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사물과 사유된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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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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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학(그리고 그 밖에 많은 다른 형태의 이론)의 큰 죄는 사물―자신의 물질성을 갖춘 형태의 사물―을 사유된 사물로 전환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할 때, 나는 사물이 기표로 대체되는 방식을 부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전환을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담론 바깥에 있는, 언어 바깥에 있는, 개념성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인데, 요컨대 이렇게 시도하는 바로 그 행위의 와중에 나는 그 사물을 언어와 담론, 개념성으로 가져온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감각 확실성을 다룬 절에서 그 논점을 뛰어나게 부각했다. 그 절에서 헤겔은, 그가 "감각 확실성"이라고 부르는 의식의 형태로 우리는 여기에 있는 이 특이한 사물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보편적인 것이거나 일반적인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나는 내 아내가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이 대체 불가능한 [...] 사이드 테이블을 가리키고 싶지만, 내가 "사이드 테이블"이라고 말하는 순간에 나는, 사물의 질서 속에서, 모든 사이드 테이블에 적용되는 일반적 용어를 환기해 버렸다. 형용사를 부가함으로서 내 서술을 풍요롭게 하려고 아무리 시도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일반성의 질서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


나중에 [...] 아도르노는 [...] 물질 개념이 본질적으로 난처하고 역설적인 개념인 이유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비개념적인 것에 관한 개념이기 떄문이라고 [...] 지적했다. 우리의 물질 개념은 그 자체로 개념이 아닌 무언가를 가리킨다고 아도르노는 말한다. 아도르노의 경우에, 이 사태는 그 개념을 거부하기 위한 근거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존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아도르노는, 우리는 물질적인 것, 사물의 물질성을 말할 수 없으므로 사물을 사유된 사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관념론적 태도에서 세계의 많은 참상이 직접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에, 여기에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의 가장 강력한 교훈 중 하나가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어떤 사물, 예컨대 어떤 나무를 정말로 나타내려면 그 나무 전체를 우리 마음속에 재현해야 할 것이라는 하먼의 주장을 비웃지만, 여기서 나는 하먼이 심오한 논점을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하먼은 내가 물질성을 강조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지만―요컨대 그는 제목이 『비유물론(Immaterialism)』인 훌륭한 책의 저자이고 유물론에 반대하는 논증을 펼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그의 요점은 사물의 무언가가 항상 빠져 나간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하먼의 OOO는 현전의 형이상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먼은 결코 지치지 않은 채로 사물은 항구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그것을 길들이고 지배하려는 우리의 가장 끈덕진 시도를 교란할 화산 같은 비밀을 품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사물은 결코 사유된 사물과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사물에는 사유된 사물을 벗어나는 것이 항상 존재한다. 그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면, 사물은 사유된 사물의 폐허다.


[...] 사유된 사물은 우리가 그 사물을 정복했다는 환상을 초래한다. 우리는 그 사물을 개념과 구분, 담론적 차이의 체계 속에 포획하는데, 요컨대 그 체계는 우리가 그 사물을 이해했기에 그것은 놀라운 점이 전혀 없다는 환상을 초래한다. 사유된 사물은 우리의 인지에 쉽게 장악당하기에 우리는 사물 자체가 우리에게 따로 가르쳐 줄 것은 없다고 믿는다. 흔히, 은근한 형태로, 사물에 관한 우리의 사유도 우리 사유의 논리 전체를 전개하는 은근한 인지적 모범 사례에 의해 지배당한다. [...]


[...] 요점은 사유된 사물이 항상 사물을 포획하지 못하는 어떤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유된 사물은,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우리가 다른 것들을 간과하게 할 것이고 모든 종류의 방식으로 우리의 태도를 코드화할 일종의 논리나 문법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 내가 고고학에 매혹되는 이유 중 하나다. 여러분은 폐총이나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면서 [...] 우리의 사유된 사물들을 거역하는 파편과 조각을 만나게 된다. 여러분이 발굴하는 사물은 당혹케 하고, 흔히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며, 우리가 그것의 물질성 속 사물성과 우리의 사유된 사물 사이의 차이를 직면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우주가 매우 질서정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언제나 알고 있었어야 할 것이지만 아무튼 영구적으로 간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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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사물을 사유 속에 붙잡아 두려고 노력하는 이론화와 이론 없이 지낼 수는 없지만 [...], 우리의 사유가 사물과 사유된 사물 사이의 차이를 항구적으로 나타내고, 사물을 사유된 사물로 대체하는 것을 거부하며, 우리의 개념적 만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우리가 사유의 타자를 맞닥뜨리기를 요구하는 마주침의 공간 속에 처하기를 요청하는 그런 방식으로 이론화해야 한다. [...] 우리는 사물의 사유에의 환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동시에 사유된 사물이 가져다주는 그릇된 지배 감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든 종류의 물질성과의 마주침에 우리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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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