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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스트라이트호스트: 오늘의 에세이-보편적 기본 소득을 옹호하는 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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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7.

 

보편적 기본 소득을 옹호하는 논증

The Argument for Universal Basic Income

 

―― 톰 스트라이트호스트(Tom Streithorst)

 

뉴스에서 기본 소득 보장(BIG, Basic Income Guarantee)이 다시 거론된다. 스위스인들과 마찬가지로, 핀란인들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데, 시험된 모든 수당을 모든 시민에 대한 단순한 현금 지급으로 대체하여 모든 사람에게 생존하기에 충분한 돈을 지불하고자 한다. 현재 실행 중인 대부분의 수당 프로그램들과 달리, 그것은 가치가 있는지 또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또는 가난한지 여부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여러분도, 나도,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도, 다리 밑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들도 그것을 수령한다.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 1969년에 진지하게 제안한 것이 가장 최근이었는데, 더욱 더 많은 경제학자와 블로거들이 기본 소득 보장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구제책일 것이라고 넌지시 주장하고 있다. 기본 소득 보장은 빈곤을 퇴치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며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방대하게 개선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기본 소득 보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실용적이고, 심지어 유토피아적인 듯 보일 것이지만, 나는 기본 소득 보장이 향후 몇 십 년 내에 제도화될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술과 자본주의는 대체로 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는 예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노동과 자본을 더 적게 투입하면서 더 많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노하우가 있고, 자원이 있고, 훈련된 노동이 있으며, 돈이 있다. 기업들이 결여하고 있는 유일한 것은 소비자들이다. 물건 만들기는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기업가들(그리고 중앙은행 은행가들)이 밤에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건 팔기이다. 임금 정체는 노동의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시적 이자율은 자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공황 이래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수요가 현대 경제의 취약점이라고 인식했다.

 

지난 80년 동안 우리는 세 가지 매우 상이한 방식으로 수요 문제를 해결했다. 첫 번째 방식은 전쟁이었다. 1938년에 아메리카 합중국 실업률은 거의 20%였다. 1944년에는 겨우 1%였다. 모든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종식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를 소생시킨 것은 시민들의 학살이나 도시들의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정부 차입에 의한 대규모 재정 부양이다. 주축국들을 패배시키는 데 지출한 만큼 차입금을 학교, 주택 그리고 도로를 건설하는 데 지출했더라면, 경제적 효과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군사적 케인즈주의의 이점은 정치적인 것인데, 정부 지출을 혐오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전쟁에 관한 한 그들의 혐오감을 극복할 수 있다.

 

전후 황금 시대 동안 시행된 두 번째 방식은 임금 인상이었다. 1950년과 1970년 사이에 아메리카 합중국 평균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2배로 인상되었는데, 그 이후에는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 그때로 되돌아가면, 생산성 향상이 거의 직접적으로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됨에 따라 소비 지출도 상승했다. 생산성 증가는 각 노동자가 더 많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임금 인상은 노동자가 물건 구매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광고는 사치품을 필수품으로 변환시켰다. 임금 인상과 결합된 생산성 향상 덕분에 세계의 GDP 성장이 역사상 최대로 이루어졌던 황금 시대가 등장했다.

 

1982년부터 금융 위기에까지 이르는 가장 최근의 시기에 경제 팽창의 엔진은 언제나 증가하는 개인 부채 수준이었다. 레이건과 대처 이후에, 생산성은 불변의 향상을 지속하였지만 임금은 상승을 멈추었다. 임금이 정체되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 많은 빚을 짐으로써만 그들이 생산한 모든 것을 구매하기에 충분할 만큼 소비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은행들이 기꺼이 대출을 해주는 한, 경제는 가까스로 성장했고(황금 시대보다 훨씬 더 느리게 성장했지만) 잔치는 계속될 수 있었다. 그런데 금융 위기 후에 더 많은 빚을 지려는 가구의 의향과 대출을 해주려는 은행의 의향 둘 다가 위축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갖혀 있는 경제 침체에 처하게 되었다.

 

수요를 부양하는 예전의 이런 세 가지 방법은 시효가 지나가 버렸다. 세계대전은 경제를 소생시킬 것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치를 것이다. 더욱 더 많은 노동자들이 로봇, 소프트웨어 또는 임금이 훨씬 더 낮은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됨으로써 불행하게도 임금 인상은 이루어질 개연성이 없다. 그리고 부채 수준의 상승은 불평등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금융 불안정성도 초래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매년 기술적 진보 덕분에 노동과 자본을 더 적게 투입하면서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낼 수 있다. 소비자로서 이것은 멋진 일이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좋고 더 저렴한 재화를 구매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로서 생산성 증가는 일자리를 위협한다. 같은 양의 물건을 만드는 데 더 적은 노동자들이 필요할 때,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없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은 더 나빠질 것 같다. 로봇의 흥기로 향후 20년 내에 현존하는 일자리의 47%가 없어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로봇은 아이폰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을 구매할 수는 없다. 우리가 탈희소성 미래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면, 기본 소득 보장만이 세계 경제가 계속 작동하기에 충분한 수요를 보장할 수 있다.

 

이익을 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부유한 사람들도 감세의 형태로 꼭 같은 금액의 대금을 수령한다. 기업들도 이익을 본다.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불룩해지면 판매가 증가하여 수익이 상승한다. 그리고 기업들은 더 이상 생활 임금을 제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노동 비용이 하락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고용주들에게 고용할 이유를 제공할 것이다. 한편으로, 어쨌든 소득이 보장된 노동자들은 터무니없는 상사에게 "일단 일을 구하고 그 다음에 그만두거나 옮겨라(take this job and shove it)"라고 말할 자유를 가질 것이다. 이런 편익들은 기본 소득 보장이 다양한 부문에서 상당한 지지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기본 소득 보장의 부수적 편익일 뿐이다.

 

기술적 진보가 계속해서 일자리를 없앤다면, 기본 소득 보장이 탈노동 미래에서 수요를 유지시킬 수 있을 유일한 방책일 것이다. 모든 시민에게 매달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기본 소득 보장은 수백 만 명을 학살하지 않은 채 제2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재정적 부양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의 실행을 가로막고 있는가? 기본 소득 보장과 관련된 첫 번째 문제는 그것이 참이기에는 너무 좋게 들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짜 점심을 약속하는 사람에 대해 의심하라는 말을 들었으며,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의 보상으로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은 확실히 공짜 선물인 듯 보인다. 희소성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DNA에 새겨져 있다. 기본 소득 보장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실행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공급이 아니라 수요가 성장의 병목이라는 점을 알게 될 필요가 있다. 돈은 제한적으로 일정하게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양적 완화를 통해서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내어 금융 부문에 제공하는데, 그것이 대출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희망한다. 오늘날 아데어 터너(Adair Turner)경, 마틴 울프(Martin Wolf) 그리고 심지어 벤 버냉키(Ben Bernanke) 같은 주류 인물들도 개인 은행 계좌로의 돈의 "헬리콥터 드롭(helicopter drop)"이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낳았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기술관료들도 기본 소득의 실용성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경제적 블로그 권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대중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로봇의 흥기, 재화와 용역에 대한 가격의 지속적 하락 그리고 일자리의 소멸이 궁극적으로 이 교훈을 얼마든지 많은 선의의 에세이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학적인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여전히 고용되어 있다. 어떤 근본적인 면에서 우리는 직업이 자신을 수당에 의존하는 나태한 게으름뱅이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든다고 느낀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들을 위한 수당을 인상하는 것(또는 수당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것)을 싫어하게 만들고, 게다가 스스로를 국가로부터 돈을 수령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 간주하기를 싫어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라는 책(그가 자신의 걸작으로 간주한 책)에서 우리 인간들은 주로 타인들에 대한 고려에 의해 자극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싶어한다. 스스로가 복지 수령자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의 심리적 즐거움이 진정한 경제적 편익을 능가할 수 있다. 이런 반대 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직업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20세기적인 것이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술적 진보가 계속해서 전통적인 일자리들을 없앤다면, 이런 반대 근거도 결국 일소될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들이 더 찾기 어려워짐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기본 소득 보장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할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경제를 부양하여 생산 가능성의 최전선으로 밀어붙임으로써 기본 소득 보장은 성장을 증진시킬 것이지만, 그것이 재분배적 정책이기도 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파이가 더 커질 것이지만, 그것은 다르게 조각날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부유한 사람들에게 돈을 퍼줌으로써 경제를 부양했다. 기본 소득 보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퍼줄 것이다. 그리고 상위 1%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몹시 혐오스러운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방책으로서 감세를 선호한다. 그들이 그것을 인정하기를 꺼려할지라도, 이것은 교과서 케인즈주의이다. 정부가 지출을 삭감하지 않는 한,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불룩해지면 필연적으로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감세 정책은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며,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불로 소득을 지출하기보다 저축하는 경향이 있다. 저축 부양은 감세 정책의 불필요한 부산물이다. 오늘날 저축은 과잉 상태이고 투자와 소비는 부족한 상태이다. 기본 소득 보장은 돈을 지출할 개연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을 겨냥한 감세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것이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기본 소득 보장은 수요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부양하고, 기업 수익을 증가시키고,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제공하며 그리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한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건전하고 정치적으로 명민하다. 그런데 매우 부유한 사람들은 실업이 아니라 재분배를 두려워하고, 그래서 그들이 기본 소득 보장 정책의 실행에 반대하는 가장 중대한 세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