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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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프랭크: 오늘의 에세이-물리학은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정말로 잘못 이해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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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2.

 

물리학은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정말로 잘못 이해했는가?

Has Physics Gotten Something Really Important Really Wrong?

 

―― 애덤 프랭크(Adam Frank)

 

때때로 과학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치는 물러서는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진보를 향한 경로가 진흙탕이 될 때, 최선의 대응은 일상적 실천을 구성하는 모든 기술적인 세목에서 물러나서 바닥 널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을 계속해서 밀어붙이기보다는 그런 연구 노력을 뒷받침하는 무언의 철학들에 관해 묻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번 주에 나는 기초 물리학과 우주론이라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영역들에서 이런 접근 방식에 관해 묻는 토론회에 참여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린다.

 

토론회 조직위원들 가운데 두 사람인 물리학자 리 스몰린(Lee Smolin)과 철학자 로베르토 웅거(Roberto Unger)는 작년에 <<단일한 우주와 시간의 실재성(The Singular Universe and The Reality of Time)>>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책은 물리학의 철학적 기반을 재배선하고자 하는 그들 나름의 시도를 나타낸다. [...]

 

우선, 지금까지 우주론과 물리학이 얼마나 많은 것을 제대로 해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가 개시된 이후 매우 짧은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역사를 세밀히 나타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인간 지성과 상상력의 개가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근본적인 층위에서의 물질과 힘들에 대한 상세한 서술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이야기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목할 만한 무언가―그리고 현저하게 올바른―를 해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듯 보이는 지점은 실재의 최하부로 내려가는 다음 단계들이다. 현재 몇몇 연구자들은 끈 이론과 다중우주 같은 대중적인 관념들을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이 물리학자들은, 끈 이론의 여분의 "숨은" 차원들과 다중우주의 관측 불가능한 여타의 우주들과 더불어 우주에 관한 우리의 연구가  데이터가 제약할 수 있는 것에서 너무나 멀리 가버렸다고 느낀다. 물론, 끈 이론과 다중우주에서 계속해서 거대한 전망을 보는 많은 과학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작년에 마르첼로와 내가 <<뉴욕 타임즈>>에 적었듯이, 사태는 결국 진흙탕이 되고, 그래서 몇몇 연구자들이 "물리학의 위기"로 간주하는 것이 된다.

 

스몰린과 웅거는 이 위기가 실재적인 것―그리고 심각한―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경험적 데이터의 부족이 그 분야를 옳은 길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그들의 감각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그들이 서술하듯이,

 

"과학은 경험적 검증이나 반증의 규율을 버릴 때 타락하게 된다. 또한 과학은 자체의 가정을 사실로 오인하고 기성의 철학을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오인할 때 약화된다."

 

그러므로 <<단일한 우주와 시간의 실재성>>의 목표는 거대한 철학적 후퇴 조치를 취하여 새롭고 더 유망한 어떤 방향이 발견될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두 사상가들의 경우에, 그런 새로운 방향은 세계에 관한 세 가지 담대한 주장들로 분명히 설명될 수 있다.

 

1. 단 하나의 우주가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알기 쉬운 것인 듯 보일 것이다. 우주(universe)에서 "uni"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다중우주 우주론들이 급팽창 빅뱅 모형들 및 10^500개의 가능한 우주들을 예측하는 듯 보이는 끈 이론의 "풍경"을 통해서 수용되었다. 웅거와 스몰린은 이런 전개에 역행하여 우주론의 적절한 연구 분야는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우주라고 말한다. 웅거가 서술하듯이, "우리는 한 시기에 단 하나의 우주, 즉 우리가 처해 있는 우주의 현존을 믿을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과학이 찾아낸 그 어느 것도 우리 우주가 많은 우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믿음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현대 우주론에서 우주들의 증식은 ... 설명적 실패를 설명적 성공으로 ... 변환시키려는 시도의 결과였다."

 

2. 시간은 실재적인 것이다. 이것 역시 이론 물리학의 최근 전선들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 그래요"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몇몇 물리학자들이 시간은 실재에 근본적인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어떤 좋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시간이 어떻게 창발적인 것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속, 과거 또는 미래 같은 것은 전혀 없이 현존하는 구조의 어떤 더 심층적인 층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웅거와 스몰린의 경우에, 시간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것은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자체의 가장 깊은 층위에 있어서의 변화의 본성을 회피할 수 있게 한다.

 

3. 수학은 선택적으로 실재적인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방정식들을 사랑한다. 그것들은 매우 강력하여 우리는 흔히 그것들이 자체적으로 실재적인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플라톤주의자가 되는데, 수학을 세계의 살이 붙어 있는 일종의 골격으로 만든다. 그러나 웅거와 스몰린의 경우에, 이러한 수학의 물화는 물리학자들을 수학적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실제 세계에 관한 실제 정보를 대체하게 되는 위험한 영역으로 이끌 수 있다. 그들이 서술하듯이, "우리의 수학적 발명품들은 영원한 진리에 이르는 그 어떤 지름길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과학적 발견 작업과 상상력의 작업을 결코 대체하지 않는다. 자연과학에 있어서 수학의 유효성이 합당한 까닭은 그것이 한정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함께 고려하면, 이 세 가지 주장은 물리학의 주류 관념들로부터의 두드러진 결별을 구성한다. 그런데 그것들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아무것도, 심지어 물리학의 법칙들도, 시간을 초월하여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는 시간에 구속되어 있고 시간이 흠뻑 스며들어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수학적 형상의 영원한 실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들 자체도 변화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웅거와 스몰린의 급진적인 관념들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물리학의 법칙들이 변화하는 방식에 대한 어떤 설명을 전개하는 것은 또한 그것이 일회적 역사로서 발생해야 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상이한 "구조적" 선택지들(상이한 법칙들)이 탐색될 수 있는 우주들의 방대한 "집합체" 가운데 하나로 가정할 수 없다. 그 대신에, 코스모스는 단 한 번만 발생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를 낳았다.

 

웅거와 스몰린이 서술하듯이, "우주론은 그것이 도대체 과학일 수 있으려면 역사적 과학이어야 하는데, 역사적 과학이 먼저이고, 구조적 과학은 두 번째일 뿐이며, 반대의 경우는 성립되지 않는다."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이런 강조는 웅거와 스몰린을 새롭고 흥미로운 철학적 영토로 데리고 간다. 그들이 말하듯이,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구조의 일시성을 긍정하는 사유 노선은 헤라클레이토스, 헤겔, 베르그손 그리고 화이트헤드 같은 상이한 사상가들의 목소리로 전해져 왔다. 다른 문명들의 철학적 유파들 사이에서, 특히 고대 인도의 유파들 사이에서, 그것은 지배적인 형이상학을 나타내었다."

 

몇 달 전에 나는 시간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철학의 역할을 둘러싸고 벌어진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이의 대단한 논쟁에 관한 글을 적었다. 논쟁적인 역사적 반향 덕분에 베르그손(그리고 인도의 고전적 세계관들)이 우주론의 재구상에 관한 책에 등장하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더 주목할 만한 일이 된다.

 

웅거와 스몰린의 책에는 내가 그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몸을 긴장시키고 흥미진진하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 많이 있다. 그들이 옹호하는 프로그램이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개요―서두―를 구성할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과 관련하여 참으로 유효한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결코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철저히 그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그들은 우주론과 기초 물리학에 있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현 상황을 넘어서는 견해를 제시한다.

 

끈 이론 또는 다중우주가 데이터와의 강한 연결을 여전히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지만, 스몰린과 웅거가 제시하는 것은 참으로 상이한 철학적 접근 방식이 어떤 모습일지에 관한 한 견해이다.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