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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풀: 오늘의 서평-과학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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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17.

 

※ 데이비드 우튼(David Wootton)

<<과학의 발명: 과학 혁명의 새로운 역사(The Invention of Science: A New History of the Scientific Revolution)>>(2015)

 

본래의 과학 혁명: 철학자들에 대한 수학자들의 승리

A true scientific revolution: the triumph of mathematicians over philosophers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것에 관해 옳지는 않았었다는 것이 수용된 순간이 과학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 스티븐 풀(Steven Poole)

 

몇몇 대중주의적 권역에서는 여전히 근대 초기의 과학 혁명이 종교적 미신에 대한 실험적 이성의 승리로 서술된다. 지루한 논박은 차치하고, 이런 유언비어는 거의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 데이비드 우튼의 매혹적인 역사서의 많은 미덕들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가 보여주듯이, 16세기와 17세기의 신흥 질서의 선봉에 섰던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이었는데, 그들은 새로운 과학을 무신론을 막는 보루로 간주했으며, 그리고 우튼이 설득력 있게 논증하듯이, 창조주 신에 대한 믿음의 전통이 없었다면 뉴턴주의는 구상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튼의 이야기에서,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과학의 전통을 만들어낸 혁명은 오히려 상이한 종류의 승리이다. 핵심 줄거리는 1572년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에 의한 신성(이른바, 폭발하는 별)의 최초 식별에서 아이작 뉴턴의 중력 이론(1687)과 <<광학(Opticks)>>(1704)에까지 이르는 장기 17세기에 걸쳐 있다. 우튼은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에 관해 옳았었다고 가정한 철학자들에 대한 수와 실험을 교묘하게 사용한 수학자들의 반란으로서 굉장히 자세하게 서술한다.

 

이 이야기에서 수학자들은 갈릴레오(주로 망원경 때문에 기억되지만, 물에 부유하는 객체들에 대한 현학적인 실험도 수행했다) 같은 초기 과학자들을 포함하는데, 더 놀랍게도 회화에서 원근법의 규칙들을 최초로 집대성한 예술가들도 포함한다. 우튼이 분명히 지적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이런 지적인 영웅들이 많은 분과학문적 모자들을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갈릴레오는 탄도학 문제들에 관해 연구했고, 브라헤와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는 천문학자였을 뿐 아니라 지도제작자였으며, 코페르니쿠스는 "화폐 개혁의 전문가"였다. 그리고 재강조되는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렇게 혁명적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의 태양중심적 체계는 고정된 천구들에 관한 관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브라헤의 경합적 체계가, 비록 틀렸더라도, 고정된 천구들을 제거했기 때문에 더 중요했다.

 

그런데 우선 "과학 혁명"이 정말로 있었는가? 우튼이 인정하듯이, 고대부터 여기저기서 과학적인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탐구들이 진행되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중세 아랍의 광학 그리고 근대 이전의 천문학은 모두 과학이었고, 그래서 "연속성 견해"가 존재하는데, 그 견해에 따르면 16세기와 17세기 유럽에서 전적으로 전례가 없는 것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우튼은 이런 견해는 틀렸다고 역설하는데, 그의 테제는 17세기에 "근대 과학"이 개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근대"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을 그것에 선행하는 것에 대립적인 것으로서 상정하는 덕분에 이 주장은 자동적으로 참이 된다. 그래서 그 주장은 반드시 악순환은 아닐지라도 순환 논증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우튼은 1979년에 엘리자베스 아인젠슈타인(Elizabeth Eisenstein)에 의해 제시된 "아이젠슈타인 테제"로 알려져 있는 것을 설득력 있게 옹호하는데, 그 테제는 인쇄술의 발명이 과학 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쇄된 서적들 덕분에 복잡한 도표들의 재생산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연구자들은 어떤 특수한 문제에 관해 여태까지 생각되었었던 모든 것을 개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우튼이 서술하듯이, 그것들은 "일종의 지적 무기 경쟁"을 조장했다. 또한 17세기의 자연철학자들은 새로운 일군의 유리 장치들, "기성 권위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인 태도" 그리고 "새로운 언어"도 갖추고 있었다.

 

이 새로운 언어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사실, 증거, 실험, 가설 그리고 이론들에 관해 말하는 언어였다. 이 책의 핵심에는 언어적 논증이 놓여 있는데, 16세기와 17세기에 이런 낱말들의 출현은 두드러지게 새로운 관념들이 출현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우튼은 이 테제의 매우 강한 판본을 제시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는 문자 그대로 "발견"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우튼은 주장한다. 그때까지 모든 발견은 사실상 상실된 고대인들의 지혜의 재발견이라는 점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고 우튼은 적고 있다. 이 주장은 라틴어 인베리네(inverine, "찾아내거나 발명하다")가 언제나 "발견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것에 의존하는데, 그것이 바로 콜럼버스가 자신의 발견을 보고하는 데 사용한 낱말이었을지라도 말이다.

 

다른 개념들은 해당 낱말들이 만들어지기 전에 존재할 수 있었으며 그리고 존재했다고 우튼은 지적한다. 과학적 실험들은 "실험"이라는 술어가 통용되기 전에 수행되었지만(프톨레마이오스, 갈레노스, 알하젠 등에 의해), 17세기에 새로웠던 것은 지식에 이르는 길이자 지식 공유를 위한 새로운 "실험 연결망"으로서의 실험 작업에 대한 새로운 존중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튼이 보여주듯이, "자연 법칙"이라는 관념은 정말로 새로운 것이었고 입법자 신이라는 관념에 의존했다. 사실과 증거에 관한 과학적 관념들은 법정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입증된다. 전체적으로 우튼은, 우리는 "신기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생산 속도와 새로운 지적 도구들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그의 주장을 멋지게 정당화한다.

 

이 책은 "권위 있는(magisterial)"이라는 서평자의 술어가 필연적으로 암시하게 되는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텍스트 디자인과 활자 그리고 풍부한 삽화들을 갖춘 멋진 물건이다. 그것은 망원경으로 달의 지도가 작성된 방식, 거의 진공인 상태를 만들어낸 초기 실험들 또는 최초의 증기 기관의 발명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에 있어서 엄청나게 훌륭하다. ("증기 기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커피 제조 방법들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우튼은 충고한다. 나는 그랬다고 보고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학적 및 철학자 영역으로 화제를 전환할 때 이 책은 설득력이 감소된다. 우튼은 자신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아무런 역사 감각"도 갖추고 있지 않았고, 사실상 그 극작가는 "고대 로마를 햇빛과 토가가 있는 당대의 런던과 꼭 닮았다고 상상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에 출판된 A D 너털(Nuttall)의 <<사상가 셰익스피어(Shakespeare the Thinker)>>에 대한 서평에서 우튼은 "우리는 사실상 셰익스피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데, 이것은 아무 수정도 필요하지 않는 견해이다.]

 

공평무사한 독자의 쾌락에 더 위협적인 것은 1990년대 "과학 전쟁"의 확장적이고 공격적인 활성화를 구성하는 그 책의 상당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과학의 발명>>은 과학사 책일 뿐 아니라 수정주의적 과학사 서술인데, 여기서 우튼은 이른바 "과학사회학자들"과 "문화 결정론자들"로 불리는 균일한 학파들을 공격하면서 두 가지 미심쩍은 견해들―이것들의 극단적 판본들은 거의 아무도 견지하지 않는다―사이에 스스로를 신중하게 위치시키는 데 수천 개의 퉁명스러운 낱말들을 소비한다. (또한 우튼은 경쟁하는 과학사가들과 과학철학자들―특히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라는 획기적인 책의 저자인 토머스 쿤―을 스펙트럼의 덜 옹호할 만한 양끝으로 몰아가려고 시도한다.)

 

우튼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될 뿐이고, 그래서 양자역학이 사체액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여전히 "상대주의적"인 사람들은 거의 없다. 과학적 지식은 실재의 궁극적 본성에 관한 진리에 대한 투명한 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거의 없거나 더 적다. 우든은 결국 진리는 중간 지대의 어딘가에 놓여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바로, 그가 틀림없이 흔쾌히 인정할 것처럼, 오래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지했던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