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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핼버슨: 역사철학 XXXIII-데이비드 크리스천, 시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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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0.

역사철학 XXXIII: 데이비드 크리스천, 시간의 지도

Philosophy of History Part XXXIII: David Christian, Maps of Time

 

―― 대니얼 핼버슨(Daniel Halverson)

 

다양한 상이한 규모에서 일어나는 모든 패턴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패턴의 존재 자체이다.  ―― 데이비드 크리스천

 

데이비드 크리스천(1946- )은 거대사(Big History)―거대사가들은 바로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친 모든 지식의 거대한 종합을 지향하기 때문에 줄잡아서 표현하는 명칭―를 대표하는 작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레일리아계 아메리카인 역사가이자 공공 지식인이다. <<시간의 지도(Maps of Time)>>(2004)에서 크리스천은 바로 그런 종합을 시도했는데, 저명한 세계사가 윌리엄 H. 맥닐(William H. McNeill), 지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Jered Diamond), 천문학자 에릭 체이슨(Eric Chaisson)과 에리히 얀치(Erich Jantsch) 그리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긴 경험에 상당히 의존했다.

 

그런 종합은 더 오래된 신화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실상 우주 전체에 익숙해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현대의 창조 신화"가 될 것이라고 크리스천은 설명했다. 더 오래된 신화들과 꼭 마찬가지로 그런 종합은 우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설명할 것이지만, 그것들과는 달리 과학에 의거할 것이고, 그래서 오래된 의문들에 대한 현대의 갱신된 대답을 구성할 것이다. 이십 세기 동안 과학에서 이루어진 엄청난 이론적 진전과 합법적인 학술 활동으로서의 세계사(World History)의 전개 외에 그런 신화를 과학에 정초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매우 중요한 기술적 진전, 즉 "연대 측정의 혁명(chronometric revolution)"이 있다. 탄소 연대 측정과 스펙트럼 분석 덕분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사실상 모든 대상에 꽤 정확한 연대를 비정하는 것이 최초로 가능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편사(universal history)를 구축할 확고한 토대를 갖추고 있다.

 

사학자들이 그런 계획에 관해 어떤 거리낌을 갖고 있더라도 그 시도는 유의미하면서 필요한 작업이라고 크리스천은 주장했다. 우리는 큰 의문들을 제기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거대사가 제시하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사실상 우주의 이야기는 복잡성의 이야기이고, 그래서 거대사가 자체적으로 설정하는 과업은 복잡성의 기원, 진전 그리고 본성에 대한 설명이다. 크리스천은 복잡성을 "자체 생존이 자유 에너지의 흐름에 의존하는, 정확히 연결된 많은 내부 성분들과 참신한 '창발적 특성들'"을 갖는 존재자들의 특성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면, 자체 성분들이 정확히 연결될 때 자유 에너지가 가솔린에서 피스톤을 거쳐 구동축으로 흐를 수 있고, 그래서 차량에게 이동이라는 창발적 특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내연 기관은 복잡한 존재자이다. 역으로, 그것의 구조가 충분히 훼손당하고 어떤 임의의 지점을 지나게 되어 그것을 특징짓는 창발적 특성들과 에너지 흐름이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기관에 관해 정말로 말할 수 없으며, 기관 부품들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항성, 은하, 아메바 그리고 문명도 모두 복잡성의 사례들로 이해될 수 있다.

 

우주의 수명 동안 복잡성의 상위 임계점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는데, 원자에서 시작하여 분자, 식물과 항성, 단세포 미생물, 인간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금 당장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인간 사회로 확대되었다. 예를 들면, 에너지 밀도에 의거하여 측정하게 되면, 인간 육체는 대략 항성보다 10,000배 가량 복잡하고, 뇌는 75,000배 가량 복잡하며, 전체적으로 인간 사회는 250,000배 가량 복잡하다. 에너지 흐름은 고등한 수준의 복잡성에서 훨씬 더 높기 때문에 더 복잡한 것이 더 취약하고, 더 단명할 것이라고 합당하게 추리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서술되듯이, 언제나 복잡한 것은 항상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구배에 맞서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복잡성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간 축적, 즉 거대사가 하나의 종합적 설명으로 엮는 다양한 과학적 및 학술적 분과학문들과 복잡성의 임계점들을 특징짓는 경계들을 살펴야 한다. 첫 번째 축적은 우주론에 의해 다루어지는 우주와 그것의 기원이라는 축적인데, 우주론은, 고대 시대의 창조 신화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는 방식으로, 우주는 무에서 생성되었으며 생성 방식이나 이유는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쨌든 우주는 출현했고, 우주의 네 가지 기본 힘들이 오늘날 우주에서 보게 되는 모든 원자들을 조립했으며 지금까지 그것들을 결합한다. 빅뱅이 일어난 지 대략 2억 년 후에 나타났으며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의해 다루어지는 두 번째 임계점에서는 중력이 이런 원자들(전부 수소)을 끌어당겨 항성을 형성하고, 원자들을 압축시키며, 우주를 밝혔다. 항성은 수소를 헬륨으로, 헬륨을 탄소로, 탄소를 철로 변환시켰고, 항성의 궁극적인 초신성 폭발 때문에 주기율표의 여타 원소들이 형성되어 우주 전역으로 흩어졌다.

 

대략 45억 년 전에 네 번째 임계점을 건너서 중력이 우리 태양계를 형성했으며, 처음 7억 년은 "명왕(Hadean)"("지옥") 누대가 차지했는데, 이 시기에 지구는 사실상 매우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지구의 원소들이 안정됨에 따라 가벼운 원소들은 위로 상승하여 지각, 지각판 그리고 대륙을 형성했으며, 아래의 무거운 원소들은 다양한 지하 층들을 형성했다. 그 다음에 이어진 대략 13억 년을 차지하는 시생 누대(Archaean Aeon) 동안(그리고 다섯 번째 임계점을 건너서), 대사시키고(즉, 자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적응하며 그리고 생식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식별 가능한 최초의 생명체들이 출현했다. 최초의 미생물들이 광합성을 통해서 명왕 누대 환경을 변형시켜 지구를 오늘날처럼 비교적 살아갈 만한 장소로 만들었다.

 

점진적으로 이런 생명체들은 다세포 생물, 척추 생물, 육지 생물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능을 갖춘 생명을 생성했는데, 그래서 대략 250,000년 전에 시작된 여섯 번째 임계점, 구석기 시대의 임계점을 낳았고, 고고학과 인류학의 영역으로 접어들게 되었다(아직 역사의 영역으로는 접어들지 못했다). 인간 성공의 열쇠는 집단 학습, 즉 상징 언어을 채택함으로써 대단히 촉발되는 과정이라고 크리스천은 주장했다. 다른 생명체들은 주로 경험을 통해서 학습하고 그들의 자손에게 가장 기초적인 지식 외에는 전달할 수 없는 반면에, 인간들은 그들의 지식을 전통 속에 저장하고 언어를 통해서 소통한다. 여러 세대 동안 이런 능력 덕분에 인간들은 다른 생명체들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한 장점을 갖추게 되었고, 그래서 채집과 수렵의 혼합을 통해서 살아간 대략 오십여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친족 집단, 또는 부족의 형태로 사실상 지구의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일곱 번째 임계점, 즉 농경의 발견이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역사가 시작되었고 신석기 시대가 개시되었다. 이 시기에 몇몇 친족 집단들이 마을을 이루어 정착하고, 경작을 위해 채집과 수렵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해야만 했던 까닭은 일견 불분명한 듯 보이는데, 왜냐하면 여러 가지 점에서 농경인들이 채집인들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농경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높은 에너지 밀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 덕분에 충돌이 일어났을 때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간 부족들에 대해 결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여러 세대 동안 농경인들은 더 넓은 땅에서 유목민들을 쫓아내었고, 항구적인 마을을 건설했다. 지구의 역사에서 농경이 대략 십여 차례 독립적으로 발견되었지만, 모든 장소에서 조건이 똑같이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파푸아 뉴기니에서는 어떤 거대한 농경 제국도 번영하지 못했고, 중앙 아메리카와 페루 해안 지역에서는 매우 늦게 출현했다.

 

지리는 이런 공동체들을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세계 체계들로 나누었는데, 아프로-유라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지역은 각각 다소간 자기충족적이었다. 그런데 경작지와 인구의 견지에서 아프로-유라시아 대륙이 가장 거대했기 때문에 나머지 지역들보다 더 빨리 혁신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것들을 능가했다. 몇몇 마을들이 다른 마을들보다 더 커지고 더 강력해짐에 따라 그것들은 이웃 마을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래서 최초의 농경 문명들이 탄생했다.

 

농경 문명들은 훨씬 더 많은 신민들(농노와 노예들)에 대한 공물을 받는 엘리트 계급(전사와 성직자들)의 지배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는 매우 작은 수의 부적격자들(상인, 관료, 직공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엘리트 계급은 나머지 계급들을 멸시했고, 그들에게서 약탈의 기회를 보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농경 시대의 역사는 대체로 전사들 사이의 투쟁과 성직자들 사이의 논쟁의 견지에서 서술되는데, 두 계급 모두 본질적으로 나머지 계급들에 기생했다. 혁신은 느리게 이루어졌는데, 정치적 체계 및 이용 가능한 매우 빈약한 부가 아무 동기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혁신들 가운데 하나는 어떤 동물들의 가축화였는데, 그래서 가축들은 인간들과 공생적 관계를 맺게 되어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다. 이것은 혁명적인 이차적 산물을 낳았는데, 그래서 인간들은 우유 같은 새로운 형태들의 에너지, 더 큰 양의 고기, 그리고 농경에 사용될 수 있는 동물들의 근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유목 생활을 낳았는데, 몇몇 사람들이 충분히 자주 돌아다닌다면 농경을 전적으로 포기하고 동물 무리들의 생산물로 온전히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농경 시대를 특징짓는 문명과 야만적 부족들 사이에 적대감이 생성되었다. 그럼에도 인구가 가용 에너지원들을 결국 넘어서서 어떤 농경 문명의 종말과 얼마 후 다른 문명의 흥기의 전조가 되는 생태적(맬서스적) 파국을 초래할 때까지 인구 수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렇게 순환이 다시 개시된다.

 

그런 순환들을 통해서 결국 우리는 대략 700년 전에 시작된 여덟 번째의 마지막 임계점, 즉 근대성이라는 임계점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에 인간 사회의 복잡성과 총 인구의 극적인 증가가 나타났으며, 최초로 혁신이 적극적이고 공식적으로 고무되었다. 근대성의 흥기에 대한 동력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와 과학―이십 세기 초에 급격한 학습 곡선을 만나게 되더라도 여태까지 모든 난제들을 극복한―에 의해 제공되었다. 이제 우리는 인간 역사에서 최고의 가능성의 순간, 최고의 위험의 순간에 이르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항성간 탐사, 인공 지능 그리고 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한 다른 역능들의 임계점에 서 있지만, 핵 전쟁, 부실한 생태 관리 그리고 전지구적인 불평등의 긴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크리스천은 촉구한다.

 

크리스천은 최소한 이십 세기 초의 H. G. 웰스(Wells), 이십 세기 중엽의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와 칼 세이건(Carl Sagan) 그리고 오늘날의 타이슨과 호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학 대중화론자와 미래주의자들의 전통 속에서 글을 적는다. 독특하게도 크리스천은 역사가로서 훈련받은(그는 대부분의 경력을 러시아 역사가로서 보냈다) 덕분에 일찌기 칼 마르크스, 페르낭 브로델 그리고 윌리엄 H. 맥닐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의 선행자들이 몰랐거나 적게 활용한 구조주의적 역사의 풍부한 전통에 의지할 수 있었다. 확실히 크리스천의 역사가 최초의 보편사인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그는 지금까지 역사가들이 대체로 그런 의문들을 포기했으며, 일상적으로 그들은 과거의 거대한 종합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과업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거대사는 역사서술학에서 전개된 중요한 일이다. 첫 번째 이유는, 크리스천이 진술하듯이, 거대사는 직업적 역사학 내에서 한때 거대한 힘을 행사했으며 그것의 외부에서는 여전히 행사하는 과학적 역사에 관한 이전의 관념을 부활시키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이 역사의 필수적인 설명적 과업을 재규정하고자 하는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여부는 결코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야심만만한 시도는 자체적으로 주목할 만하고, 그래서 빌 게이츠의 재정적 지원은 상황이 그것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가리킬 뿐이다. 또한 거대사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물리학, 간단히 모든 이론들을 단일한 전체로 통합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것은 직관적이고 아마도 필요한 목표이지만, 또한 경험적 기획이라기보다는 종교적 기획의 특성을 갖추고 있으며 최소한 잠재적으로 유해한 정치적 함의들을 품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목표이다. 확실히 거대사는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가 휘그적 역사라고 비판했고, 칼 포퍼가 역사주의라고 비판한 역사 모형에 합치되지만, 이것이 물론 거대사가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고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버터필드와 포퍼가 오류를 범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거대사는 흥미로운 계획이고, 그래서 계속 주시할 가치가 충분한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