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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호지슨: 오늘의 에세이-경제학을 진화적 학문으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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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4.

 

경제학을 진화적 학문으로 생각하자

Imagine Economics as an Evolutionary Science

 

―― 제프리 호지슨(Geoffrey Hodgson)

 

1898년에 아메리카의 위대한 제도주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경제학은 왜 진화적 학문이 아닌가?(Why is economics not an evolutionary science?)"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진화적"이라는 낱말로 베블런은 사회과학 및 행동과학에 대한 다윈주의의 영향을 전적으로 고려하는 경제학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일 세기 이상이 지나가 버렸으며, 그리고 1898년 이래로 경제학에서 진화적 관념들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증가되었다. 중요한 사례들은 <<경제적 변화에 관한 진화적 이론(An Evolutionary Theory of Economic Change)>>에 관한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과 시드니 윈터(Sidney Winter)의 획기적인 1982년 책과 진화적 게임 이론의 활발한 발달에 의해 고무된 대량의 문헌을 포함한다.

 

그런데 진화적 시각의 미래 발달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2004년에 출판된 <<제도경제학의 진화(The Evolution of Institutional Economics)>>라는 제목의 책에서 나는 내가 "진화적 설명 원칙(the principle of evolutionary explanation)"이라고 부른 것을 개괄했다. 이것은 사회과학을 비롯한 어떤 행동적 가정도 진화적 견지에서, 또는 최소한 인간의 진화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정합적인 인과적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다. 이 원리는 베블런의 저작에서 발견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다른 사회과학자들이 진화적 설명들을 다루었다. 인간들이 어떻게 집단으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더 많은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경향들과 더불어 이타주의와 협력에 대한 인간의 성향들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고찰하는 대량의 가치 있는 문헌이 존재한다,

 

진화와 효용의 극대화

 

그런데 베블런은 한 가지 훨씬 더 급진적인 주장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소화하기 어렵다. 그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개체라는 관념이 진화적 설명 원칙과 비정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여전히 타당한데, 왜냐하면 고정된 효용 함수에 관한 관념―그것이 "사회적" 또는 "이타주의적" 선호들을 갖는 것일지라도―은 그것의 기원에 대한 명료한 진화적인 인과적 설명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가정되고 있을 뿐이다.

 

인간들은 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도록 진화했는지 증명하고자 시도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꽤 공허한데, 왜냐하면 모든 가능한 현시적 행동은 어떤 효용 함수와 정합적인 것이 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효용 함수는 관찰된 행동에 대한 참된 인과적 설명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의 요약이다.

 

효용 함수를 데이터에 끼워 맞추는 것은 진화적인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과 같지 않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특수한 특질들과 성향들의 진화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은 다른 종들도 효용 극대화자들이라고 널리 주장한다.

 

현대 행동경제학은 "더 현실적인" 이론을 추구하면서 엄격한 효용 극대화에 대한 가정을 완화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이른바 효용 극대화로부터의 일탈을 "오류" 또는 "탈선"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주류 경제학 전체에 걸쳐 효용 극대화 모형은 자체의 중력적 인력을 유지한다.

 

베블런이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그는 합리적 선택에 관한 효용 극대화 모형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지속적인 애호와 관련하여 불쾌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 대신에 그는 다윈주의적 진화 이론, 특히 실용주의적 철학자-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작업에 의존한 심리학의 발달을 지적했다. 베블런은 인간 행동에 대한 더 구체적인 이론을 발달시키려고 노력했다.

 

본능과 습관

 

베블런은 인간들은 습관에 의해 추동된다는 견해를 취했다. 습관은 물려받은 성향들―본능으로 불리는―과 더불어 현존하는 제도들에 의해 유도된다. 습관은 어느 특수한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사고할 수 있는 학습된 역량이다. 믿음들도 원동자라기보다는 습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행위(Human Nature and Conduct)>>라는 1922년 책에서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가 설득력 있게 주장했듯이, 신중한 선택은 우리의 습관적 성향들이 충돌하여 그것들 사이에서 억지로 결정할 수밖에 없을 때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습관이 이성과 선택을 추동하는 것이지 반대의 경우는 맞지 않다.

 

본능을 첫 번째에, 습관을 두 번째에 그리고 이성을 세 번째에 놓은 이런 방식은 인간의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정합적이다. 본능-습관-이성 질서는 인간 종의 진화에 있어서 오래 전에 이것들이 출현한 순서와 일치한다. 또한 그것은 그것들이 각 인간 개체에서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발달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인간 행위주체성에 대한 이런 진화적 시각은 경제학과 대부분의 사회과학을 여전히 지배하는 마음 먼저 또는 믿음 먼저 시각들과 매우 다르다.

 

도덕의 진화

 

인간 행위주체성에 대한 진화적 시각은, 베블런에 의해 지적되었듯이, 반체제적인 영국 경제학자 존 A. 홉슨(John A. Hobson)에 의해 강조되었으며, 그리고 오늘날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과 크리스토퍼 뵘(Christopher Boehm) 같은 선도적인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다른 한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서 제시된 다윈의 설명과 정합적이게도, 이 저술가들은 지금까지 인간들이 도덕적 판단을 위한 성향들을 발달시켰다고 주장한다. 도덕 체계들은 사회들 속에서 진화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집단 응집과 생존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쾌락 기계에서 도덕 공동체까지(From Pleasure Machines to Moral Communities)>>라는 책에서 내가 주장하듯이, 이 테제는 엘리엇 소버(Elliott Sober), 데이비드 슬로안 윌슨(David Sloan Wilson) 등에 의한 "집단 선택" 주장들의 재활과 일치한다.

 

이것은 인간들이 비이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이기적인 동시에 도덕적 가치들을 획득하고 추구할 수 있다. 때때로 이 두 가지 성향은 충돌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기적인 행동과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을 행하기" 사이의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의 효용 극대화 모형들은 "이타적"인 행동과 "사회적 선호들"을 감안하도록 개작되었다. 때때로 도덕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런 모형들에서는 개체가 "이타적"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체는 항상 "이기적"이다. 리처드 조이스(Richard Joyce) 같은 도덕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효용 극대화 모형들은 진정한 이타주의나 도덕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공리주의적 시각을 거부했다.

 

제도의 진화

 

베블런은 더 일반적으로 경제학과 사회과학에 있어서 진화적 시각의 심화적 확대를 이해했다. 생존 투쟁에 있어서 개체들 사이에 경쟁과 협력이 있었던 한편으로, 다른 제도들보다 더 성공적인 어떤 제도를 낳는 사회적 과정들―"제도들의 자연 선택"―도 있었다.

 

이 통찰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 행위자를 수반하지만 결코 설계에 의해 전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제도들의 선택 및 발달을 비롯한 사회적 변화에 관한 역동적인 이론의 가능성을 개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윈의 추측(Darwin's Conjecture)>>이라는 책에서 토르비욘 크누센(Thorbjorn Knudsen)과 내가 설명하듯이, 이런 접근 방식이 이륙하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핵심적인 주장은 지금까지 경제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진화적 사유의 함의들은 부분적으로 탐구되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특히 경제학은 아직까지 진화적 학문이 아니다.

 

경제학을 진전시키는 것은 다양한 다른 분과학문들의 관념들과 접근 방식들이 고려된 시각의 확대를 필요로 할 것이다. 효용 극대화와 합리적 선택이라는 표준적인 장치는 인간 행동에 대한 적절한 진화적 설명이라기보다 오히려  임시적인 입장으로 간주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경제학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기술 추동적 관심이라기보다 오히려 애덤 스미스,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 그리고 소스타인 베블런의 담론적 경제학에 더 가까울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진술이 다시 한 번 적절할 것이다.

 

"달인 경제학자는 천품들의 드문 조합을 소유해야 한다. 그는 다양한 방향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하며, 그리고 흔히 함께 발견되지 않는 재능들을 조합해야 한다. 그는 어느 정도 수학자, 사학자, 정치가, 철학자이어야 한다. 그는 기호들을 이해해야 하고 언어로 말해야 한다. 그는 일반적인 것들에 의거하여 특수한 것들을 사색해야 하며, 그리고 동일한 사유의 비행 속에서 추상적인 것들과 구체적인 것들을 접촉해야 한다. 그는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를 과거에 비추어 연구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 또는 제도들의 어떤 부분도 전적으로 무시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