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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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힉크먼: 오늘의 서평-그레이엄 하먼: 만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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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21.


그레이엄 하먼: 만물 이론

Graham Harman: A Theoy of Everything


―― 크레이그 힉크먼(Craig Hickman)


"생각한다는 것은 세계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어느 날 가만히 있는 단일한 사유에 스스로를 가둔다는 것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ar)


마르틴 하이데거는 한 가지 생각을 하는 것, 한 가지 생각만을 하는 것, 끝까지 철저히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최근에 그레이엄 하만이 발표한 책 <<객체지향 존재론: 새로운 만물 이론(Object-Oriented ontology: A New Theory of Everything)>>를 막 읽고 난 다음에 나는 하이데거의 언명이 떠오른다. 현대물리학에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동안 비전문가들뿐 아니라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인기 있는 일시적 유행이 된, 이른바 만물 이론에 대한 탐색이 시도된 후에 끈 이론이 이론적이고 수학적으로 경사된 많은 참여자에게 명백한 선두 주자가 된 것은 그 이론의 우아함 때문이다. 결국 끈 이론과 관련하여 더 많은 수학적 난제와 끝없는 논쟁 외에는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리 스몰린(Lee Smolin) 같은 과학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은 이처럼 끈 이론을 언젠가 객관적이고 진리를 담고 있는 보도를 제공할 가장 중요한 이론으로 완전히 수용하는 것을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짓으로 간주할 것이고, 달걀을 몽땅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잘못된 근거 없는 비실험주의로 대학원생들의 정신을 채우는 것은 결국 과학에 최종 단계의 일종을 산출할 것이라고 본다.


한편으로 하먼은 무엇이든 그런 만물 이론을 다른 각도, 즉 철학에서 근거 없는 것으로 공격할 것이다. 하만의 경우―브라운(Browne)이라는 허구적 과학자를 활용한다―에는 처리해야 할 네 가지 그릇된 가정이 있다. "여러분이 ... 적용 범위가 무한한 이론을 갖고 나서야 그만두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끈 이론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끈 이론의 다양한 추세에 대한 논평가이자 대중화론자인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에서 실마리를 얻은 하먼은 다음과 같이 그릇된 가정들을 진술한 다음에 처리한다.


1.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리적이어야 한다

2.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기본적이고 단순해야 한다

3.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재적이어야 한다

4.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문자로 표현된 명제적 언어로 정확히 진술될 수 있어야 한다.


하먼은 물론 이런 가정들을 각각 논의한 다음에 궁극적으로 그런 이론이 직면하는 네 가지 주요한 문제가 물리주의(physicalism), 소체론(smallism), 반허구주의(anti-fictionalism), 문자주의(literalism)라는 점을 환기시킬 것이다. 그 후에 그는 계속해서 객체지향 존재론(OOO)이 이런 지적인 독소를 엄밀히 피한다고 진술한다. 그가 진술하는 대로, "객체지향 사상가에게 물리적 객체는 다양한 종류 중에서 그저 한 종류의 객체일 뿐이므로 우리는 단호한 유물론적 세계관에 잘 들어맞지 않는 객체들을 서둘러 비난하거나 '제거하'지 말아야 한다."(p. 39) 여기서 유물론에 관한 하먼의 관념은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같은 철학자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관념과는 분별되어야 한다. 하먼은 이런 다른 계통들이라기보다 과학적 유물론을 시사한다. 하먼이 서술하는 대로(그리고 내가 길게 인용하는 대로),


철학은 종교의 시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유물론의 하녀도 아니다. 소체론에 반대하는 객체지향 사상은 객체들이 전자, 분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은하를 비롯하여 매우 다양한 규모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복잡하고 크다는 단순한 사실이 무언가를 자기의 구성 부분들보다 덜 실재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 다음에, 허구적 객체들을 존재에서 서둘러 쫓아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거론할 가치가 있는 철학이라면 무엇이나 그런 존재자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해서다. 그리고 내게 "허구적"이라는 낱말은 셜록 홈즈와 엠마 우드하우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뜻할 뿐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마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직접 접근할 수 없는 실재적 집과 망치에 대한 단순화된 모형들의 방식으로 지각하는 일상적인 집과 망치도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객체지향 존재론이 반문자주의적인 이유는 사물에 대해서 문자로 표현되는 어떤 서술도, 어떤 지각도, 어떤 인과적 상호작용도 우리에게 그 사물을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번역물을 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재에 대한 간접적이거나 에두른 접근 수단은 몇 가지 점에서 그것에 대해서 문자로 표현된 어떤 양의 정보보다도 더 현명한 접근 방식이다.(p. 40)


그래서 객체지향 존재론의 경우에는 규모와 간접적 접근, 반문자주의라는 관념들이 철학적 태도의 특징이다. 이런 태도의 일부로서 하먼은 자기가 사용하는 세 가지 관념을 어떤 다른 철학적 사변 형식들―아래로 환원하기(Undermining), 위로 환원하기(Overmining), 위아래로 환원하기(Duomining)―에서 자기의 입장을 방어하는 데 관련시킨다. 단테에 관한 책에서 하먼이 강조했듯이, 아래로 환원하는 사람은 객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말함으로써 객체를 제거하는 사상가이고, 위로 환원하는 사람은 객체가 어떻게 현시되는 말하거나 객체를 무엇을 행하는지 말함으로써 객체를 제거하는 사상가이며, 위아래로 환원하는 사람은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하는 사상가다.


이런 세 환원가들이 모두 놓치는 것은 없애고자 하는 모든 지적인 방법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으로 여전히 남는 실재적 객체다. 철학에서 이런 반환원적 조류는 중세 시대의 실체적 형상들로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신만이 알 수 있으므로 인간은 오히려 실재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적 단서 조항만큼 멀리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하먼의 객체 용법에 대한 이의 제기는 하먼이 왜 사건을 무시하면서 "객체에 전념하기를 바라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유물론적 실재론자인 마누엘 데란다에서 비롯되었다. 한편으로 하먼은 아무 갈등도 없이 사건을 많은 객체들 가운데 또 하나의 객체일 뿐이라고 간주하면서 객체지향 존재론에 대한 유일한 기준은 "객체는 자기의 부분들 이상의 것이고 자기의 영향들 이하의 것이다"라는 것이라고 말한다.(p. 53)


하먼의 이전 저작들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의 첫 번째 책 <<도구-존재(Tool-Being)>>의 중심 논제는 객체는 여타의 객체들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외딴 사적인 진공으로 포장된 채로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게릴라 형이상학>>이라는 두 번째 책에서 하먼은 전적으로 격리되어 있거나 물러서 있는 객체들이 도대체 서로 어떻게 접촉할 수 있는지 또는 진공포장된 객체들이나 도구-존재자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관계와 사건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줄 것이다. 이 작업을 수행하려고 하먼은 니콜라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와 그에 앞선 아랍 철학자들에서 라이프니츠 등을 거쳐 조합된 기회원인론 철학에서 도출된 대리적 인과관계라는 관념을 도입한다. 하먼이 진술하는 대로, "실체와 관계를 절대적으로 구별짓는 철학이 불가피하게 대리적 인과관계의 이론이 될 것은 실체들이 서로 직접 상호작용할 길이 없을 것이어서다."


실재적 객체 대 감각적 객체 등의 세부를 논하지 않는다면 대리적 인과관계라는 관념은 오인하고 간과할 수 있을 단순한 사항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세계에서 두 개의 실재적 객체는 직접적인 충격을 거쳐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에게 현시하는 허구적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접촉한다. 한 실재적 바위는 실재적인 것에 미치는 소급 효과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다른 한 실재적 바위의 감각적 판본을 타격한다. 이것이 객체지향 존재론이 대리적 인과관계라고 부르는 것이다.(p. 163)


두 개의 바위가 서로에게 '허구적 이미지들'을 간접적으로 현시함으로써 서로 접촉한다는 이 관념은 평범한 비전문가에게는 터무니없고 진부한 듯 들릴 것이지만,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에 미치는 소급 효과라는 관념이다. 오히려 하먼은 지식의 철학자라기보다는 실재적인 것의 철학자다. 하먼은, 소크라테스라는 모범을 좇아서, 철학은 앎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오히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하먼에게 중요한 것은 지혜의 성취라기보다는 지혜에 대한 사랑의 추구다. 하먼에게 지식이 항상 우리 우주처럼 불완전할 것인 이유는 일자, 즉 어떤 언어적 형식이나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외부의 안정된 객체가 전혀 없어서다. 왜? 우주는 과정적인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어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지하의 과정들로 물러서 있는 관계들을 맺는, 진행 중인 객체와 힘은 완전한 총체로 결코 부상될 수 없어서다. 어떤 총체도 없고, 어떤 기반도 없고, 어떤 외부도 없다.


말브랑슈에서 관념론자들을 거쳐 흐르는 노선의 종교적 기회원인론 대신에 하먼은 브루노 라투르에게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어서 실재적 객체와 감각적 객체가 사라지는 매개자를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세속적 기회원인론을 제시한다. 객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립과 해체의 이런 과정은 두 객체 사이에 상호작용이 지속하는 동안 형성되는 새로운 객체 속에서 일어난다. 일시적인 대리적 관계 또는 "조립적 의미의 인과관계가 근본적인 것인 이유는 그것이 별개의 사물들 사이의 어떤 관계가 새로운 복합적 객체를 산출한다고 간주해서다."(p. 167)


이 글에서 나는 하먼의 책에서 나타나는 모든 양상을 살펴볼 시간이 없으며, 그리고 그런 일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그 책을 파고드는 독자의 경험을 훼손할 것이다. 이 책은 하먼의 이전 작업에 대한 요약과 재규정 이상의 것이다. 그가 스스로 진술하는 대로,


철학 같은 오래된 분과학문에서 상황이 항상 그렇듯이, 객체지향 존재론의 착상들이 모두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조합으로 전개되어 지금까지 철학자들이 흔히 무시한 주제들에 적용된다. 이어지는 장들에서 상세히 논의될 객체지향 존재론의 기본 원리들 가운데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실재적인 것이든 허구적인 것이든 간에 객체들은 모두 똑같이 주목받아야 한다. (2) 객체는 자기의 특성들과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특성들과 긴장 관계를 맺으며, 그리고 바로 이런 긴장 관계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의 원인이 된다. (3) 객체들은 단지 두 가지 종류로 나올 뿐인데, 실재적 객체는 자기가 현재 여타의 것에 영향을 미치든 미치지 않든 간에 존재하는 반면에 감각적 객체는 어떤 실재적 객체와 관계를 맺을 때에만 존재한다. (4) 실재적 객체들은 서로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감각적 객체를 통해서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이다. (5) 객체의 특성들도 단지 두 가지 종류로 나올 뿐인데, 역시 실재적 특성과 감각적 특성이 존재한다. (6) 이런 두 종류의 객체들과 두 종류의 성질들은 네 가지 기본적인 조합을 낳는데, 객체지향 존재론은 그 조합들을 본질과 형상으로 알려진 밀접히 관련된 두 용어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7) 마지막으로 객체지향 존재론은, 철학은 일반적으로 수학이나 자연과학보다 미학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는다고 간주한다.(p. 9)


내게 철학자들은 과거 철학에 대한 새롭고 혁신적인 독법을 제시하고 새로운 개념, 관념, 그리고 하먼의 경우에, 수사와 은유를 구성하려고 서로 오독하거나 비난한다. 올바른 철학이나 올바른 철학 독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더 흥미로운 해석과 새로운 형식의 출현이 있을 뿐인데, 지혜의 추구는 끝이 없고 그런 사상의 조달자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삶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끝없이 자극한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각각의 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문학가 등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재적인 것들에 대해서 진행 중인 논쟁의 역사 속에서 철학자가 취하는 태도다. 그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고, 문자주의적 태도와 반문자주의적 태도 사이의 논쟁은 문화의 법 또는 경찰이 개입하여 그것을 불법화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 과업을 떠맡는 인간들만큼 많은 철학이 있다. 하먼의 철학이 항상 흥미로운 것은 그것의 명료성, 정확성, 통찰력 때문이다. 하먼은 자기의 역사를 알고 있고, 그는 자기의 적을 알고 있으며, 그는 우리 시대와 같은 분쟁의 시대에 공습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유머와 아량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