엇보다도 시각적 동물이다. 물론 우리의 시각적 감각과 우리의 가장 심원한 사유 양태들―일단의 덜 명확한 방식들로―은 우리와 빛의 상호작용에 의해 조건지워진다. 예를 들면, 우리 각자는 무의식적일지라도 능숙한 사영 기하학자가 될 운명을 타고 난다. 그런 능력은 우리의 뇌 회로에 배선되어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망막에 도달하는 2차원 영상을 3차원 공간 속 객체들의 세계로 해석할 수 있게 되는데, 그래서 플라이볼을 잡을 수 있다.

 

우리 뇌는 우리로 하여금 3차원 공간에 정위되는 3차원 객체들에 기반을 둔 역동적인 세계상을 아무런 의식적 노력 없이 구성할 수 있게 하는 특화된 모듈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눈의 망막에 도달하는 2차원 영상들(결국 이것들은 우리를 향해 직진하는, 외부 객체들의 표면에서 방출되거나 반사되는 빛살들의 산물이다)에서 시작하여 이런 작업을 수행한다.

 

우리가 수용하는 영상들에서 그것들을 유발하는 객체들로 거꾸로 작업하는 것은 역(逆)사영 기하학의 어려운 문제이다. 기술한 바와 같이,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문제인데, 사영들은 명확한 재구성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객체들을 배경(또는 전경)으로부터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작업을 행하기 위해 우리는 색깔 또는 질감 대비 및 뚜렷한 경계 같은, 우리가 만나는 객체들의 전형적인 특성에 기반을 둔 모든 종류의 수법들을 활용한다. 그런데, 그런 단계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자연이 도움이 되게도 우리의 시각적 대뇌 피질에서 탁월한 특화된 처리기를 제공한 한 가지 어려운 기하학적 문제가 남게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시각의 특징은 빛이 매우 먼 곳에서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문학에의 창을 제공한다. 항성들의 규칙적인 겉보기 운동과 행성들의 약간 덜 규칙적인 겉보기 운동은 합법칙적 우주에 대한 초기의 단서들을 제시했으며, 자연에 대한 수학적 서술을 위한 초기의 영감과 시험 근거를 제공했다. 훌륭한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다양한 정도의 어려움을 갖춘 문제들을 포함한다.

 

물리학의 더 고등한 현대적 부분들에서 우리는 빛 자체가 하나의 물질 형식이고, 그래서 사실상, 깊이 이해될 때, 물질 일반이 두드러지게 빛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또 다시, 우리의 본질적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빛에 대한 우리의 관심―그리고 빛에 의한 경험―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으로 판명된다.

 

요약하면, 우리의 시각 중심적 뇌는, 운이 좋게도, 물리적 세계의 심원한 구조에 잘 조율되어 있다. 그런 심원한 구조는 우리의 기본적인 지각 방식들과 조화를 이룬다.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후각이라는 감각을 통해서 세계를 지각하는 동물들은 비록 다른 방식들로 대단히 지능이 높을지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물리학에 이르는 데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예컨대, 개가 대단히 지능이 높은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여 언어를 발달시키고 흥미와 즐거움으로 가득찬 풍요로운 삶을 경험한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의 세계는 반응과 부패가 풍부할 것인데, 그들은 거대한 화학 집합들, 정교한 요리, 최음제 그리고 프루스트풍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천문학은 주변적일 것이고 기하학은 낯설 것이다.

 

우리는 후각이 화학적 감각이라고 이해하고, 그것의 토대를 분자적 사건들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냄새에서 분자들과 그것들의 법칙들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기초 물리학으로 거꾸로 작업하는 위업은, 내가 보기에, 절망적으로 어려운 듯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슈퍼 개들은 그 결과가 아름답기보다는 기묘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알아챌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새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각적 동물이다. 게다가 그들의 생활 방식은 물리학을 착수하는 데 있어서 인간보다 더 나은 부가적 이점을 제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새들은 중력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와 달리 어떤 친숙한 방식으로 3차원 공간의 본질적 대칭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운동의 기본적인 규칙성들을 경험하고, 특히 마찰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하면서 관성의 역할을 경험한다. 그들은 기하학뿐 아니라, 고전 역학과 갈릴레오 상대성에 관한 직관적 지식을 타고 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인간들은 더 심원한 이해를 획득하기 위해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마찰이 적재된 아리스토텔레스 역학을 무화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상당한 분투를 수반했다! 어떤 종들의 새가 대단히 추상적인 지능을 진화시켰더라면, 다시 말해서 그들이 더 이상 새대가리가 아니라면, 그들의 물리학은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느낄 것이다.

 

거미들은 연결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공간에 그물을 짜서 멀리 떨어진 객체들―그들의 먹이―을 진동을 통해서 감각한다. 슈퍼 거미들은 입자 물리학과 씨름할 것이지만, 장 이론은 즐길 것이다!

 

세계는 자체의 유일한 해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각적 우주들에 대한 많은 가능성들을 제공하는 다중 우주이다. 어떤 감각적 우주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명료하게 자연의 심원한 설계의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각적 우주는 행운의 것이지만, 거의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감각을 향상시키는 도구들(현미경, 망원경, 시계, ...)의 도움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상이라는 우리의 천품을 사용하여 그것을 개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