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앤디 케이: 범경험주의-"다른 마음"과 유아론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7. 2. 5.


"다른 마음"과 유아론

"Other Minds" and Solipsism


―― 앤디 케이(Andy Kay)


"마음"이라는 낱말을 사용할 때 나는 어떤 엄격한 의미에서도 사전적 정의들에 의해 전혀 규정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데, 그런 용법들 가운데 일부는 암시하지만 말이다. "마음"이라는 낱말에 대한 내 용법은 앞에서 서술된 대로의 "경험의 장"이라는 어구에 대한 내 용법과 동등할 것이다.


언어는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그리고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 양식인데, 언어 용법이 공동으로 학습되기 때문에 주로 동일한 언어 공동체 내에 거주하는 둘 이상의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언어는 객관적 세계의 요소들에만 관련될 수 있고 주관적 세계의 요소들은 전혀 파악할 수 없다(이것은 "사적 언어"의 가능성에 반대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대한 해석이다)는 주장이 지금까지 제기되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다른 인간들은 경험의 장의 객관적 요소들이다)이 나타내는 어떤 행동 양식이 그것에 대응하는 주관적 요소와의 결부에 의한 증거로 수용되는 한에 있어서 어느 특정한 주관적 경험이 그것에 대응하는 객관적 경험과 일관성 있게 결부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래서 다른 한 사람이, 예를 들면, 고통 행동(객관적 경험으로서의)을 나타낼 때, 일반적으로 고통(주관적 경험으로서의)이 그에게 귀속된다. 이런 식으로 "고통" 같은 낱말들은 일종의 이중 의미를 획득하는데, 그래서 주관적 경험이 언급될 수 있게 된다(얼마간의 애매성이 있더라도). 주관적 경험을 다른 인간에게 귀속시키는 이런 성향은 인간들에게 본능적인 것이며, 그리고 이런 성향을 감정 이입(empathy)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경험의 장은 모든 다른 사람이 주관적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는 타고난 확신을 포함하게 되고, 그래서 이런 확신으로부터 당연히 모든 다른 사람이 마찬가지로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로 나누어지는 경험의 장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 도출될 것이다. 다시 서술하면, 경험의 장이 그것이 객관적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상상되는 어느 독특한 사람과 결부되어 있다는 확신을 포괄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확장하면 객관적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모든 사람도 경험의 장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이른바, 단일한 실례에 의거한 귀납적 추론이고, 그래서 이런 기본적 가정을 의문시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리고 이것은 "다른 마음의 문제"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첫번째 고찰 대상은 경험의 장이 "존재하는 전부"인지 여부―말하자면, 경험의 장 "너머"에 어떤 영역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의문이어야 한다. 그런 영역이 전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다른 경험의 장(또는 "다른 마음")의 현존에 대한 본능적 확신과 상반될 것인데, 즉, 다른 인간과 결부된 경험의 장이 사람으로서의-자기와 관련된 경험의 장의 요소로서 나타나지 않으며, 그리고 앞에서 제시된 가정이 그것이 사람으로서의-자기와 결부된 경험의 장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에 도대체 그것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경험의 장의 현존에 대한 본능적 확신을 수용함으로써 나는 형이상학적 유아론으로 알려져 있는 견해를 거부하고 있고, 그래서 그 견해에 반대하는 내 편견을 공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