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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레스 데일: 오늘의 에세이-생태적 카를 마르크스의 출현: 1818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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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29.


생태적 카를 마르크스의 출현: 1818 - 2018

The Emergence of an Ecological Karl Marx


―― 가레스 데일(Gareth Dale)


오늘 카를 마르크스의 200번째 탄생일이 그가 바라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환경에서 축하받고 있는데, 요컨대 지구는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으면서 점점 더 찢기고 망가지고 있다.


이전에 1918년과 1968년의 탄생 기념일은 진보적인 사회 운동들이 전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와중에 도래했다.


그런 국면들의 경우에 마르크스는 계급 투쟁과 혁명, 탈식민주의적 세계의 종속에 대한 이론가였지만 자연은 도외시하였다. 환경주의자들은 마르크스에게서 가치를 찾아내지만 그의 생태적 분석에서는 가치를 찾아내지 않았다.


맬서스적 비관주의


이런 상황을 상징하는 것은 1971년에 G. N. 사이어(G. N. Syer)가 『더 에콜로지스트(The Ecologist)』에 기고한 에세이다. 그 에세이는 평등과 보편적 인간 해방에 대한 마르크스의 열정에 찬사를 바쳤다. 더욱이 그것은, 마르크스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변증법적' 관계로 이해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조서는 길었다. 우선 사이어는 마르크스의 몇몇 예측이 어긋났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가 사회적 양극화와 위기 순환을 생성한다는 주장은 반증되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부자와 빈자 사이의 재산 격차는 "거의 모든 곳에서 좁혀졌고 호황-불황 순환은 "케인즈적 경제 이론들을 적용"한 덕분에 극복되었다고 사이어가 주장했다.


더 중요하게도, 마르크스는 무한한 물질적 진보에 대한 당대의 신념을 되풀이한다고 비난받았다.


마르크스는 맬서스적 비관주의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진보가 지구에 가하는 부담과 그 결과에 따른 오염 및 자원 고갈을 깨닫지 못했다. 더욱이 엥겔스와 대조적으로 마르크스는 "토양 같은 자연 대부분의 취약성과 지구 자원이 언젠가 소진될 수 있을 가능성을 전해 알아채지" 못했다.


핵심 문제들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는 얼마나 다른가?


그것은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으로 부른 것―자본주의 체계에 대하여 알아차릴 만한 대안이 전혀없다는 감각―이 지배하지만 인간 사회와 자연 영역의 관계에 대한 지각을 비롯하여 위기에 대한 지각이 만연하는 시대에 도래한다.


이런 점에서 생태적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를 찾아낸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매개하고 조절하며 통제하라


이것은, 토양 악화의 화학이든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 발견의 생태적 함의든 간에, 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꼼꼼한 지식을 갖춘 마르크스다.


최근에 사망한 학자-활동가 조엘 코벨(Joel Kovel)과 엘마 알트파터(Elma Altvater)와 더불어 제이슨 무어(Jason Moore)―『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Capitalism in the Web of Life)』―와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화석 자본(Fossil Capital)』―을 비롯한 저자들은 자연-사회 관계에 관한 논의로 "자본주의를 다시 끌어들여"서 생태적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지속적인 재생을 촉발했다.


캐롤린 머천트(Carolyn Marchant) 같은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무어는 재생하는 생태적 마르크스주의가 페미니즘 이론과 사회재생산 이론 창조적으로 대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결말은 마르크스의 기획을 급진적으로 재고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연'이 단역을 맡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결국 마르크스의 인류학은 인간이 자신의 생계 수단을 생산함으로써 자연의 나머지 부분과 맺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


노동 과정을 규정할 때, 라이너 그룬트만(Reiner Grundmann)이 환기하듯이, 마르크스는 '물질대사'라는 개념을 채용했는데, 요컨대 노동 과정은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조절하며 통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물질대사의 파괴는 재난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구적인 조건


그리고 마르크스는 경제 성장 또는 물질적 진보의 치어리더로 더 이상 해석될 수 없다. 마르크스를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 진보에 대한 그의 비유적 표현을 익혀야 한다. 그것은 "오직 죽은 자들의 해골로 감로주를 마시고자 하는 괴물 같은 이교도 신"을 닮았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새롭게 찾아낸 '생태적' 마르크스는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예리한 비판가였고, 『자본』의 제1권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적 진보에 의한 자연 영역의 유린에 주목한다.


마르크스는 읊조린다.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뿐 아니라 토지도 약탈하는 방식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의 비옥도를 높이는 모든 진보는 비옥도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다. [...]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한 뒤에야 비로소, 각종 생산과정들을 하나의 사회 전체로 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게 된다."


환금 작물 생산은 농업 자체와 모순을 이루고 있는데, 농업은 인간들이 오랫동안 필요로 하는 "생명의 온갖 영구적인 조건"과 관련되어 있거나 관련되어야 하더라도 말이다.


생태계 붕괴


같은 책에서 마르크스는, 자연 환경은 그것이 "연쇄적인 인간 세대들의 존재와 재생산을 위한 양도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이해함으로써 다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생태적 마르크스는 인간이 '한계와 문턱'을 도외시한 채 자연을 지배하려는 무신경한 욕망을 나타내기는커녕 환경적 한계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표명하였고, 인간 사회가 자신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종류의 과정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생태적 마르크스는 자연에 민감하지 않기는커녕, 여기서 토마스 뮌저(Thomas Munzzer)를 인용하면, "수중의 생선, 공중의 새, 지상의 식물 등 모든 생명체가 재산으로 변환되어버린" 사태를 참을 수 없음을 알아챘다. 그것들 역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런데 수중의 생선은 사라지고 있다. 공중의 새도 사라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태어났을 때 이산화탄소 농도는 283ppm이었고 그의 탄생 200주년에는 410ppm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 농도는 대형 영장류의 종화 시기보다 앞선 지난 2천만 년 동안 가장 높은 농도다.


'평소대로 생활하기(business as usual)" 방식을 지속할 경우에 수 세기에 걸친 되먹임 작용으로 온도가 단계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그래서 이 사태는 지구의 생물물리학적 경계에 가해지는 일단의 다른 공격―지구에 대한 자본의 전쟁―과 결합하여 거대한 규모로 멸종을 가속화하고 생태계가 연이어 붕괴할 조짐일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인간 멸종의 전망이 처음 논의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40세였는데, 요컨대 지구적 자본주의가 일 세기 내지 이 세기 동안 더 지속된다면 인간이 생존할 모든 승산은 사라질 것이다. 이제 방향타가 다시 한 번 1918년과 1968년의 의제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자연으로부터의 소외와 자본의 기하급수적 축적에 대한 이론가인 생태적 마르크스는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