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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피글리우치: 오늘의 에세이-끈 이론 대 포퍼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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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6.

 

끈 이론 대 포퍼라치

String Theory vs the Popperazzi

 

――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

 

기초물리학 공동체에 문제가 있다. 철학자들이 도울 수 있는가?

 

물리학자 리 스몰린(Lee Smolin)이 저술한 대중서의 제목이 공개적으로 서술하듯이, 기초물리학 공동체 내부에 문제가 있다. 해당 문제는 경험적 검증 가능성의 전적인 결여에도 불구하고(다른 한 비판가인 피터 보이트(Peter Woit)가 자신의 책 제목에서 서술하듯이, 그것은 "틀렸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not even wrong)"이다) 이른바 초끈 이론이 우세한 상황에 뿌리박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저명한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가 더 넓은 대중을 위해 저술한 다른 한 책에서 응대하는데, 그는 스몰린 같은 동료들을 "포퍼라치", 즉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와 과학적 이론들은 반증 가능해야 한다(즉, 어떤 이론이 사실상 틀린 것이라면, 경험적 근거에서 틀린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그의 관념을 좇는 꽤 무분별한 추종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여기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 물리학 전쟁을 환영하자. 물리학 공동체에서 스몰린과 서스킨드는 서로의 자격, 지능 그리고 다소간 저급한(상대편에서 바라볼 때) 동기들에 관한 대담한 진술들을 어울리지 않게 제시하는 대단히 가시적인 유일한 인물들이 결코 아니다.

 

조지 엘리스(George Ellis)와 조 실크(Joe Silk)가 명망 있는 <<네이처>> 매거진에 "물리학의 정신을 지키자(Defend the integrity of physics)"라는 극적인 제목으로 논평을 실었을 때, 우주론자 션 캐럴(Sean Carroll)은 트위터(정확히 명망 있는 과학 저널은 아니지만, 공적 담론에서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반증 가능성 치안과 관련된 나의 진짜 문제는 이렇다. 어떤 종류의 이론이 세계를 올바르게 서술하는지 사전에 미리 요구하게 되지는 않는다." "반증 가능성 치안"? 와우.

 

이것은 과학철학자의 관점에서 사실상 매우 흥미롭다. 알다시피, 현업 과학자들에 유용하지 않다는 점에 의거하여, 과학철학자들의 작업은 흔히 공개적으로 물리학자들(공격자들의 목록은 길게 이어지는데, 스티븐 와인버그, 스티븐 호킹, 로렌스 크라우스, 닐 디그래스 타이슨 등이 있다)에 의해 폄하된다.

 

그런데 이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분야의 기초에 관해 매우 공개적인 언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들은 한 저명한 과학철학자가 수십 년 전에 과학의 본성에 관해 적은 것을 열심히 환기시키거나(스몰린, 엘리스, 실크 등) 아니면 격렬히 거부한다(서스킨드, 캐럴 등)!

 

물론 초점은, 현재 기초물리학과 우주론 공동체들에서 우세한 듯 보이며, 그럼에도 이런 수학적 구성물들은 수학(아마도 유용한 수학)에 불과한 것이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리 높은 비판가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초끈 이론과 관련 개념들(다중 우주라는 개념 같은)이다.

 

이것은 그 쟁점이 과학과 비과학 사이의 구획짓기에 관한 쟁점,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은 쟁점이며, 포퍼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반증 가능성이라는 (악)명성이 높은 기준을 제시하도록 촉구한 바로 그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 제안의 소박한 판본(포퍼가 말년에 그것을 고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전에 고수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은, 어떤 이론 또는 가설이 "과학적"이라고 간주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반증 가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해당한다. 포퍼 자신의 원래 사례들을 활용하면, 일반 상대성은 포함되고, 다양한 판본들의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해설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일반 상대성은 쉽게 충족시킬 수 없었을 "위험한" 시험들(1919년 개기 일식 동안 태양으로 인해 빛이 휘는 작은 각도에 대한 유명한 측정 같은)을 견딘 반면에,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새로운 사실도 꽤 잘 수용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매우 유연하여 도중에 만나게 되는 어떤 것과도 "양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퍼라치"와 "반증 가능성 치안"이라는 현재의 비난과 관련된 문제는 약간의(그러나 불충분한) 지식, 이 경우에는 과학철학에 관한 물리학자들의 지식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상당한 정도의 피해가 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포퍼와 반증주의는 어느 과학자도 과학철학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개연성이 높은 소수의 인물과 개념들 가운데 두 가지이다(두 가지 예를 더 들면, 토머스 쿤과 패더다임 전환이 있다). 무언가를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과 그것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같지 않은데, 마찬가지로 나는 끈 이론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지만, 내가 그것에 관한 전문적 견해를 제시해야 한다면 내가 그것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거의 확실히 알지 못할 것이다.

 

해당 물리학자들은 반증 가능성에 관한 포퍼 자신의 관념들이 그가 철학자로서 활동한 수십 년 동안 두드러지게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보인다. 또한 그들은 과학철학이 1960년대에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은 명백히 그렇지 않았다.

 

현대의 과학철학자들은 언제나 포퍼(그리고 흔히 과소평가되는 그의 제자 임레 라카토슈(Imre Lakatos), 그리고 쿤, 그리고 폴 파이어아벤트, 그리고 그 영광 시대의 다른 몇몇 인물들)에게 마땅한 경의를 표하지만, 게속해서 수 많은 과학적 기획의 본성에 관한 더 최근의 그리고 더 정교한 많은 저작들―예를 들면, 베이즈 정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들―을 논의한다. 물론 과학자들이 과학철학에 관한 최신 정보를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기술적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리학 전쟁과 관련하여 대단히 기분 좋게 역설적인 것이 존재하는데, 양 진영 모두 자체 의제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서 철학자의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다. 그리고, 예측 가능하게도, 그것은 대체로 잘못 된다.

 

그래서 이 경우에 명민한 물리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냥 포기하고 철학자들에게 초끈 이론이 과학인지 아니면 수학적으로 특징지워진 형이상학인지 물어야 하는가? 그것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과학자들은 외부자들에게 지적 권위를 결코 양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인데, 또한 그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흥미로운 의견 불일치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뮌헨 수학철학 센터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Richard Dawid)는 그가 "비경험적 확증(non-empirical confirm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을 옹호하는 주장을 개진했는데, 여기서 어떤 이론의 가치는 동일 분야의 어딘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 경험적 확증과 결합하여 판단되며, 주어진 이론에 대해서 장기적인 경험적 확증 전망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물론, 끈 이론과 다중우주의 경우에 매우 많은 논쟁이 벌어진다). 이것은 이론 확증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의견이 결코 아니고, 그래서 철학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이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 여전히 살펴보아야 한다.

 

더 좋은 행동 방침은 과학자와 철학자들로 하여금 함께 주빈석에 앉아서 각자 당면 문제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과 전문성을 나타내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비방을 약간 줄이고 호혜적인 지적 존중을 높이면서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누구든 물리학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는 특권과 연구비 수준을 고려하면,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일 것이다. 결국 물리학자들도 인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