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제임스 웨스트콧: 오늘의 에세이-왜 인류세의 선언을 서두르는가?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5. 12. 8.

 

왜 인류세의 선언을 서두르는가?

Why the rush to declare the Anthropocene

 

―― 제임스 웨스트콧(James Westcott)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지질학적 시대―마지막 빙하 시대 이후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는 1833년에 영국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에 의해 지구가 "인간에 의해 점유되"어 버렸었던 시기를 포함하기 위해 처음으로 논의되었다. 1867년에 프랑스 고생물학자 폴 제르베(Paul Gervais)가 그것을 충적세(Holocene)로 명명했는데, 그 명칭은 1885년에 볼로냐에서 개최된 제3차 국제지질학총회(IGC)에서 공식화되었다. 그런데 그 술어가 1969년에 아메리카 합중국 지층 명명 위원회에 의해 승인된 것은 84년이 더 지난 후였으며, 그리고 2009년이 되어서야 충적세는 그린란드의 표면 밑 1,492미터 깊이에 있는 빙하 코어에 위치하는 자체의 국제 표식 지층 단면 및 포인트(GSSP)―또는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를 부여받았다.

 

지질학이라는 과학 그리고 그것의 관료 체제는 관념들이 분과학문의 개념적 퇴적층에 자리잡은 다음에 보편적으로 수용된 사실로 굳어지는 데 필요한 엄청난 기간(홀로세의 경우에는 176년) 동안 주제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런 경화는 GSSP에 의해 나타난다.

 

고별적 명판, 즉 '골든 스파이크'는 국제층서위원회(ICS)에 의해 부여된다. 그것은 두 유형의 지층 사이, 그리고 외삽에 의해 상이한 두 시대 사이의 암석 표면(또는 빙하 코어)에 격식을 갖추어 박히게 된다. 1970년대에 그 체계가 도입된 이래로 골든 스파이크는 층서학의 성배가 되었다. 지구에서 그것을 박을 적절한 장소, 반박할 수 없는 암석의 변화가 일어난 장소를 발견하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아직 자체의 골든 스파이크를 획득하지 못했지만, 지질 시간에서 바로 다음의 표지는 인류세이다. 하나의 제안으로서 인류세는 매우 설득력이 있고(<<이코노미스트>>, <<가디언>>, <<르 몽드>> 그리고 <<슈피겔>> 지에서 일면 특집으로 다루었다), 명백히 매우 긴급해서(한 낱말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지질학적 위계로 하여금 느린 절차를 급히 서두르도록 강제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는 데 있어서 결코 기다릴 수 없다.

 

2000년에 네덜란드 화학자이자 노벨 상 수상자인 폴 크루첸(Paul Crutzen)과 아메리카 생물학자 유진 F. 스토머(Eugene F. Stoermer)에 의해 현재의 형태로 구상되었고, 획기적인 2007년 논문에서 크루첸과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 전개된 인류세는 기후 변화에 대한 수많은 막연한 불안과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자신의 모습대로 만들고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포착하고자 하는 신조어이다. 그것은 인간을 어떤 '자연적' 힘에도 못지 않게 강력한 지질학적 힘으로 규정하고(우리는 강 퇴적 및 대양 퇴적을 비롯한 모든 자연적 과정들을 결합한 것보다 더 많은 물질을 움직인다), 우리가 모든 지구 체계들, 특히 이산화탄소 순환과 질소 순환을 재구성함으로써 원미래 문명들이 발굴하여 고찰할 유독한 지각을 남겼다고 인식한다.

 

2009년에 충적세의 골든 스파이크가 그린란드의 빙하 코어에 박힌 바로 그 순간에 인류세 작업 집단(AWG)―수십 명의 지질학자들과 다른 이해 당사자들로 구성된―은 인간이 전지구적인 지질학적 힘이 된 시점을 식별하기 위해 그 다음 스파이크를 찾기 시작했다. 인류세의 가장 중대한 증상들이 대략 70년 전에야 개시되었을 뿐이라는 점은 개의치 않은 채, AWG는 인간 시대에 대한 층서학적 근거를 확립하기 위해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노르웨이의 빙하 호수에 이르기까지 지구 전역을 탐색하고 있다. 격렬한 쟁탈이 진행 중이다.

 

올해에 이르기까지 인류세에 대한 세 가지 후보 개시 시기가 제안되었다. 상이한 학술 논문들에서 비롯되었지만, 매체에 의해 널리 요란하게 선전된 이것들은 다음과 같다. 1945년 7월 16일(최초의 핵 폭발이 일어난 날로서 AWG 자체에 의해 제시되었다). 훨씬 더 이전의 1610년(남극의 빙하 코어에서 탐지될 수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의 급강하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유럽인들이 도래함으로써 5천만 명의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사망한 후에 숲이 농경지를 압도한 시기를 나타낸다). 그리고 심지어 석기 도구들의 두꺼운 '카펫'―풍경을 명백하게도 영원히 바꾸어버린 초기 호미니드들에 의한 대규모의 석기 산업에 대한 증거―이 리비아의 급경사지 위에 퇴적되었었던 대략 100,000년 전. 마지막 시기는 평가하기가 곤란할 것인데, 한 지역과 결부된 인간 유발 결과는 시대를 규정하는 전지구적 표지와 매우 다르다.

 

층서학적 경계를 구성하는 것은 주로 특수한 화석 유형의 '갑작스러운' 출현 또는 소멸인데, 예를 들면, 석탄기는 3억6천만 년 전에 일어난 석탄의 출현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지질학자들에게 난점은 암석 속 화석 층들에는 균일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층들 사이의 균일한 시대 경계들을 확립하기 위한 증거―방사 분석 연대 측정법을 통한―는 일관성이 훨씬 더 작다. 이것은 변화가 일반적으로 통시적이어서 다른 장소에서는 다른 순간에 그리고 다른 속도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인류세의 경우에는 지질학자들이 직면하는 전형적인 걸림돌이 반전되는데, 그들은 최근 사건들에 대한 명료한 시대 구분―최근 인간 역사에 대한 꼼꼼한 문서 기록 덕분에―을 갖고 있지만, 암석에 새겨진 실제 증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암석은 캘린더 시간과 상이한 독자적인 시간 감각을 갖추고 있다. 층서학, 또는 더 정확히 시간층서학의 난제는 그 둘을 결합하는 것이다.

 

새로운 경계에 대한 모든 발견이 우리 종의 현존을 하찮게 보이게 하는 반면에―예를 들면, 석탄기 동안 석탄이 쌓이게 된 수백만 년의 세월과 비교하면―인류세는 인간을 전면에 그리고 중심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세와 기는 일반적으로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의 개략적인 경계들에 의해 규정되는 반면에, 인류세의 경우에는 그것을 초까지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1833)에서 찰스 라이엘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는 격언―지질학적 과정들은 심원한 시간에서 작동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지금도 작동한다는 당시에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 관념―을 제시했다. 이것은 현재 시대를 검토함으로써 선행 시대들에 관한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을 함축했다. 그러므로 라이엘은 두 시대 사이의 지질학적 연결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우리가 심원한 과거와 우리 자신들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런데 인류세의 옹호자들은 두드러지게 인류세적인(성급하고, 과장되고, 오만하며, 무의식적인 행동을 가리키기 위해 인류세에 의해 제공된 거대한 새로운 형용사) 라이엘의 격언의 가속화를 강제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는 격언을 다음과 같이 재조정하고 있다. '미래는 현재의 열쇠이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는 세계관을 상정한다. 인류세와 관련하여 서사시적 성급함의 감각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미래의 잠재적 재난들이 지금 가시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발 위에 쌓이고 있는 인간 역사의 잔해가 영원한 반석으로 변화되기도 전에, 우리는 그런 미래를 지금 명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싶어한다.

 

잠재적으로 획기적인 한 사건에 대해서 2015년 10월에 베를린에서 개최된 AWG의 첫 대면 모임 후에 열린 기자회견은 조용했고 참석자들이 적었다. 그렇지만 라이세스터 대학의 고생물학자이자 AWG 의장인 얀 잘라시에비츠(Jan Zalesiewicz)는 알릴 중요한 뉴스가 있었다. 그는 AWG가 2016년에 자체 보고서를 국제층서학위원회에 제출할 때 인류세의 공식화를 옹호하는 강한 논변이 제시될 수 있다는 느낌이 작업 집단 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AWG는 인류세 개시 시기를 1950년대 초로 권고할 것이다(우리 부모와 조부모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전적으로 상이한 시대에 귀속시킬 것이다). 왜 그때인가? 글쎄, 일련의 전후 열핵 시험 폭발들이 탄소-12와 플로토늄-239―4,110년의 반감기를 갖는다―의 형태로 지구 전역에 퍼진 방사성 핵종 표식을 남겼다. 또한 1950년대 초는 댐 건설에서 비료 생산, 오존층 고갈에 이르기까지 지구 지배의 모든 양태에서 수반된 급상승―<<전지구적 변화와 지구 체계(Global Change and the Earth System)>>(2004)에서 빌 스테펜(Will Steffen)과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과 더불어 전례없는 경제 성장 및 인구 증가의 시기인 20세기 후반기의 거대한 가속의 개시와도 일치한다.

 

인류세의 옹호자들은 인간 활동이 지구를 거의 전적으로 지배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대단히 다양한 증거를 갖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것들 가운데 하나는 아메리카 합중국이 포장된 정도를 보여주는 새로운 지도이다. 그런데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 있어서 공식화와 관련된 그들의 문제는, 지구는 이런 치명적인 음식을 토양권(pedosphere, 최외각층)을 통해서 암석권(lithosphere, 토양층 아래의 지각)으로 이제 막 소화하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난제는 시간적으로 훨씬 더 과거로 깊이 파는 데 익숙한 지질학자들에게 현재 축적되고 있는 증거가, 층서학적으로 말하자면, 심원한 미래에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예언자가 되기를 요청받고 있다.

 

AWG는 자체의 확신을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 새길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다.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은 권고하는 일뿐이다. 화력 발전소에서 새롭게 흩어지는 불연성 재처럼 AWG와 그것의 발견 결과는 대단히 육중한 강단의 지층들―제4기 층서학 소위원회, 국제층서학위원 그리고 반석이자 최종 결정자로서의 국제지질학연맹―꼭대기 위에 뿌려진 얇은 층에 불과하다. 학술적 위계의 각 층은 올라갈수록 더 전통적이고, 그래서 여전히 전개되고 있는 과정들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설득하기가 더 어렵다.

 

베를린의 AWG 모임에서 하버드 대학의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Naomi Oreskes)는 저녁 강연을 펼쳤는데, 지질학자들이 인간들은, 지질학적으로 말하자면, 언제나 사소할 수밖에 없다고 믿도록 어떻게 세뇌당하고 있는지 예증하였다. 오레스케스는 자신의 팔을 펼치면서 역사의 영향력 규모에서 인간 현존은 손톱 다듬는 줄에 의해 손톱이 깎여나간 것을 나타낼 뿐이라고 배우게 된 방식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인류세라는 관념과 더불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지혜를 반전시키고 있다고 오레스케스는 말했는데, 코페르니쿠스는 인간들을 우주의 중심에서 쫓아냈지만, 이제 우리는 복귀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틀림없이 논쟁의 중심으로 강제로 휩쓸리게 된 분과학문에서 비롯되는 저항이 존재한다. '인류세는 층서학의 쟁점인가 아니면 대중 문화인가?(Is the Anthropocene an issue of stratigraphy or pop culture?)'(2012)라는 논문에서 뉴욕 주립대학의 층서학자 휘트니 오틴(Whitney Autin)과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의 층서학자 존 홀브룩(John Holbrook)은 인류세를 공식화할 만큼 충분한 증거가 이미 존재한다는 주장에 "깜짝 놀랐다"고 서술했다. '과학과 사회는 층서학적 명칭에 관한 난해한 논쟁을 수행하는 대신에 인간들이 지구 체계 과정들을 추동하는 방식에 대한 명료한 이해로부터 얻을 것이 많이 있다'고 그들은 적었는데, '층서학이라는 분과학문 역시 보호할 명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류세는 층서학의 기초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래서 고전적인 실무자들은 매체가 그들이 주의 깊게 구성한 시간층서학적 체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때 자연스럽게 방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기록 사냥꾼으로서 모형들을 예측하는 것은 그들의 직무가 아니다. 이 시대를 분류하는 작업은 3000년 또는 4000년의 지질학자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베를린 회의 말미에 행해진 인터뷰에서 분명히 기진맥진한 잘라시에비츠는 인류세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반복해서 진술했지만,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우리는 수 기가톤의 콘크리트, 변경된 퇴적 경로들, 댐 등을 수직적인 층서학적 등가물로 번역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그 과학의 역사가 너무 일천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근히 연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 자금도 없습니다.'

 

잘라시에비츠는 골든 스파이크를 찾아내야 할 필요에 의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판가들의 주의 집중에 의해 약간 좌절하고 있다는 점이 감지된다. 더 자유로운 순간에 그는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인류세는 층서학에서 인간의 영향을 탐지할 수 있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체계의 변화를 반영한다(가장 중요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생물학적 체계의 변화이다).' 그럼에도 공식화를 추구하겠다는 AWG의 결정은 이제 그 집단은 지질학적 위계의 문들을 관통하여 도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골든 스파이크에 대한 탐색은 항상 어렵지만, 작동하는 지질학적 술어를 갖기 위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잘라시에비츠는 말했다. '절대적으로 명료하고 명확하며 널리 추적할 수 있는 시간층서학적 경계들은 매우 드물고, 지금까지 나는 충분히 오랫동안 씨름했다.' 2013년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잘라시에비츠는, 대략 5억 년 전에 일어난 선캄브리아대에서 캄브리아대로의 변화는, 오늘날의 견지에서 바라보면 '폭발'일지라도, '사실상 대략 4천만 년에 걸쳐 유지된 일련의 혁신들로 구성되었는데, 그것들 가운데 단 하나, 즉 트렙티크누스(Treptichnus) 형의 지형 개시가 공식적인 층서학적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선택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골든 스파이크 사냥은 인류세주의자들을 역설적으로 약한 입장에 처하게 하는데, 자격을 부여하는 표지가 초강력 폭풍과 외래 칩입종에 의해 초래된 멸종 같은 지금 당장 땅 위에서 전개되고 있는 인류가 유발한 결과의 규모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보이는 것―비가시적인 미량의 방사성 핵종처럼―이 될 것이다.

 

AWG의 공식화 제안이 거부당한다면, 수사학적으로 그런 불일치는 훨씬 더 악화될 것인데, 새로운 유형의 회의주의자―1950년 이전에 태어났으며, 지구는 길들여질 수 없고 소진될 수 없다는 확고하고 지금은 명백히 확신하는 믿음을 품고 있는 인류세 부인자―를 위한 구실을 제공할 것이다.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를 선언하려고 서두르고 있는 인류세주의자들은 선제적일 뿐 아니라(그리고 인류중심주의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 지질학은 소진된 지구의 인간적, 생물학적, 화학적 및 도덕적 의미를 표헌하는 것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그렁지만 그것은 대 위에 올려져서 우리를 대신하여 결정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잘라시에비츠가 AWG의 보고서를 제출하면 그것은 롱비치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지질학자이자 국제층서학위원회 현 회장이며 최고의 인류세 회의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스탠 피니(Stan Finney)이 책상 위에 놓여지게 될 것이다. 피니는 인간 활동이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의 주요한 쟁점은 지질학적 공식화의 추구에 담겨 있는 논리적 오류이다. '충적세에는 인간의 모든 기록이 존재하고, 그래서 층서학적 기록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피니는 말한다. '직접적인 관측 결과를 갖고 있으면서 왜 해석적 시간 척도를 사용하는가? 우리는 인간들의 유물인 건물과 유적들이 퇴적층에 흔적을 남길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들이 건립된 정확한 수와 날짜들을 알고 있다.'

 

피니와 다른 지질학자들은 지난 70년, 오늘날 그리고 미래 동안의 인간 활동에 대한 권위로서 층서학을 사용하는 것의 범주 오류에 당혹스러워 한다. 바로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초고해상도의 결과를 이미 갖고 있으면서 왜 저해상도의 증거―지하에 묻힌 미세한 표지들―를 찾고 있는지 그들은 의아해 한다. 역사적 기록, 하드 드라이버와 CD들에 담겨 있는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서 왜 암석에 집착하는가?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이온빔 물리학과의 물리학자 이르카 하이다스(Irka Hajdas)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관한 전문성뿐 아니라 회의주의 덕분에 AWG에 참여하게 되었다. 열핵 시험에서 비롯된 방사성 핵종들이 인류세에 대한 명료한 잠재적인 골든 스파이크이지만, 하이다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볼 때, 지질학자들은 이미 "인류가 유발한 결과"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지질학적 경계로 간주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방사성 핵종들이 인류가 지층에 편입시킨 가장 큰 입력일 것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세계를 바꿔 버렸다. 여기에 경계를 정하자.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급진적인 신석기 이전 층서학자들이 존재했었다면, 그들은 지구가 더워지기 시작한 14,500년 전을 충석세의 개시 시기로 선언하기를 갈망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직후에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기 한랭화 사건이 일어나서 기후를 다시 혹한 상태로 되돌렸을 때 그들은 무엇을 했었을 것인가라고 하이다스는 묻는다. 충적세의 간빙기 안정성이 실제로 개시되는 데에는 2,800년이 더 걸릴 것인데, 이 시점에서 그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세에 대한 층서학적 증거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2013년 <<어스사이언스 리뷰즈(Earth-Science Reviews)>>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알버타 대학의 알렉산터 울프(Alexander Wolfe)와 공동 연구자들은 몬타나주의 베어투스 와일더니스, 캐나다의 배핀 아일랜드, 웨스트 그린란드 그리고 노르레이의 스발바르 같은 명백히 순수하고 광범위한 지역들의 빙하 호수 바닥에서 '오염된' 퇴적물을 끌어올린 것을 서술한다. 이런 빙하 호수들 가운데 하나는 인류세가 영원히 자체의 더러운 지문을 남기고 있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울프는 퇴적물 코어들에서 질소 농도의 증가(전지구적인 인공 비료 생산에서 비롯된) 및 화석화된 규조(온난한 온도에서 번성하는 미시적인 플랑크톤)들의 증가와 더불어 퇴적물 조성의 또렷한 변화(퇴각하는 빙하로 인한)를 찾아내었다. 이런 변화들은 1950년 이후에 나타났거나 가속화되었다. 그러므로 울프는 성배, 즉 충적세와 인류세 사이의 하부 경계를 특징짓는 골든 스파이크를 찾았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전지구적 영향을 심란하게도 드러낼지라도, 울프의 결론은 여전히 대체적으로 다른 무언가에 의해 쉽게 지워지거나 대체될 수 있을 극히 최근의 취약한 증거의 심원한 미래에 있어서의 중요성, 지속성 그리고 판독 가능성에 관한 주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세는 여전히 분과학문적으로 올바르지 않은데, 공식화는 지질학적 시간 척도의 현재 기준에도 부합되지 않고 층서학의 전통적인 메커니즘들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인류세가 공식화되기 위해서는 지질학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2016년에 AWG가 자체 권고안을 제출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역설적으로 인류세주의자들은 지질학적 시간 척도만큼 심원한 것에서 지위를 추구함으로써 그들의 이론을 급히 팔고 있다. 지구 체계를 변경시키는 다면적인 공포를 품고 있는 인류세는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 물론 희망은,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우리를 본떠서 명명할 수 있다면 인간들이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래서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마침내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진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안다는 것'이, 예를 들면, 최소한 단일한 쟁점인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반면에, 인류세는 오늘날 인간들과 관련하여 편재하는 모든 것을 잠재적으로 포괄하는 관념이다. 인류세를 왜 암석에 한정시키는가? 인류세는 대단히 물질적인 상태이지만, 또한 그것은 무형의, 심지어 실존적인 상태이다. 세계는 벗겨지는 동시에 감지 기술과 데이터 수집 기술의 새로운 디지털 층에 파묻힌다. 어떤 신비도 남지 않게 된다. 한 종으로서 우리를 여기에 이르게 했고 다음에 데리고 갈 충동을 제외하고, 인류세에는 모든 것이 알려지거나 알려질 수 있다.

 

골든 스파이크 탐색의 배후에 놓여 있는 것은 더 근본적인 언어적 탐색이다. <<자연 없는 생태학(Ecology without Nature)>>(2007)라는 책에서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은 이렇게 지적한다. '관점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념은, 세계관이라는 관념 자체와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시대에 깊이 정착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낭만주의적 성향을 품는 것에 관한 관념을 좌절시킬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한 낱말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고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