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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코헤이: 인터뷰-카를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적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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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29.


카를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적 견해 - 사이토 코헤이와의 인터뷰

The ecosocialist views of Karl Marx - An interview with Kohei Saito


Q: 당신은 『카를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Karl Marx's Ecosocialism)』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오랜 세월 동안 환경주의자들―게다가 심지어 많은 마르크스주의자―이 마르크스가 프로메테우스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아래 발달한 기술에 무비판적이었음을 믿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지속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 한 가지 명백한 이유는 마르크스가 『자본』을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년에 마르크스는 자연과학을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자신이 새로 발견한 결과를 『자본』에 완전히 통합할 수 없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제3권에서, 특히 자신의 지대론을 다시 쓰면서, 생태적 쟁점들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려고 계획했지만, 결코 그 작업을 매우 많이 진척시키지 못했고, 게다가 『자본』의 제2권도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마르크스는 자연과학에 관한 여러 권의 공책을 남겼을 뿐입니다. 불행하게도, 사실상 그것들에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늘날에도 그것들을 읽은 사람은 별로 없으며, 게다가 그것들은 오랫동안 출판되지도 않았는데, 이제야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이 제4부에 그것들을 출판합니다.


Q: 이런 무시가 왜 일어났습니까? 저는, 이른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기획을 인간의 역사와 자연을 비롯하여 우주 속 만물을 설명하는 닫힌 변증법적 체계로 여겼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초고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고 그의 공책에는 훨씬 더 주목하지 않았는데, 요컨대 그 초고와 공책이 마르크스의 『자본』의 불완전한 특성을 입증합니다.


A: 물론, 이런 전능한 독법을 거부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서구 마르크스주의(Western Marxism)"이라는 기치 아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면서 엥겔스를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잘못된 창시자로 가혹하게 비난하는데, 엥겔스는 그릇되게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비판을 우주의 과학적 체계로 확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엥겔스와 그의 자연 변증법을 축출하면서 자연과학과 자연의 권역도 자신들의 분석에서 배제합니다. 그 결과, 자연과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진지한 관여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자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 모두에게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실상 아무도 이처럼 만사를 포괄하는 마르크스 이론의 전능성을 믿지 않고, MEGA는 자연과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여를 명백히 가시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르크스의 텍스트에 대한 대안적 접근법을 찾아내어야 하고, 게다가 그것은 새로운 자료로 마르크스 기획의 개방성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활용할 기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의 경제학 초고뿐 아니라 자연과학에 관한 공책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21세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적 비판을 전개할 방법을 마르크스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좌파에게 긴급한 실천적 및 이론적 과업인 이유는 현재 인간들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 심각하고 전지구적인 생태 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 당신의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태적 비판을 구조하는 데 전념하고 있는데, 요컨대 폴 버켓(Paul Burkett)과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같은 생태사회주의자들이 수행한 작업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마르크스의 분석이 오늘날 좌파와 환경주의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A: 그렇습니다. 제 접근법은 포스터와 버켓이 옹호한 "신진대사 균열(metabolic rift)" 이론을 분명히 계승한 것이고, 제 책의 목적 중 하나는 최근에 제이슨 W. 무어(Jason W. Moore)가 제기한 비판에 맞서 신진대사 균열이라는 개념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아래 대량 생산과 소비가 전지구적 풍경과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생태 위기를 유발한다는 점이 꽤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적 이론도 자본주의 너머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상해야 한다는 분명한 실제적 요구가 있는 상황에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생산을 위한 물질적 조건과 자본주의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생태사회주의의 기본적인 통찰입니다.


저는,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This Change Everything)』가 신진대사 균열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관념의 재생이 21세기의 생태사회주의적 기획을 위한 새로운 상상을 어떻게 개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고 구체적인 분석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인은, 그런 급진적 운동들이 이미 출현하고 있고 그것들의 목표가 실제로 추구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클라인이 주장하는 대로, 2100년에 평균 지구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증가하지 않으려면, 산업 국가들은 지금부터 시작하여 매년 탄소 배출량을 크게 감축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세계 엘리트 집단과 기업들이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그런 기획은 자본 축적의 필요조건과 양립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파리 협약이 필요한 탄소 배출량의 감축을 달성하는 데 불충분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수준의 탄소 감축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기후 변화에 맞서 어떤 진지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세계 엘리트 집단의 총체적 무능을 너무나 흔히 목격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이제 클라인도 생태사회주의를 분명히 옹호합니다.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와 생명 전체의 상호 연결에 관한 토착적 가르침에서 배우는 겸손한 자세를 갖춘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생태사회주의가 인류가 집단으로 생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인 듯 보인다." 적색과 녹색의 반목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Q: 당신의 책의 전반부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라는 마르크스의 관념에 집중합니다. 생태사회주의자들이 신진대사 균열 이론을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다양한 생태 위기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를 말해주시겠습니까? 마르크스의 이론은 다른 종류들의 생태적 이론과 어떻게 다릅니까?


A: 마르크스는 자본의 파괴적인 힘을 명료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인식했기에 자연의 보편적 신진대사가 파괴되면 자유롭고 지속 가능한 인간 발달을 위한 물질적 조건의 기반이 반드시 약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생산력의 자본주의적 발달에 특유한 약탈적 특질은 미래 사회로 이어지는 진보를 낳지 못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논리가 영원한 자연적 순환에서 벗어나서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적 상호작용에서 다양한 부조화를 초래하는 방식을 분석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마르크스는 이 점을 토양에서 양분을 그것에 되돌려주지 않은 채 가능한 한 많이 취하는 근대의 약탈 농경―라우바우(Raubbau)―에 대한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의 비판과 관련지어 분석하였습니다. 약탈 농경은 이윤 극대화로 추동되는데, 그것은 지속 가능한 생산을 위한 토양의 물질적 조건과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의 가치 평가 논리와 자연의 신진대사 논리 사이에 중대한 간극이 출현하는데, 요컨대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신진대사 균열이 발생합니다.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주로 신진대사 균열이라는 이 문제를 토양 소진과 관련지어 논의하지만, 그 범위를 그것에 한정할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사실상, 말년에 마르크스 자신은 이런 이론적 개념을 벌목과 목축업 같은 다양한 쟁점에도 적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오늘날 이런 이론적 틀을 진행 중인 환경 위기를 분석하는 도구로서 적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음을 알게 되면 기뻐할 것입니다. 몇 사람을 거명하면, 해양 생태에 관한 론고(Longo), 목축업에 관한 리안 군더슨(Ryan Gunderson)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관한 델 왓슨(Del Watson)이 마르크스의 신진대사 균열 이론을 생태사회주의적으로 적용한 탁월한 사례일 것입니다.


생태사회주의적 접근법과 다른 갈래들의 생태학적 이론의 접근법 사이에서 드러나는 한 가지 명백한 차이는, 자본주의적 체계가 지속하는 한 생산의 물질적 조건의 악화를 향한 불가피한 경향이 있다는 통찰이다. 다시 말해서, 가까운 미래에는 녹색 자본주의가 아무튼 가능할 것이라는 끈덕진 자유주의적 믿음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은 지속 가능한 생산을 위한 좋은 매개자로서 작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이런 조건 아래, 탄소 거래나 다른 시장 교역이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자들의 희망은 우리가 실제 위험과 위협을 직면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리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 작용하는데, 마치 시장이 우리가 현존하는 생산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의식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들은 매우 위험합니다.


Q: 당신 책의 후반부는 자본주의 아래 "합리적 농경"을 성취할 가능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와 그가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면서 그 견해가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양상에 집중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의해 유발된 생태적 파괴는 자본주의의 한계 내에서 해소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까?


A: 청년 마르크스는 기술과 자연과학의 자본주의적 발달에 관해 여전히 꽤 낙관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사회주의에서 지속 가능한 농경을 위한 조건을 준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자본』을 저술하면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주요 목적은 지속 가능한 생산이 아니라 자본의 가치 평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르크스는, 궁극적으로는, 자본 축적이 여전히 가능한 한 지구의 대부분이 생명에 부적절해지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기술적 발달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조직된다는 점을 깨달았는데, 그러하여 기술의 부정적 양태들이 전면적으로 실현되어서 기술은 사회주의적 사회를 위한 물질적 조건으로 작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 문제는 자본은 환경적 재난에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재난 자본주의"가 행한 일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임스 오코너(James O'Conner)가 "자본의 두 번째 모순"에 관한 자신의 이론에서 지적한 대로, 저렴한 자연의 종말이 자본 축적에 큰 어려움을 안길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실상 자본은 지구공학과 유전자 조작 유기체, 탄소 거래, 자연재해 보험 같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명함으로써 현재의 생태 위기에서 더 많은 이익을 계속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한계는 자본주의적 체계의 붕괴를 초래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적 체계는 그 한계도 넘어서 지속할 수 있지만, 현재의 문명 수준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구온난화에의 진지한 관여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의식적인 투쟁을 동시에 요구하게 됩니다.


Q: 당신은, 말년에 마르크스가 사회가 자연을 비합리적으로 관리한 결과로서 초래될 기후변화의 위험을 깨닫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글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믿을 수 없는 통찰입니다. 마르크스는 기후변화를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A: 포스터는 마르크스가 온실 효과에 관한 틴달(Tyndall)의 강연에 참석하여서 오늘날 지구온난화에 대한 원인에 관해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 주장은 약간 다른데, 그 이유는 마르크스가 이런 화제에 친숙했음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1868년 초에 마르크스가 읽은 칼 프라스(Carl Fraas)의 『시간에 따른 기후와 식물 세계(Climate and Plant World over Time)』에 관한 그의 공책을 검토했습니다. 이 책은 기후변화를 온실가스 배출이 아니라 지역의 공기 순환과 강우량을 변화시키는 과도한 벌목의 결과로 논의합니다. 프라스의 분석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약탈적 특질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심을 토양 소진 너머로 확장했고,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프라스의 이론을 리비히의 이론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오늘날 지구온난화의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주요한 결함이 아닌 이유는 마르크스가 만사를 설명했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르크스는 자연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신진대사 균열에 대한 자신의 분석에 통합하기를 매우 열렬히 원했습니다. 그는 이 목표를 완전히 달성할 수 없었고, 『자본』은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최근의 과학적 진보를 편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탄력적입니다.


신진대사 균열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현재의 전지구적 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위한 방법론적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에 정치경제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으로 전개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생태학을 21세기에 맞게 구체화하고 갱신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과업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미 언급한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브렛 클라크(Brett Clark)와 리처드 요크(Richard York) 같은 사람들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Q: 영국 식민주의로 인하여 아일랜드의 토양이 소진된 사례를 활용함으로써 마르크스는 자본의 전세계적 팽창이 어떻게 식민 국가들의 생태 위기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례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고, 그것이 규모가 훨씬 더 큰 오늘날의 전세계적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에 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


A: 신진대사 균열이라는 개념에 대한 핵심 구절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토양의 자연법칙에 의해 처방된 자연적 신진대사와 사회적 신진대사의 상호 의존적 과정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일으키는 조건을 제공한다. 이것의 결과는 토양 활력의 탕진이고, 무역은 이런 약탈을 단일한 국가의 경계를 훨씬 넘어서 퍼뜨린다(리비히)." 자본주의적 축적이 확대됨으로써 신진대사 균열은 전지구적 문제가 됩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옳은 것으로 판명되는데, 그 이유는 이런 사태가 바로,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언급한 대로, 기후변화는 자본의 체제를 종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자본주의는 훨씬 더 탄력적입니다. 지구 전체를 파괴하고 세계 전역에 대량의 환경 프롤레타리아트를 산출하도록 생태 위기가 깊어지더라도 이런 사회적 체계는 살아남아서 자본을 계속 축적할 개연성이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아마 생존할 것이고, 한편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보다 당면 위기에 대한 책임이 훨씬 작은데도 기후변화에 훨씬 더 취약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가올 기후변화의 파국적 결과에서 자신을 보호할 유효한 기술적 및 재정적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일랜드와 인도에서 이루어진 영국의 식민주의 사례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후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계급 투쟁의 한 요소를 명백히 포함합니다.


기후변화는 우리 삶과 관련하여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지만, 기후변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자본주의를 바꿀 것입니다. 이것이 생태사회주의가 생태 위기와 신진대사 균열을 자본주의의 중심 모순으로 파악하는 방식입니다. 마르크스가 최초의 생태사회주의자 중 한 사람인 이유는 그가 과도한 벌목과 기후변화에 대한 칼 프라스의 경고에서 "사회주의적 경향"을 찾아내었을 때 이 점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는 것은 적색과 녹색 둘 다의 주요한 과업인데, 이것은 "녹색 자본주의" 안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서야 실현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