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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핼버슨: 과학, 종교 그리고 세속주의-1부: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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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4.


과학, 종교 그리고 세속주의, 1부: 서론

Science, Religion, and Secularism, Part I: Introduction


―― 대니얼 핼버슨(Daniel Halverson)


인류, 생명의 세계 그리고 우리 우주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들은 어떤 종류의 패턴들을 분명히 나타내는가, 그것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의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과학은 관찰, 측정 그리고 실험을 통해서 이와 같은 물음들에 대답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 및 우리 사회에 대한 과학의 중심성이다. 이런 중심성 때문에 과학과 그것을 둘러싼 쟁점들은 지금까지 엄청난 학술적 주목을 끌었으며, 그리고 흔히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이런 논쟁이 특히 중요했던 한 영역은 과학과 신학의 상호작용에 놓여 있다. 신학 역시 우리 모두가 때때로 궁금해하는 물음들에 대답하고자 한다. 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악과 고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공동체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신은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오히려, 신은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과학과 신학을 나란히 병렬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어떤 종류의 세계상이 출현하는가?


물론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이 정말로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과학 이전 무지의 시대에 사람들은 신학, 말하자면 미신이 있었다. 그때로 되돌아가면 사람들은 요정과 동화, 천사와 악마, 신과 내세 그리고 모든 종류의 다른 터무니 없는 것을 믿었다. 현재 우리는 이성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또는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그리고 과학은 정말로 중요한 물음들에 지금까지 대답했거나 곧 대답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신학에게 남은 유일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자체를 청산하는 것이다. 신학의 지속은 기껏해야 무관한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명백히 위협적인 것이다. 무신론적 우주론자 빅터 스텐저(Victor Stenger)는 9/11사태 후에 이 주장을 명쾌하게 요약했는데, "과학은 여러분을 달로 보내주지만, 종교는 여러분을 빌딩으로 보내준다"고 적었다.


글쎄, 그것은 하나의 시각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그것은 스텐저의 격노감, 또는 심지어 필연적으로 어떤 적대감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것은 20세기 전체에 걸쳐서 매우 두드러졌고, 21세기까지 그렇다. 1972년에 앤터니 플루(Antony Flew)가 "무신론 추정(The Presumption of Atheism)"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적었을 때, 그는 그저 독자적인 철학적 주장을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교양인들은 그런 진부한 종교 문제에 연루되지 말아야 했다.


지금까지 그 결과는 여전히 대단히 소수파적인 견해(최소한 합중국에서는)인 무신론의 추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속주의의 추정이었다. 세속주의는 오랜 시간 동안 사상의 세계의 주변부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 술어이다. 세계가 이해되는 일반적 감각이 있을지라도―즉, 종교가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회의 경우에―그것은 매우 많은 철학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것이 잘 작동하는 세계관 또는 일단의 가정들이 작동하는 방식―매끈하고, 보이지 않으며, 반사적인―이다. 지금까지 세속주의 추정은, 최소한 지적 집단에서, 매우 강력하여 논의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진지한 지적 활동은 세속적인 것이라는 점을 그냥 알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진부한 종교 문제와 대조하는 방식을 제외하면, 세속주의가 무엇이고, 또는 세속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는 왜 우리가 세속적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 연재 글에서 나는 이런 가정들 가운데 몇 가지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는 어떤 다양한 세속주의가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인데, 신학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고, 신학은 과학에 관심이 없고(또는 적대적이고), 신앙 공동체는 퇴출되고 있는 중이며 그리고 과학은 자유와 진보의 멋진 신세계로 가는 길을 가르킨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종교는 역사와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교학"에 전념하는 온전한 대학 학과가 있는데, 힌두교와 유대교와 신도가 함께 묶여서 "종교"라는 단일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물론, 장로파 교인들은 자신이 무슬림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가톨릭 교도와도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현대 고급 문화에서 동일한 범주로 분류된다. 그런데 세속주의는 어떠한가? 그것의 역사는 어떠한가? 그것의 철학은 어떠한가? 합중국의 세속주의는 유럽,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중국의 세속주의와 동일한가? 아무튼 세속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세속주의와 신학의 실제 관계는 무엇인가? 이 연재 글에서 나는 세속주의를 타자들에 대한 의제를 설정하는 은폐된 참가자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탐구 대상인 것으로서 대화에 포함시키고 싶다.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학문의 일부가 세속주의의 철학과 역사를 탐구한다고 믿고 있다.


이 연재 글의 다른 한 목표는 이런 논의와 관련된 어떤 친숙한 상투형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신학에 관한 매우 널리 보급된 견해가 있는데, 그것은 자칭 권위의 입장에서 비롯되는 오래된 진부한 정통의 반복일 뿐이다. 틀림없이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 신앙 공동체들이 있다. 그러나 신학은 근본주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모든 또는 대부분의 신앙인을 이와 같은 동일한 거친 붓으로 칠하는 것은 불공정한 잘못된 행위이다. 바로 처음부터 과학에 대한 활발한 건설적인 신학적 개입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것은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에 관한 견해도 있는데, 과학자들은 신학에 관심이 없거나 관여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내가 증명하고 싶듯이, 이것 역시 정말로 참이 아니다. 신앙 공동체는 그것 자체로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들의 과학적 연구 대상인데,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에 의거하여 신학적 제안들을 제시했고, 그래서 그것들이 어떤 선재하는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발언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자의적인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갈등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회피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무신론자와 보수적 신학자 들이 이 논의에 참여한 일부였고, 그래서 그들도 발언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도, 나는 사상의 세계와 관련된 내 열광을 공유하고 싶다. 매일 매혹적인 연구가 발표되고 있고, 대담한 새로운 관념들이 탄구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흔히 익명의 학술 저널들에 발표되고, 전문적 언어로 서술되거나 또는 방대한 위협적인 책에 숨어 있기 때문에, 이른바, "고리 속에" 있는 사람들만 그것들을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너무나 흔히 그것들은 마땅하지 않는 익명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사상의 세계의 이 작은 구석을 탐험함에 따라 나는 여러분이 이런 관념들이 과학, 신학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질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