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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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케이: 범경험주의-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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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0.


경험

Experience


―― 앤디 케이(Andy Kay)


"경험"이라는 낱말을 사용할 때 나는 어떤 엄밀한 의미에서도 사전적 정의들 가운데 어느 것에 의해서도 지칭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데, 사전적 용법들 가운데 몇 가지는 내 용법을 시사할지라도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는 사례들을 통해서 내 용법을 암시하는 것이다. 시각적 경험, 청각적 경험, 촉각적 경험, 미각적 경험 그리고 후각적 경험이 있다. 현기증과 메스꺼움이 경험이듯이 허기와 갈증도 경험이다. 쾌락과 고통은 경험이다. 환각과 꿈이 경험이듯이 사유, 정서, 기억 그리고 기대도 경험이다. 게다가, 그런 경험의 모든 항목의 전체 집합을 집단적으로 지칭하고 싶을 때 나는, "장"이라는 술어의 선택에 대해 반대하는 어떤 주장이 제기되든 간에 "경험의 장(field of experience)"이라는 어구를 사용할 것이다.


경험의 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일단의 "경험들"로 나누어진다(이것의 사례들은 앞에서 제시되었다). 이것이 그런 장의 기본 특성에 대한 탐구를 위한 적절한 출발점이며,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의 개념적 모형들의 세계를 "일차 실재"로 간주하는 인간의 성향에 의해 흔히 은폐된다. 이런 적절한 출발점은 다양한 형이상학적 견해를 허용하는데, 각 견해는 독자적인 특징적 문제들을 갖고 있다. 경험의 장은 객관적 세계과 주관적 세계로 나누어지며, 그리고 과학적 탐구는 객관적 세계만을 다루도록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적 세계 모형은 필연적으로 부분적인 모형이다. 그런 모형을 우리의 탐구를 위한 출발점으로 채택하는 우리의 경향은 때때로 주관적 경험을 탐구하거나 경험의 장에 관한 관념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월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과학적 탐구의 검토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의 장에 관한 모든 가정은 형이상학적 가정일 것이다.


경험의 장은 다른 모든 사람이 주관적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는 타고난 확신을 포괄한다. 다른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로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로 나누어지는 경험의 장과 결부될 것이라는 점이 이런 확신으로부터 도출될 것이다. 다르게 서술하면, 경험의 장이 그것이 객관적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어느 고유한 사람과 결부되어 있다는 확신을 포괄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확장하게 되면 객관적 세계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모든 사람이 경험의 장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른바 그것은 단일한 사례에 의거한 귀납적 추론이고, 그래서 이런 기본적인 가정을 의문시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것은 "다른 마음들의 문제"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람이 마음과 결부되어 있다는 본능적인 확신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대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전혀 없으며, 그리고 구조적 유사성에 의거하여 그 가정을 모든 유인원으로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더 확장하는 것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계통학적 척도의 어느 지점에 문턱―이것의 위치는 구조적 유사성 또는 상이성에 의존할 것이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이 제기될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귀속시키는 것에 대한 근거도 경험적 뒷받침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주장은 편견의 문제에 불과할 수 있다. 핵심은 비유인원에 대해서도 마음을 귀속시키는 않는 것을 옹호하는 어떤 정당한 논증도 없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모든 포유류 동물에게 그리고 사실상 계통학적 척도 전체에 걸쳐 모든 동물에게, 단세포 원생 생물에 이르기까지 그 주장을 일관성 있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동물 세포에게 마음을 귀속시키지 않는 것에 대한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면 식물 세포에게는 왜 되지 않겠는가? 나는 계속해서 세포 소기관까지도 확장할 수 있을 것이고, 게다가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들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논증이 분자에 적용된다면 왜 원자에는 그리고 심지어 아원자 입자에는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가? 이런 추리 노선이 이르게 되는 특수한 견해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에 의해 옹호되었으며 범경험주의(panexperientialism)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 견해를 규탄하는 일반적인 논증은 마음과 인지를 혼동하는데, 예컨대, 단세포는 인지 능력이 없다는 점에 의거하여 세포가 마음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라는 관념을 거부하는 논증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비정합적인 반대 논증이라는 점은 틀림없이 분명한데, 마음은 인지 또는 정서도 포괄할 필요가 없다. 단세포와 결부될 어떤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인간에 수반되는 요소들만큼 풍부할 필요가 없다.


각 마음이 어느 정합적인 객체들의 체계 내부의 한 객체와 결부되는 마음들의 집합체가 어떻게 결합하여 체계 전체와 결부되는 단일한 포괄적인 마음을 낳을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예를 들면, 세포들은 결합하여 한 유기체를 산출하고, 그래서 그 세포들의 마음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그 유기체의 마음을 낳게 되는가? 이런 이의는 "결합 문제(combination problem)"으로 알려져 있으며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 "마음 먼지 문제(mind dust problem)"로 최초로 제기되었다. 이 글에서 나는 결합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동시에 범경험주의을 옹호하는 논변을 제시한다. 몇 가지 일반적인 잘못된 개념이 정리되며, 그리고 이 견해에 수반되는 특징적인 문제들이 치명적인 것들은 아니라는 점이 증명된다. 또한 그것들은 경쟁하는 견해들에 수반되는 일부 문제들만큼 심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원천으로부터 범경험주의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축척되는데, 주로(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양자론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자명한 필요성에서 도출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19세기 말 이래로 전개된 몇 가지 연관된 발달에 대한 매우 간략한 개요를 부연하였지만, 이런 발달에 대한 이해가 아래에 제시된 주요 테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경험, 객관적, 주관적, 마음, 의식, 물질 등과 같은 낱말들을 사용하며, 그리고 이 낱말들에 대한 나의 서술은 비트겐슈타인적 정신에서 이루어질 작정이다. 즉, 나는 다른 상황에서 그 낱말들이 사용되어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분석을 위해서 그 낱말을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