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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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륀트룹 & 야스콜라: 오늘의 책-범신론: 현대적 시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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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9.

 

마음은 우주의 우연한 것일 뿐인가?

Is the mind just an accident of the universe?

 

―― 고데하르트 브륀트룹(Godehard Bruntrup) & 루트비히 야스콜라(Ludwig Jaskolla)

 

전통적인 관점은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의 거의 대다수가 무심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지만 범심론은 심적 특징들이 우주에 편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의식은 보편적인가?(Is Consciousness Universal?)"(2014)라는 제목의 글에서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if Koch)는 범신론에 대한 그의 지지―특히 범신론은 신경생물학의 완벽한 짝일 것이라고 주장할 때―가 어떻게 불신의 응시로 응대받는지 설명한다(또한 2013년에 <<와이어드>>에 실린 글을 보라).

 

"자연과학자로서 저는 21세기용으로 수정된 범심론의 한 판본이 제 자신이 처해 있는 우주에 대한 가장 우아하고 간결한 단 하나의 설명이라고 깨닫습니다. ... 범심론에 관해 이야기하고 글을 적을 때 저는 흔히 이해할 수 없다는 텅빈 응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말에 범심론은 마음의 철학에서 르네상스나 다름없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은 과학에서도 반영되기 시작하고 있는 추세인데, 물리학자 헨리 스탭(Henry Stapp)의 <<마음이 충만한 우주(Mindful Universe)>>(2011)라는 책은 하버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가 저술한 책들의 영향을 깊이 받은 범심론의 한 판본을 수용한다.

 

철학의 역사에서 범심론은 불행하게도 때때로 망각되었지만 긴 전통을 갖추고 있다. 지오다노 브루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테야르 드 샤르댕 그리고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상이한 형태들의 범심론을 수용하였으며, 그리고 사실상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인 밀레토스의 탈레스는 "영혼이 우주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죽음에 관한 질문들(Mortal Questions)>>이라는 1979년의 획기적인 저작에서 NYU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은 환원적 물질론과 몸-마음 이원론 둘 다 몸-마음 문제에 대한 성공적인 해결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환원적 세계관은 마음을 어떤 목적도 결여한 상태로 남겨 두는 반면에, 이원론적 관념은 비공간적인 데카르트적 마음에게서 공간적인 물질과의 어떤 연결도 박탈한다. 게다가 창발적 마음이라는 관념은 불가해하며 심지어 놀라운 듯 보이는데, 그것은 여전히 전적으로 불가사의한 것에 꼬리표를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어떤 판본의 범심론이 실현 가능한 대안인 듯 보일 것인데, 심지어 "최후의 승자(last man standing)"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범심론에 관한 논쟁들이 철학적 주류에 진입하게 된 것은 <<의식적인 마음(The Conscious Mind)>>이라는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의 획기적인 저작이 출판된 이후였다. 그 후 줄곧 그 분야는 빠르게 성장했다.

 

범심론이란 심적 존재가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편재적이고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테제이다. 그것은 두 가지 기본 관념들에 의존한다.

 

(1) 발생론적 논증은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생성되지 않는다(ex nihilo, nihil fit)"―아무것도 자체가 이미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은 낳을 수 없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 의식이 물리적 진화 과정을 통해서 생성되었다면, 물리적 물질은 이미 어떤 기본적인 형태의 심적 존재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논증의 판본들은 토머스 네이글의 <<죽음에 관한 질문들>>(1979)뿐 아니라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1890)라는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 고유한 본성으로부터의 논증은 라이프니츠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더 최근에 <<인간의 지식: 그 범위와 한계(Human Knowledge: Its Scope and its Limits)>>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은 사람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경이었다.

 

"물리적 세계는 그것의 시공간 구조의 어떤 추상적인 특징들―그것들의 추상성 때문에 물리적 세계가 고유한 특질에 있어서 마음의 세계와 상이한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는―에 대해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공간, 시간 그리고 중력(Space, Time and Gravitation)>>(1920)이라는 책에서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경은 매우 직관적인 판본의 고유한 본성으로부터의 논증을 표명했다.

 

"물리학은 내용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구조적 형식에 관한 지식이다. 물리적 세계 전체를 통해서 미지의 내용이 가로지르는데, 그것은 확실히 우리 의식의 질료임에 틀림없다."

 

범심론은 놀랍도록 근대적인 세계관이다. 심지어 그것은 실재에 대한 정말로 탈근대적인 시각으로도 불릴 수 있는데,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한편으로, 범심론은 자체의 고유한 본성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경험되는 객체와 경험 주체 사이의 근대 인식론적 간극을 연결한다. 범심론자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의식을 통해서 물질의 고유한 본성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을 안다고 주장한다. <<물질의 사랑을 위해서(For the Love of Matter)>>(2003)라는 책에서 프레야 매튜스(Freya Mathews)는 이렇게 주장한다.

 

"... 이원론의 따름정리인 물질론적 세계관은 인식 주체를 독자적인 주체성의 매력적이지만 작은 권역에 고립시키고, 그래서 주체를 실재와 재연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질 자체의 재활성화일 뿐이다. 이런 '실재론으로부터의 논증'이 범심론에 대한 나의 옹호를 구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범심론은 인류에 의해 활용될 수 있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서의 자연이라는 데카르트적 개념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에 자연과 맺는 인도적인 돌봄의 관계를 강조하는 실재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범심론자의 경우에, 우리는 자연 속에서 우리 이익을 위해 조작될 수 있는 객체들이 아니라 오히려 고유한 가치를 지닌 다른 존재자들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