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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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마이클 존슨: 오늘의 에세이-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가장 도착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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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23.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가장 도착적인 이야기: 경제 엘리트들의 서사

The Most Perverse Story to Justify Inequality: The narrative of economic elites

 

―― 에릭 마이클 존슨(Eric Michael Johnson)

 

공평성이 사회적 계약의 기초이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공평한 몫을 기여하면 우리의 공정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기대한다. 사회적 편익이 불평등하게 건네지거나 사전 협약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뢰 위반을 나타낸다. 이것에 의거하면, 단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행정부가 가장 부유한 기관들에는 구제 금융을 제공한 반면에, 수만 명의 주택 보유자들(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동일한 기관들의 희생자들이었다)은 쫓겨나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아메리카인들이 격분한 것은 정당했다. 그것은 정실, 기업 금전에 의한 정치 부패의 기미가 있었고, 그래서 역시 명백히 불공평했다. 그런데 그것이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닌가? 어렸을 때 흔히 들었듯이, 삶은 불공평하다는 것이 참이지 않는가?

 

아메리카의 금융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고 오늘날의 경제 엘리트도 그의 사례를 좇았다. 1889년에 카네기는 그의 경제적 견해의 초석이 된 "경쟁의 법칙"을 옹호하는 논증을 펼치기 위해 도착적 형태의 다윈주의를 사용했다. 그의 세계는 힘이 정의가 되고 대마불사가 장애가 아니라 성공의 열쇠가 되는 세계였다.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에서 카네기는, 이런 자연적 법칙이 우리 가운데 보잘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것일 것이지만 "그것은 모든 부문에서 적자 생존을 보증한다"고 적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의 거대한 불평등, 산업적 및 상업적 사업의 소수 집중 그리고 경쟁의 법칙을 인류의 미래 진보에 유익할 뿐 아니라 필수적인 것으로서 순응해야 하는 조건으로 수용하고 환영한다.

 

다시 말해서, 카네기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삶은 불공평하고, 그래서 사회적 계약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낫다.

 

이런 시각은 월 스트리트라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아가는 영장류 동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일 것이지만, 더 일반적으로 자연적 세계의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다윈은 진화에 있어서 경쟁이 중요한 인자이지만 유일한 인자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다. 생명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견해에서는 협동, 공감 그리고 공평성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특징들이었다.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서 다윈은 이렇게 적었다. "가장 공감적인 구성원들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공동체들이 가장 잘 번성하여 가장 많은 자손을 양육할 것이다."

 

협동적으로 작업함으로써, 자원을 공평하게 공유함으로써, 그리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확신시킴으로써 초기 인간 사회들은 구성원들이 자신만 돌보는 사회들보다 더 "적합"했을 것이라고 다윈은 주장했다. 러시아 자연학자 표트르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은 다윈의 작업의 이런 양태를 옹호했으며, 상호부조가 사회적 포유류 전체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윈과 크로포트킨의 시대에는 이런 주장들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연구가 초기 단계에 있었지만, 최근의 연구는 자연적 세계에 대한 이런 견해를 뒷받침했다. 그런데 특히 한 연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이런 지식 체계에 부가적 지지물을 덧붙였으며,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은, 카네기가 믿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결국 삶은 그렇게 불공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애니멀 비헤이버(Animal Behavior)>>라는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공평성은 인간의 사회적 계약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 비인간 영장류의 삶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사라 브로스넌(Sarah F. Brosnan)과 공동 연구자들은 침팬지들이 불공평한 자원 분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알아내기 위해 텍사스 대학교에 수용된 침팬지 집단에 대해 일련의 행동 시험을 수행했다. <<네이처(Nature)>>라는 저널에 발표된 브로스넌과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이전 연구는 꼬리감기 원숭이들이 자기 집단의 다른 한 구성원이 더 바람직한 물품(한 조각의 오이 대신에 포도)을 동시에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식품을 거부하곤 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어떤 개체들은 음식을 거부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을 연구자들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원숭이들은 무언가가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식한 듯 보였고 그에 따라 대응했다. 이것은 도발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사회적 계약의 기초는 우리의 진화적 사촌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음식에 관하여 침팬지는 대단히 개체주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브로스넌과 공동 연구자들은 이런 초기 결과들이 더 경쟁적인 종들에서 재현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려고 시도했다. 그 연구자들은 먼저 비식용 토큰을 보상 음식으로 교환하도록 모두 16마리의 침팬지를 훈련시킨 다음에 그들의 선호 음식을 평가했다(침팬지들은 항상 유사한 크기의 당근 조각보다 포도를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이 단순한 환전 경제에서 침팬지들은 각 토큰이 하나의 보상 음식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음식을 기대하면서 토큰을 연구자들에게 열심히 건네주었다. 일단 모든 침팬지들이 개별적으로 그 관련성을 깨닫게 되면, 연구자들이 집단의 일원을 동반했을 때의 반응을 가늠할 수 있도록 침팬지들은 토큰을 음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시험 영역으로 짝을 이루어 놓여지게 된다.

 

첫 번째 시행에서 두 침팬지는 토큰을 교환할 때 동일한 보상 음식(때때로 높은 가치의 포도, 때때로 낮은 가치의 당근 조각)을 받았다. 이것은 제어 실험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래서 이어지는 시행들에서 비교용으로 사용되었다. 연구자들이 불평등 시험으로 부른 두 번째 시행에서는 쌍 가운데 한 구성원만이 포도를 받는 반면에 나머지 다른 한 구성원은 당근을 받았다. 세 번째 변형된 시험에서는 두 개체에게 먼저 포도를 보여준 다음에 그들이 토큰을 건네주면 그들에게 당근을 주었다. 각 시행에서 연구자들은 침팬지들이 식품을 거부한 횟수를 기록한 다음에 그들이 다른 보상을 받았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이것을 제어 실험과 비교했다.

 

아마도 놀랍지 않게도, 침팬지들은 꼬리감기 원숭이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했으며, 자기 짝이 동일한 가격으로 맛있는 포도를 받았을 때 자신은 당근만을 받게 된다면 이의를 제기했다. 76회의 시행들에서 침팬지들은 둘 다 가치가 낮은 동일한 보상 음식을 받았을 때에 비해서 이런 시험들에서 당근을 거부하는 확률이 두드러지게 더 높았다. 마찬가지로, 두 개체가 먼저 포도를 본 후에 당근을 받았을 때, 그들은 더 나은 보상에 대한 어떤 기대도 제시받지 못한 경우들보다 거부하는 확률이 두드러지게 더 높았다. 요점은, 상황이 공평하지 않다면 역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이 으스스하게 친숙한 듯 들린다면 제대로 적중한 셈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항상 평등하고 공평하게 대우받는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 증언할 것이고, 침팬지는 세 살 먹은 아이의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들이 시사하는 것은 침팬지들이 공평함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어서 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경우에는 항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보상이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경우와 사전 합의가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침팬지들은 사회적 계약의 기본 신조들을 넘어서서 사회적 연대의 토대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을 예증했다. 95회의 시행에서 포도를 받은 침팬지들은 자기 짝이 당근만을 받았을 때 가치가 높은 보상을 거부하는 확률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불평등으로부터 이익을 보는 침팬지들도 그 상황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 상황이 다른 누군가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면 자기 보상을 향유하기를 거절했다.

 

뜻밖에도 우리는 침팬지들이 자기 짝 침팬지도 포도를 받을 때보다 그 침팬지가 가치가 낮은 당근을 얻었을 때 가치가 높은 포도를 거부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반응은, 침팬지들 사이에서든 꼬리감긴 원숭이들 사이에서든, 영장류에 대해 이전에 행해진 불공평에 관한 연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침팬지의 이런 단순한 행동을 인간 윤리의 복잡한 것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정말 사과와 오렌지(또는 아마도 더 적절하게, 당근과 포도)를 말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였을 때 우리는 서브프라임 채권을 AAA 등급의 증권으로 되팔기 위해 금융 파생 상품을 사용하여 재포장하는 것이 불공정한 행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금융 서비스 산업을 감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위원회의 구성원들을 포함하여)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동기가 자신보다 더 큰 파이 조각을 얻을 때 상황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이 공정하고 공평한지에 대한 일반적인 도덕적 감각을 갖고서 생을 시작했고, 그것에서 비롯된 틀을 발판으로 삼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들은 비슷한 도덕적 감각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가 공정하거나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것에 관한 정교함은 인간 종에 본질적으로 독특한 것보다 인간의 인지적 복잡성과 더 많이 관련되어 있는 듯 보인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종류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이다.

 

또한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속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의 앤드류 카네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사회적 계약의 예외라는 점을 믿게 만들었다. 공평성과 평등성은 작은 인간들에게 좋을 것이지만, 산업의 거장들에게는 그런 기묘한 관념들을 도외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카네기는 진화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틀렸던 것처럼 이것에 관해서도 틀렸다. 우리가 금융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움직일 때, 인간 사회에 대한 다윈의 이해를 고려하여 우리의 유인원 사촌들의 지침을 좇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협동과 공감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홀로 작업할 때보다 더 나은 성공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상황이 불공평하다면,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더 큰 몫의 파이를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영속화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