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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샌텐스: 이보노믹스-세상을 바꾸는 관념으로서의 보편적 기본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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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5.


보편적 기본 소득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함으로써 혁신을 가속화한다

Universal Basic Income Accelerates Innovation by Reducing Our Fear of Failure


―― 스콧 샌텐스(Scott Santens)


거의 이 세기 전에 대단한 설명력을 갖춘 한 관념이 고안되어서 인간 사회 전체에 걸쳐서 충격파를 일으켰고 그것의 여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느껴지고 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하여 결국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바로 그 신앙을 의문시하게 할 수 있다.


내가 거론하고 있는 관념은, 돌연 변이와 자연 선택를 통해, 우리 주변의 모든 살아있는 것은 어떤 지적인 창조자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수백 만 년과 심지어 수십 억 년의 시행 착오를 거쳐 생성되었다는 관념이다. 그것은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의 과정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 자신의 생명을 비롯하여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시행 착오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수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과학적 방법이 밝혀낸 것이다. 돌연 변이가 일어난다. 그것들 가운데 일부는 환경에 따라서 다른 것들보다 더 낫다. 여기서는 더 긴 부리와 저기서는 더 긴 목이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다. 성공적인 돌연 변이는 계승된다. 대대로 반복 작업이 계속된다. 이런 진화 과정을 발견한 것은 인간 종의 위대한 성취 가운데 하나이다. 어쩌면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다른 한 관념―무조건적 기본 소득(unconditional basic income)―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 설명할 것이다.


환경으로서의 시장


우리 경제는 복잡한 적응적 체계(복잡 적응계)이다. 시장은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과 거의 마찬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자연 자원을 채굴할 것인지,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 얼마나 많이 만들 것인지, 모든 것을 어디로 운반할 것인지, 누구에게 줄 것인지 등을 결정하고 있는 중앙의 계획자는 전혀 없다. 이런 결정들은 "시장"으로 불리는 대규모로 탈중심화된 널리 분산된 체계의 결과이고,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수요)과 그 무언가를 제공하는 사람들(공급) 사이에 교환되고 있는 "돈"이라고 불리는 도구 덕분에 전적으로 가능해진다.


그런데 돈은 탈중심화된 계산 도구 이상의 것이다. 또한 돈은 에너지와 유사하다. 식량을 섭취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육체에 동력을 제공하고 태양이 식물에 동력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돈은 전체 과정에 동력을 제공한다. 식량이 없다면 우리는 굶어 죽고, 돈이 없다면 시장은 굶어 죽는다.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충분한 양의 돈은 시장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모노폴리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명백할 것이다. 모든 경기자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그 게임은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한 판이 다 돌더라도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GO 칸을 통과할 때 아무도 200달러를 받지 않았다면, 그 게임은 훨씬 더 빨리 끝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돈을 전부 잃게 되면 그 게임은 언제나 멈추게 되는데,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돈이 없으면, 구매도 없고, 시장도 없으며, 게임도 없다. 게임 끝.


시행 착오로서의 수요와 공급


그렇지만 돈이 충분히 있다면 시장은 시행 착오에 의거하여 적응하고 진화한다. 누군가가 창조하거나 수행할 무언가에 관해 생각한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잘 작동하게 된다.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사라지게 된다. 잘 작동하는 것은 수정된다. 사람들이 수정본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잘 작동하게 된다. 그들이 싫어한다면 그것은 사라지게 된다. 그들이 수정본을 충분히 좋아한다면 원본은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적자 생존으로 불린다. 이것은 재화와 용역의 진화인데, 재화와 용역은 수요와 공급으로 돌아가며, 결국 수요와 공급은 돈과 다른 한 가지 것―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으로 돌아간다.


유전자의 돌연 변이로서의 위험


이런 생물학적 유비에서 위험을 감수하기는 무작위적인 유전자의 돌연 변이와 동등하다. 시장에 출시된 새로운 제품이나 용역은 성공 아니면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그 결과는 시행될 때까지 전적으로 알 수 없다. 성공하는 것은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 수 있고 실패하는 것은 누군가를 파산시킬 수 있다. 그것은 큰 위험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이런 위험 감수자들을 특별한 종류의 사람으로 간주하기를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대체로 성공의 잠재성보다 실패가 더 희소하지 않다고 느낄 만큼 경제적으로 충분히 안정된 사람일 뿐이다.


최고의 일례로서 엘론 머스크(Elon Musk)는 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대단히 성공적인 위험 감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대학 시절을 회고하면 머스크는 한 달에 1달러로 생활할 수 있는지 도전했다. 그는 왜 그런 도전을 했었는가? 머스크는, 자신이 매우 적은 돈으로 성공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면 어떤 실패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그의 마음 속에서 실패의 위험은 그로 하여금 성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것을 막지 못할 만큼 충분히 축소되었다.


이것은 결코 일화적 증거가 아니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는 식품 구매권의 바로 그 존재―실패했을 경우에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가 사업자의 비율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자가 사업을 시작했더라도 여전히 수당을 받을 자격을 유지할 수 있게 한 프랑스 실업 보험 체계의 개혁에 관한 한 연구는 그 개혁이 더 많은 자영업자를 낳았다는 것을 밝혀 내었다. 캐나다에서는 새로운 산모가 일 년 동안의 휴가 후에 일자리를 보장받게 되는 모성 휴가 정책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런 정책 변화의 결과에 관한 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자문하는 여성들 때문에 사업자 수가 35%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 실패하더라도 나는 어쨌든 내 급료의 수령을 보장받고 있다."


한편으로, 현재 사업자 수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30년 전에는 창업한 지 5년 이하의 기업들이 기업 전체의 절반을 구성하곤 했다. 이제는 그런 기업들이 대략 1/3을 구성한다. 새로운 기업들이 창업되고 있는 것보다 기존 기업들이 더 빨리 폐업되고 있다. 그런 데이터가 기록된 이래로 최근까지 합중국에서는 이런 추세가 이전에는 결코 참이었던 적이 없었다. 창업 속도가 하락하고 있다. 왜? 불안정성의 증가로 인한 위험 회피.


불안정성의 증가


수십 년 동안 기술의 진보 덕분에 인간 경제는 몇 가지 매우 두드러진 변화를 겪었으며, 그리고 동시에 노동 조합과 공공 안전망처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한 제도들을 적극적으로 서서히 파괴시켰다. 수십 년 동안 물가 상승이 반영된 소득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런 소득을 제공하는 일자리는 안정된 경력에서 불안정한 직업, 비정규직과 계약직 그리고 최근에는 심지어 공유 경제의 임시직으로 바뀌어 버렸다. 경제적 안정성의 감소는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할 개연성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창업이 감소 추세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단지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 점점 더 걱정하게 될 때 창업에 필요한 신념의 도약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은 전혀 놀랍지 않아야 한다. 전체 보험 산업은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보장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더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다. 화재 보험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음식점이 존재했었을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기업 자체는 개인적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기업가 정신과 위험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위험 회피를 축소시키는 것이 혁신에 가장 중요하다.


진화로서의 실패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도록 실패의 위험을 어떻게 완화시키는가? 더 잘 서술하면, 실패의 비율을 어떻게 증가시킬 것인가? 그것은 반직관적인 듯 들릴 것이지만, 실패는 회피할 것이 아니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 그리고 대신에 무엇이 작동할 것인지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실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과학적 방법을 요약한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 참인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이 아닌 것을 배제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 둘 사이에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또한 이것은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서 진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자연은 승자를 결정하고 있지 않다. 자연은 모든 패자를 결정하고 있을 뿐이고, 그래서 패배하지 않는 자들이 기본적으로 진화의 게임에서 승리한다. 그래서 돌연 변이의 비율이 더 높을수록 더욱더 많은 돌연 변이가 실패하거나 실패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러므로 유기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장 경제에서 실패의 비율이 더 높을수록 경제가 더욱더 빨리 진화할 수 있다. 또한 실패와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 한 개의 성공이 100,000개의 실패를 능가할 수 있다.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벤처 자본가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이것을 검은 백조 사육하기(Black Swan Farming)로 서술한 적이 있다. 정말로 변형시키는 힘이 있는 착상에 관해서 그것은 자명하게 위대한 착상이 아니거나, 아니면 이미 착상 이상의 것일 것이며, 그리고 창업에 투자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에 관해서 문제는 그것이 성공할 것인가라기보다는 그것이 크게 성공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가장 큰 착상이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작은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제 그것을 사람에게로 옮겨서 검토하자. 사람들이 대체로 세상을 크게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른바 아인슈타인들―검은 백조들은 흔히 사회적 투자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간주될 가능성이 가장 작다이라면 어쩔 것인가? 그런 경우에 영리한 접근 방식은 대단히 거대한 사회적 투자의 그물을 치는 것일 것인데, 그런 거대한 비용에도 검은 백조의 혁신으로부터의 투자 수익률이 비용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점을 철저히 인식하자.


공교롭게도 이것은 바로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절대적으로 공허한 관념을 제거해야 한다. 수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머지 모든 사람을 부양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적 발명을 창안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사실이다." 그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사회 전체가 집단적인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도록 그런 사람들 모두에게 투자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생활비를 벌게 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 수만 명 가운데 그런 한 사람이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머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엄청난 성취를 달성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무엇이든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을 철저히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기업가 정신과 결코 본 적이 없는 그런 종류의 정말로 거대한 혁신의 폭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면 어쩔 것인가?


죽음으로서의 두려움


모든 것이 귀결하게 되는 것은 두려움이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FDR)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절대적으로 옳았다. 두려움을 위험 감수를 막고, 실패를 막으며, 혁신을 막는다. 거대한 두려움이 굶주림과 노숙이고, 그래서 그렇지 않다면 위험을 감수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해법은 그냥 굶주림과 노숙을 치워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충분히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결코 바라지 마라. 사람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제거하라.


모든 사람이 매달 어쨌든 간에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의 돈을 절대적인 최저 소득―무조건적 기본 소득―으로서 받게 된다면, 굶주림과 노숙에 대한 두려움이 제거된다. 그것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기회를 가질 수 없을 만큼 너무 험준한 것으로 간주되는 실패의 위험도 더불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기본 소득의 효과는 위험 완화에 그치지 않는다. 기본 소득은 기본 자본이기도 하다. 그것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제품이나 용역을 그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며, 그리고 훨씬 더 좋게도, 사람들이 그런 새로운 제품과 용역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훨씬 더 널리 분산되고 더욱더 탈중심화된 자유 시장 체계를 통해서 성공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 시장 효과는 나미비아와 인도에서 시행된 보편적 기본 소득 실험에서도 관찰되었는데, 모든 사람이 최소 금액의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가 될 수 있었던 것과 기업가 수가 세 배로 늘어난 것 덕분에 지역 시장이 번성했다.


기본 소득은 공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무조건적 월 소득 덕분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OSS)와 무상 소프트웨어 운동(FSM)에 속하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인터넷 자체의 토대를 이루는 무상 노동를 얼마나 많이 행할 수 있게 될 것인지 상상하자.


민주주의로서의 시장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진 돈으로 투표할 수 있으며, 그리고 제품과 용역에 대해 투표할 충분한 돈을 가질 수 있을 때, 시장은 가장 잘 작동한다. 오늘날 아이폰이 존재하는 까닭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그것을 실현할 자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아이폰이 존재하는 까닭은 지금까지 수백 만 명의 사람이 자신이 가진 돈으로 그것에 투표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돈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아이폰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는 그 점에 있어서는 사실상 어떤 다른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투표가 중요하다. 돈이 중요하다.


진화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시행 착오 과정을 통해서 무엇이 실패하지 않는지 밝혀내기 위해서는 실패가 중요하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가 우리 사회를 자기 조직화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급격히 완화시키는 보편적 기본 소득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방식에 적용해야 하며,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혁신을 새로운 단계로 가속화하기 위해 감수할 위험의 크기를 증가시켜야 한다.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 실패는 목적지이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이다.


우리가 진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