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마시모 피글리우치: 오늘의 인용-사이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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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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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파이[sci-phi]란, 지금까지 인류가 획득한 지식에 대해 가장 강력한 접근 방식인 철학과 과학을 이용해 세계와 삶을 숙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실질적인 조언)의 줄임말이다. 기본개념은,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문제를 겪든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문제와 관련된 사실, 이런 사실을 평가할 때 우리를 안내하는 가치관, 문제의 본질, 가능한 해결책, 이런 사실과 가치관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의미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 말이다. 과학은 무엇보다 사실에 기반을 둔 지식을 다루는 데 적합하며, 철학은 (다른 무엇보다) 가치관을 다루는 만큼, 사이파이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에 답해줄 전도유망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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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과학을 결합하여 세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세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능한 최고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상당히 오래된 견해로, 라틴어 '스키엔티아scientia'로 요약할 수 있다. 스키엔티아는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의미의 '지식'을 의미한다. 서양 전통에서 스키엔티아(혹은 내가 말하는 사이파이)의 개념을 가장 먼저 다룬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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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생의 과제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의 추구를 의미했다. 그리스어 에우다이모니아는 '좋은 영혼을 지닌다'는 뜻으로, '풍요' 또는 '번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행복'으로 자주 번역된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계속해서 덕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즉 올바른 이유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처럼 인생을 과제로 이해하는 관점에 따르면, 우리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강력하고도 직관적인 매력을 발휘하는 개념인 삶의 가치에 대해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총평을 내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어느 시점까지 착하게 살다가 이후에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경우,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가 폄하되거나 심하게 훼손될 수 있고, 초반엔 대충대충 살았지만 이후에 높은 도덕적 기반을 되찾은 경우 우리는 그런 사람을 기특하게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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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에우다이모니아를 증대시키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로, '의지박약'으로 번역할 수 있는 그리스어 '아크라시아akrasia'를 언급했다. 어떤 면에서 덕이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나약함을 넘어선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번영으로 향하는 길이다.

 

[...] 에우다이모니아는 긍정적 감정이라는 폭넓은 의미의 '행복'이 아니라, 가치판단적 개념으로,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인들은 오로지 육체적 쾌락이나 부, 권력만을 추구하는 삶은 그런 쾌락이나 부, 권력을 획득하는 사람이 아무리 행복하다고 느낄지라도 에우다이모니아가 아니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추구하는 행위는 개인이 자신을 개선시키거나 적극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이런 활동들은 모두 에우다이모니아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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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서 가치를 끌어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알려진, 일종의 논리적 실수다[...].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해 논의한 최초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 사실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제(사실인 것/사실이 아닌 것)에 관해 글을 쓴 사람들이 마침내,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윤리적 의무(해야 하는 것/해서는 안되는 것)와 관련된 전혀 다른 종류의 담론으로 전환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흄은 사실과 가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련성을 적용하는 사람은 확실히 그것을 정당화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 자연주의적 오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사실문제를 다루는 과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가치문제를 다루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의 철학은 가장 유용한 과학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과학지식을 추구할 때는 가치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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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본질에 대한 발견부터 그 원리의 기술적 의학적 적용에 이르기까지 많은 현대인이 과학의 산물에 익숙하며, 과학의 진화를 수월하게 이해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학에 대해 수다한 오해가 있는데, 무엇보다 '과학적 방법' 같은 건 없다. [...] 과학자들은 지극히 실리적이며, 어떤 문제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에 도달할 때까지 다수의 조사방법들을 배치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과학의 희한한 점 가운데 하나는 상식에 거듭 저항하고 기존 연구결과를 대대적으로 거부하면서,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동종 있을 법하지 않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

 

과학에 대한 흔한 오해의 또 하나는, 과학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잠정적 결론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 지구가 은하계 주변에 있는 평범한 어느 별의 궤도를 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을 때, 이 말은 무수한 천체관측과 함께 행성 별 은하계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가장 탄탄하게 입증된 결론이라는 의미다. 관찰이나 이론 들이 나중에 어떤 점에서 잘못됐거나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질 수 있고, 훗날 다음 세데 천문학자들이 우리를 향해 같잖다는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

 

이처럼 과학의 잠정적 결론은 과학자들에게는 지속적 영감의 원천이지만, 정책입안자와 일반대중에게는 툭하면 되풀이되는 불만과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차라리 과학자들이 '사실'이라고 발표하고 사실로 취급해주길 바라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 겸손에 대한 심오한 교훈이 있다. 과학은 때로 오만한 이들의 최종 도피처로 묘사되지만, 정작 과학자들 본인은 지식을 향한 인간의 탐구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렇다면 과학을 독자적 분야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 나는 과학이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이론들의 지속적 개선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계에 대한 탐구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이런 경험적 연구와 이론화의 독특한 조합이 과학적 기획의 핵심이다. [...]

 

그럼 철학은 어떨까? [...] 철학은 전통적으로 현실의 본질(형이상학), 그런 현실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인식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가(윤리학), 우리는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논리학),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미학)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는 여러 분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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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 철학의 문제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분야에서 부딪히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부득히 제한되고 어떤 면에서 결함도 있지만, 연구를 진행하려면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차이가 있다면 철학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도구, 즉 언어 자체의 힘과 한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 철학은 지식과 소통을 위한 기본적인 도구를 다루기에 인간의 모든 지식을 망라한다.

 

[...] 철학에 관한 내 견해는, 궁극적으로 철학은 이성적 논증의 구축(혹은 해체)을 바탕으로 건설된다는 것이다. [...]

 

과학과 마찬가지로 철학에도 여러 가지 흔한 오해가 있는데, [...] 무엇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진전을 이룬다. [...] 대략적으로 말하면, 과학은 세계에 대한 이해가 세계의 실제 현상과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진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철학도 개념의 의미와 영향, 그것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진전을 보인다. [...]

 

[과학과 철학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는 몇몇 흥미로운 분야가 있어, 덕분에 우리는 철학의 영역들이 어떻게 과학의 영역과 조화를 이루는지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의식의 본질과 관련된 심리철학이다. 아주 최근까지도 이것은 철학에만 해당하는 분야였지만,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과 같은 새로운 실험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더 많은 신경학자들이 이 문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

 

이런 전개는 철학과 과학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가지 접근법이 상호보완적이기에 가능한 결과다. 다시 말해, 문제의 정의는 모호하지만 경험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때, 문제를 명확히 하고 조사를 위한 적절한 실험도구를 과학이 개발하는 동안 개념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철학자들의 과제다. 물론 이런 식의 이행이 무조건 가능하다고는 볼 수 없다. 흄의 자연주의적 오류가 두 분야 사이의 이행을 가로막기 때문에 아마도 문제는 늘 존재할 것이다. [...]

 

[...] 의미와 가치에 대한 우리의 철학적 논의가 관련 사안에 대해 가장 이용가능한 과학적 해석의 도움을 받는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자연주의적 오류는 도덕문제(해야 한다/해서는 안 된다)에 대해 과학적 해답(사실이다/사실이 아니다)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도록 막아선다.

 

[...] 우리는 우리 인생을 이끌어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해 [사이파이의 실천,] 이성과 증거를 사용하는 데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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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 <<번영과 풍요의 윤리학: 최고의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서민아 옮김, 스윙밴드, 2016), pp. 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