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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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바르디: 오늘의 세상-모든 것을 바꾼 십 년, 그리고 모든 변화를 막은 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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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6.

모든 것을 바꾼 십 년, 그리고 모든 변화를 막은 십 년

Ten years that changed everything; and prevented all change

 

―― 우고 바르디(Ugo Bardi)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그리고 적절한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2015년 파리 당사국총회(COP212)가 이제 한 달 남았다. 그런데, 흔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방식들과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을 방식들로 일어날지라도, 변화는 일어난다. 지난 십 년은 엄청난 변화의 시기였으며, 그리고 또한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변화를 회피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거대한 노력의 시기이다. 그것은 우리 세상의 많은 모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이 어려운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 기후 변화의 가속화. 2005년에 기후 변화는 여전히 비교적 길들여진 짐승인 듯 보였다. IPCC에 의해 제시된 시나리오들(그 당시에 2001년까지 갱신된)은 점진적인 온도 증가를 보여주었고, 문제들은 수 세기는 아닐지라도 수십 년 남아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또한 2005에는 온난화를 섭씨 2도가 넘지 않게 제한하는 것이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동시에 기후 변화는 비선형적 과정이라는 개념이 논쟁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폭주하는 기후 변화"의 위험이 더욱 더 많이 이해되었다. 지난 십 년의 사건들은 기후 변화의 빠른 진전을 보여주었다. 허리케인(2005년의 카트리나, 2012년의 샌디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 만년설의 용해, 영구 동토층의 용해, 치명적인 양의 저장 메탄의 방출, 거대한 산불, 전국적인 건조화, 생물다양성의 상실, 대양의 산성화 등이 있다. 고온이 믿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인간들에게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그리고, 최후의 희망으로,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가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이전에 믿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우리가 우리 행성을 가스실로 변환시키고 있고 멈출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을 섬뜩하게 깨닫고 있다.

 

부인의 급등. 2005년에 기후 과학의 부인은, 기후에 관한 과학적 지식의 축적으로 감소하는 듯 보였고, 역사의 쓰레기통에 묻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과학에 반대하는 운동이 최대한의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용 가능한 모든 종류의 선전 기법을 사용하였다. 2008년에는 이른바 "온난화 사기" 대폭로극("climategate" scandal)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여태까지 취해진 가장 성공적인 부정 홍보일 것이다. 2011년에는 "중지(pause)" 밈이 데일리 메일(Daily Mail)에 의해 확산되었으며, 그것은 또 하나의 두드러지게 성공적인 선전 공격이었다. 그 다음에 개별적 기후 과학자들이 억압받고, 악마화되고, 조사받았으며, 심지어 물리적으로 위협받는 한편으로, 대중은 불확실성과 의심을 만들어낼 모순적인 정보의 집중 포화 대상이었다. 그 운동은 성공적이었는데, 특히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그랬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양 당의 대선 후보들은 마치 그것에 독이 들어 있는 것처럼 기후 변화 쟁점을 회피하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이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는 일을 목격하게 되는데, 공화당 대선 후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기후 변화을 초래하는 원인이 인간 활동이고, 기후 변화가 문제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여전히 부인은 기후 변화를 멈추기 위해 실제적인 일을 행하고자 하는 시도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 존재하지 않았던 피크. 1998년에 콜린 캠벨(Collin Campbell)과 장 레에레르(Jean Laherrere)는 1950년대에 원유 생산에 있어서 "정점에 도달하기(peaking)"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었던 매리언 킹 후버트(Marion King Hubbert)의 관념들을 재검토했다. 그들의 계산 결과는 세계 피크―그들이 "피크 오일"이라고 불렀던―가 2004-2005년에 일어날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것은 2005년과 2008년 사이에 정점에 이르렀던 것처럼 보이는 "통상적인" 석유에 의거한 꽤 좋은 예측이었다. 그런데 캠벨과 레에레르는 "비통상적인" 석유―셰일(또는 "타이트") 석유 같은 가연성 액체들―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았었다. 이런 새로운 자원을 사용함으로써 "모든 액체들"의 생산은 계속 증가하였고, 그것 때문에 피크 오일이라는 개념이 십년 전의 사담 후세인만큼 다소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어려운 자원으로부터 생산하고자 하는 석유 회사의 노력은 생태계에 대한 다양한 나쁜 결과를 초래했지만(2010년의 마콘도를 기억하라), 주요한 결과는, 예상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산화탄소 방출이 고갈의 결과로서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녹색의 퇴조. 1990년대에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유행하는 관념이었고 녹색 정당들은 유럽의 많은 의회들에서 상당한 의석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환경 운동의 정치적 무게는 끊임없이 부식되었다. 녹색 정당들의 운명은 선출되는 정치가들의 구호들의 집합의 일부가 더 이상 아닌,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모든 관념들의 운명을 밀접하게 쫓는다. 예전에 이성과 환경 의식의 보루였던 유럽연합조차도, 특히 아메리카 합중국으로부터 천연 가스를 수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친 희망으로, 초점을 잃어버렸다. 전 세계의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적인 경제적 걱정거리들로 매우 바빠서 "환경"으로 불리는 추상적 존재자에 관해 걱정할 시간이나 성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는 듯 보이는데, 지금 당장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값비싼 사치품인 듯 보인다. 도처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으로서 "성장"이 "환경"을 휩쓸어버린 듯 보인다.

 

― 금융 붕괴. 2008년의 대형 금융 위기의 심층적 원인들은 결코 정말로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우발적인 나쁜 금융 관행들로 환원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금융 위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는데, 세계의 실물 경제적 기계가 가루가 되어 거의 완전히 정지하게 만들었다. 재화의 생산과 수송이 잠시 붕괴되었는데, 그것은 전체 체계의 취약성을 보여주었다. 그 위기는 더 많은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극복되었고, 경제는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지만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금융 붕괴가 임박했는지 여부와 금융 붕괴가 일어났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갈등의 급등. 군사적 대치와 폭력적 분쟁이 급등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의 바로 그 핵심에서 탱크들이 굴러가는 것이 목격되었고, 북아프리카에서 중동까지,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좁고 긴 대륙이 거의 끊임없는 군사적 대치 상태에 놓여 있었다. 대량의 공중 폭격을 받고 국가 전체가 부서지고 있으며, 수십 만 명의 피난민들이 탈출하고 있다. 예전에 타올랐고, 계속해서 나라들을 집어 삼키면서 지금 점점 더 타오르고 있는 불과 같다. 그 불이 멈추게 된다면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파괴적 갈등이 경제가 대체로 화석 연료 수출에서 비롯되는 수익으로 뒷받침되고 고갈이 이런 수익의 완전한 또는 부분적인 상실을 초래한 국가들에서 분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면, 이집트, 예멘 그리고 시리아의 경우에 나타난 상황이다. 그런 투쟁은, 시리아의 경우에 그렇듯이, 기후 변화와 그것으로 인한 가뭄과도 관련될 수 있다. 이것이 다른 곳에서 도래할 것들에 대한 전조인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개연성이 높다.

 

― 게다가... 위에 나열한 것들은 과거 십 년 동안 진행되었던 모든 것들을 망라하는 목록이 아니다. 서양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적 자유의 침식, 여러 국가 경제들의 쇠퇴 또는 심지어 붕괴, 진행 중인 탈세계화, 희귀하고 한정된 광물 자원들을 둘러싼 경쟁의 심화 등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들은 공통의 기원을 갖는다. 모든 경우에, 사람과 기관들은 그것을 멈추려고 노력함으로써 변화에 대응했다. 예를 들면, 석유와 가스 고갈에 직면한 기업들은 어떤 희생―금융적 및 환경적인―을 치르더라도 더 많이 찾아내려는 노력을 배가함으로써 대응했다. 그리고 또한 그것들은 기후 변화의 현존과 위험성을 부인하기 위한 노력을 촉진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자기 문제들의 심층적 이유들을 무시함으로써 직접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헤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의 처지는 이렇다. 십 년 동안 변화를 무시하고 억누르려고 노력한 후에 우리는 불가피한 급격한 변화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변화들에 정확히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어려운 시기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난 십 년 동안 최소한 한 가지 긍정적인 추세가 있었다.

 

― 재생 에너지 혁명. 태양 발전 및 풍력 기술들은 비용 및 효율성의 견지에서 급격히 개선되었다. 기술적 기적은 전혀 없었고, 끊임없는 점진적 개선책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결과는, 지난 십 년 동안 실리콘 기반 태양 발전과 풍력 발전 같은 재생 에너지가 환경주의자들의 장난감에서 비용에 있어서 화석 연료와 경쟁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진지한 기술로 성장했다. 재생 에너지는 미래의 불가피한 변화들에 대한 비파괴적인 적응을 위해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지만 가능할 것인데, 우리는 그것에 관해 열심히 작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