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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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프랜시스: 오늘의 에세이-어느 합리주의자의 비합리성: 리처드 도킨스는 왜 그토록 얼간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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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3.

 

어느 합리주의자의 비합리성: 리처드 도킨스는 왜 그토록 얼간이인가?

A Rationalist's Irrationality: Why is Richard Dawkins such a jerk?

 

―― 매튜 R. 프랜시스(Matthew R. Francis)

 

리처드 도킨스는 흔히 있는 도발적인 인터넷 사용자가 아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은퇴한 교수이고, 과학과 무신론에 관한 호평을 받은, 가장 잘 팔리는 많은 책을 저술한 작가이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라는 그의 책은 진화에 관한 가장 많이 읽힌 대중적 해설서들 가운데 하나이며, 그리고 그것은 관념들이 전파되고 진화하는 방법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서 "밈(meme)"이라는 술어를 도입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지배층이다. 그는 익명의 메시지 게시판과 논평란들의 동굴에 잠복해 있는 비주류의 음모 유포자가 아니다.

 

그런데 사회적 매체에서 그가 기꺼이 모욕적인 것들을 말한다는 점에 의거하여 도킨스는 흔히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을 희생시킨다고 생각한다면 용서받을 것이다. 가장 최근의 일화에서 그는 아미드 모하메드(Ahmed Mohamed)는 돈과 주목을 받고자 하는 방식으로서 고의로 체포당했다는 생각―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을 제시했다.

 

모하메드는 텍사스 주 어빙 출신의 14세 소년인데, 그는 자신이 제작한 시계를 학교로 가져왔다는 이유로 이번 달에 체포되었다. 학교는 그 소년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폭탄으로 생각하게끔 하기 위해 그 시계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그 점을 부인했다. 그는 부모나 변호사가 입회하지 않은 채 심문을 받았는데, 이것은 텍사스의 주법에 위반되는 행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떤 합당한 이유도 전혀 없이 NASA 티셔츠를 걸친 14세의 괴짜 무슬림 소년을 체포하여 심문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와 이슬람 혐오증의 기미를 드러낸다(심지어 적법성을 전혀 갖추지 않은 채). 그런 이유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모하메드를 백악관에 초대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한 대학 기금에 기부하였으며,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드 같은 기업들은 그에게 다양한 기기와 초대장을 보냈다. 트위터 해시태그―#IStandWithAhmed―도 존재한다.

 

그런데 상이한 한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거짓된 순진함으로 누군가가 묻는다. 모하메드의 시계가 실제로 폭탄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아무도 그가 폭탄을 가졌다고 결코 믿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폭탄 처리반을 호출했었을 것이다.) 음모론에 사로잡힌 그 사람은 묻는다. 이슬람 혐오증을 종식시키는 것에 대한 강경한 지지자인 모하메드의 아버지가 매체의 주목과 돈을 얻기 위해 그 생각을 고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리처드 도킨스가 그 상황에 개입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 영국인 과학자는 체포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외관상 진보적인 TV 진행자 빌 마허(Bill Maher)와 달리), 권위자들의 행동보다는 오히려 모하메드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는 아미드 모하메드의 이름 철자를 제대로 적는 수고조차도 할 수 없는 유튜브 음모론자 같은 어떤 매우 의심스러운 정보원들에 의존하여 그렇게 한다. 심지어 가장 기묘한 사례에서 도킨스는 우파 증오 사이트 <브레이트바트(Breitbart)>에 올려진 한 편의 글에 연결함으로써 편집증 저자가 신봉하는 음모론을 퍼뜨린다.

 

기억하라. 도킨스는 14세 소년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결코 그냥 소년이 아니다. 그는 이민 가정에 속하며, 항상 타자에 대한 관용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은 문화에서 인종적 및 종교적 소수파의 일원이다. 다시 말해서, 도킨스는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있는데, 그 경우에 그의 논평은 가장 취약한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이것은 도킨스가 논쟁의 그릇된 편을 선택한 최초의 사례가 아니다. 노벨 상 수상자 팀 헌트(Tim Hunt)가 남한에서 개최된 학술회의에서 여성 주최자들에게 성차별적인 농담을 한 것에 대해 정당한 비판에 직면했을 때, 도킨스는 "으르렁거리는 마녀 사냥"에 맞서 헌트를 옹호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전에 그는 다운 증후군(그 조건을 갖춘 태아를 낙태시키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간(상이한 강간 유형들의 상대적인 해악을 비교했다) 그리고 소아 성애(학대의 "온건한" 형태와 "폭력적인" 형태를 대조하였다)에 관해 기묘하게 궤변론적이고 무감각한 논평들을 제기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도킨스의 행동에 대해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면, 그는 그들의 지능이나 독해력을 모욕하는 것에 의존하는데, 여러분은 링크들에서 트위터 스레드들을 추적함으로써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아미드 모하메드 사례가 보여주듯이, 도킨스는 무엇이든 이슬람과 관련된 것에 대해 가장 호전적이다. 그는 어느 종교에 대한 지지자도 아니지만, 전 세계 16억 명의 무슬림들을 돌이킬 수 없게 폭력적인 사람들로 일률적으로 취급했다. 또한 도킨스는 노벨 상 수상자들의 수에 의거하여 무슬림들을 과학적으로 부진한 성취자들로 분류했는데, 그 기준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소수의 국가들만이 주목할 만한 과학자들을 배출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노벨 상 수상자들 자체와 관련된 쟁점들이 존재한다.) 또한 그는, 무슬림이 지배적인 국가들의 여성들이 더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을 때 페미니스트들이 성 추행을 다루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도킨스가 무신론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인물일 뿐 아니라 과학의 대중적 소통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를 괴짜로 일축하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많은 과학자와 과학 저술가들은 <<이기적 유전자>>를 그들이 자기 경력을 선택한 주요한 이유로 인용한다.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무신론의 문화적 수용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더 최근에 출판된 그의 반종교 선언서인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은  많은 무신론자들에게 용기와 공동체 감각을 부여했다. 대학 교수들은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를 진화론에 관한 유려하고 가독성이 높은 입문서로 학생들에게 지정한다. 진화와 기후 변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시기에 도킨스는 과학의 옹호자이자 유력한 작가로서 자신의 진가를 가장 잘 발휘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저자로서의 도킨스의 흔히 매력적인 페르소나와 트위터 상에서의 도킨스의 흔히 편협한 심술궂은 페르소나 사이의 간극이 곤혹스럽다. 배우/작가 조지 타케이(George Takei)가 인터넷의 기인, 진보적인 아저씨라면, 도킨스는 우리가 페이스북에서 무시하고자 하는 괴짜, 인종차별주의적인 할아버지이다. 많은 과학 소통가들이 과학의 대중적 이해와 과소대표되는 집단들의 포함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적 매체를 사용하는데, 세 사람만 거명하면, 다니엘 리(Danielle Lee), 케이티 맥(Katie Mack) 그리고 <슬레이트(Slate)>의 필 플레이트(Phil Plait)가 있다. 과학과 다양성을 옹호하는 긍정적인 발언자들이 존재한다. 대표와 관련하여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

 

도킨스는 트위터의 팔로워가 백만 명이 넘는데, 이것은 그가 그 플랫폼에서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트위터 글은 빈번하게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리트위트되고, 그래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옹호하는 도킨스의 팬들로부터 쏟아지는 신랄한 대응에 때때로 휩싸이게 된다. (나는 댓글과 트위터에서 그들의 대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슬람, 젠더 그리고 사회적 행동과 관련된 도킨스의 맹점들은 이례적인 것이 아닌데(유감스럽게도), 그것들은 백인 남성의 편견들의 세탁 목록이다. 그렇지만 도킨스가 자신은 합리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더욱더 가시적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고, 그래서 과학에 대한 이해를 갖춘 도킨스는 우리의 실재관이 자신의 정신적 틀과 자신이 거주하는 사회에 의해 왜곡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두 가지 나쁜 것을 비교하여 둘 가운데 하나를 경시하는 것(X는 Y만큼 나쁘지 않다. 그러므로 X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이나 또는 폭력과 야만적인 행동에 대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기꺼이 비난하는 것과 관련하여 합리적인 것은 전혀 없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에게나, 특히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의 경우에 최선의 희망은, 비판적인 자기 검토를 통해서 자신의 맹점들을 식별하여 그것들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다음에 아마도, 정말 아마도, 우리는 14세의 소년들을 포함하는 음모론들을 널리 알리는 데 사회적 매체를 활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