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이던 시겔: 오늘의 에세이-논리는 과학의 맞수가 못 된다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5. 9. 29.

 

논리는 과학의 맞수가 못 된다.

Logic Is No Match For Science

 

"이 관념은 터무니없다"라는 논증이 결코 논증이 아닌 까닭

 

―― 이던 시겔(Ethan Siegel)

 

"이론 없이 실천을 애호하는 사람은 키와 나침반 없이 항해하며 자신이 어디에 닻을 내릴 것인지 결코 알지 못하는 선원과 같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어제 나는 빅뱅과 과학 일반에 관한 벤 카슨(Ben Carson)의 진술에 대응하는 장문의 글을 적었다. 그가 제시한 일반적인 논증은, 과학은 터무니없는 것들을 많이 말하는데, 우리 정신―논리적이고 분별이 있는 정신―의 역능으로 우리가 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것은 이런 터무니없는 것들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것들이 틀렸음에 틀림없다고 깨닫을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자연적 세계―그리고 자연적 우주―는 흔히 반직관적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연은 과학적 탐구와 조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는데, 더욱이 그런 이유 때문에 우주가 무엇을 말하든 간에 그것이 자체에 관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오히려 경청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새로운 문제가 아닌데, 그것은 양자 역학, 양자 장 이론, 일반 상대성 또는 어떤 다른 "기묘한" 관념이 등장함으로써 일어났을 뿐이다. 과학이 우리에게 반직관적인 결과, 즉 우리의 한정된 경험과 논리만을 사용하게 되면 결코 이르지 못하게 될 결과를 제공한다는 점은 그 기획 전체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주 자체에 관해 알게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 자체에 관한 의문들을 우주에게 물을 뿐 아니라 그것의 대답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점을 염두에 둔 채로 나는 대략 200년 전―오래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역사적으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사후 100년이 지난 시기로 되돌아갔다고 상상하자. 다양한 주제들―수학, 천문학, 중력, 역학 그리고 광학―에 관한 그의 저작들은 그 시점까지 역사상 어떤 다른 과학적 분야들보다 더 잘 검증되었었다.

 

또한 이런 분야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후속적으로 더 발달되었었는데, 유성들의 주기성, 최소 작용의 원리들, 다변수 미적분학의 개발 그리고 뉴턴 반사경을 사용하여 태양계에 있어서 부가적인 항성들의 발견이 이루어졌었다. 뉴턴의 이론과 관념들은 이런 분야들 각각에 대한 견고한 토대로서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현상들에 적용될 때 우주의 근본적인 작동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흔히 제공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앞에서 언급된 모든 영역들에 대해서 참이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빛의 거동이다.

 

뉴턴은 빛은 광선(ray)처럼 거동한다고 완강히 주장했는데, 빛은 <<광학(Opticks)>>이라는 그의 중요한 책에서 제시된 법칙들에 따라서 굴절하고 회절하며 반사한다. 이 저작을 통해서 뉴턴은 색깔의 거동을 비롯하여 실험을 통해서 검증 가능한 일단의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사실상 그 책의 첫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이 책 속의 내 설계는 빛의 특성들을 가설들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실험들로 제시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성은 괜찮고 좋지만, 때때로 이성은 실험이 제시하는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뉴턴 사후 100년이 지난 시기에 뉴턴의 관념에 의거해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한 가지 실험이 수행되었다.

 

빛살이 단일한 좁은 슬릿을 통과하면, 그것은 반대쪽 스크린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할 것인데, 그떼 빛의 세기는 스크린의 양쪽 끝보다는 바로 그 중심 부근에서 더 강할 것이다. 빛살이 두 개의 슬릿을 통과하면, 두 개의 중심 피크가 예상될 것인데, 각 피크에서 멀어지면 빛의 세기가 약해질 것이다. 최소한 그것은 빛이 미립자 또는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슬릿들을 가까이 위치시킨 상태에서 그 실험이 수행되었을 때, 결국 두 개의 피크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 사이에 어두운 간극들이 나타나는 수 많은 피크들을 보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현상은 빛에 관한 광선에 기반을 둔(또는 미립자에 기반을 둔)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으며, 오히려 빛은 근본적으로 파동으로서 거동한다는 점을 필요로 했다. 1799년에 토머스 영(Thomas Young)이 이중 슬릿 실험을 수행했을 때, 그는 이런 유형의 현상은 빛이 근본적으로 파동으로서 거동하고 있을 때―하위언스(Huygens) 같은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이론화했던 것처럼―에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보강적 피크들과 소멸적 최소들을 갖춘 이런 동일한 유형의 간섭은 물 파동들로 유사한 실험을 수행한 적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했다.

 

그런데 또한 빛은 미립자적(또는 입자 같은) 특성들도 갖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광학에 관한 뉴턴의 저작은 빛은 파동으로 간주하지 않은 채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는 방식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계시―그리고 새로운 실험 결과들―는 이전의 결과들을 결코 무효화하지 못했다. 정반대로, 빛이 정말로 파동이라면, 파동 같은 거동이 자체를 입증해야 하는 모든 사례들에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당대의 최고 이론가들―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뉴턴의 무오류성에 빠져 있었다―은 빛은 파동이다라는 관념이 터무니없는 어떤 예측들을 초래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818년에, 그것이 바로 유명한 프랑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시메옹 프와송(Simeon Poisson)이 하기로 착수한 것이다.

 

그는 단일한 파장―물론 빛은 파동이라고 가정하면―의 빛을 방출하는 광원이 있고, 광원을 떠난 빛이 구형의 한 객체를 만나게 될 때까지 전파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추측했다. 그 구체에 부딪치는 빛은 흡수되거나 아니면 반사될 것이고, 그래서 결국 남게 되는 것은 그 구체의 배후에 놓여 있는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한 개의 빛 고리일 것이다.

 

그런데 빛이 정말로 파동이라면, 매우 당혹스러운 현상들을 얻게 될 것인데, 어떤 현상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현상은 전적으로 반직관적인 것이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관측되는 간섭 무늬와 유사하게, 구체의 외부에서 일련의 밝고 어두운 무늬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프와송의 계산이 스크린 위 그림자의 바로 그 중심에 단일한 밝은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는데, 빛의 파동적 본성이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장소에서 보강 간섭을 일으켰다.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그러므로 프와송은 빛의 파동적 본성은 터무니없는 관념이고, 그래서 틀렸음에 틀림없다고 우아하게 추리했다.

 

그런데 프와송은 이론적, 이성에 기반을 둔, 논리적 오만이라는 대죄를 저질렀는데, 그는 결정적 실험을 전혀 수행하지 않은 채 결론을 도출했다! 그 환경이 특히 미치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후원한, 빛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한 경쟁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파동 이론을 제안한 참가자―프레넬(Fresnel)―는 심사위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었던 프와송에 의해 기본적으로 조소를 받고 방을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위원회의 의장은 프레넬을 지지했고 프와송의 일축 행위를 편들지 않았으며, 과학자가 양심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하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정치가, 노예 제도 폐지론자 그리고 프랑스 수상으로서 훨씬 더 유명해진 프랑수아 아라고(Francois Arago)는 스스로 결정적 실험을 수행했는데, 구형의 장애물을 제작하여 그것 주변에 단색 광을 비추었다. 결과는?

 

그 반점은 실재적이다!

 

과거에 내 자신―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은 이것을 프와송 반점으로 언급했었지만, 지금부터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부터, 그 시험적 실험을 실제로 과학에 도입한 과학자를 기려서, 그것은 아라고의 반점으로 알려질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가장 경이로운 것은, 완벽한 원형의 장애물을 제작한다면, 반점 자체 주위에 작은 원형의 무늬들이 나타나는 바로 그 중심에서 빛의 세기가 전혀 방해받지 않은 빛의 세기와 사실상 동일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그런 것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그럴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만나게 될 때, 그것을 실험적으로 시험하는 것의 긴요한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우주일 뿐이고, 그래서 우리의 이론적 예측들의 발판이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그것들은 언제나 가차없고 끊임없는 시험들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우주를 바라보고 나서야 우주가 자체에 관해 드러내는 비밀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