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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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보고스트: 오늘의 에세이-모방의 철학자로서의 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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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7.

 

- 아래 글은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가 100년 전에 탄생한 앨런 튜링(Alan Turing)에 관해 <아틀란틱(the Atlantic)>에 기고한 글을 옮긴 것이다.

 

-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에 관여하고 있는 이언 보고스트는 미합중국 조지아 공과대학(Georgia Insitute of Technology)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비디오게임에 초점을 맞춰 디지털 매체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 그는 사물들을 존재의 중심에 두는 객체지향 존재론에 관한 책, <<에일리언 현상학, 또는 사물의 입장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Alien Phenomenology, or What It's Like to Be a Thing)>>(2012)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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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만자: 모방의 철학자로서의 튜링

The Great Pretender: Turing as a Philosopher of Imitation

 

튜링의 유산은 이것이다. 각각의 것이 실재가 아니라 다른 관념, 장치, 개체, 또는 개념의 캐리커처를 가리키는 기만들의 중첩 연쇄의 유산.

 

현대 문명에 대한 앨런 튜링의 공헌을 과대평가하기는 어렵다. 수학에 대해서 그는 1차 논리의 한계점들에 관한, 거의 동시에 제시된 증명들 가운데 하나를 제공했다. 암호학에서 그는, 이차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에니그마 기계의 신호들을 해독한 전기기계 장치를 고안했는데, 그 장치도 이십 세기 전쟁과 정치에 대한 공헌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성취이다. 컴퓨터 과학에서 그는,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글을 제공하는 컴퓨터를 위한 토대를 형성하는 보편계산에 관한 이론과 그와 관련된 아키텍처 설계를 개발했다. 기계 지능에 관한 그의 해석은 심리철학에서도 그리고 인공 지능 분야의 토대로서도 영향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의 동성애에 대한 기소는 명백히 그것에 따른 그의 자살과 함께 사회적 정의와 공평에 대한 여전한 장벽들 가운데 하나를 적절하게 상기시켰다.

 

튜링 탄생 백주년인 올해, 충분히 가늠하기가 어려운 영향을 끼친 튜링의 생애와 업적을 기념하는 것은 올바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또한 우리는 작년에 그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한 주요한 문화적 인물인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으로부터 한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매클루언은 발명품들과 발견들의 구조, 그것들을 자극한 논리를 찾아서 그것들의 내용과  응용을 너머 바라보라고 가르친다. 매클루언에게 텔레비전은 오락, 교육, 또는 도덕적 부패를 위한 죽은 장치가 아니라 모든 감각에 스며드는 집단적 신경 체계였다.

 

매클루언의 렌즈를 통해 앨런 튜링의 유산을 바라보면 하나의 유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가장의 유형, 기만과 교체가능성의 유형이다. 튜링의 다양한 작업과 영향―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을 요약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가 기만의 철학자에 못지 않게 기만의 공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의 가장 명백한 사례는 이제는 유명한 튜링 검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튜링 검사는 1950년 <<마인드(Mind)>>라는 저널에 발표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튜링이 제안한 모방 게임에 대해 나중에 븉여진 이름이다. 그 논문은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곰곰히 생각하며, "기계"라는 술어와 "생각하다"라는 술어의 애매성을 고려할 때 이 의문에 응답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에 관해 충분히 숙고한다.

 

튜링은 사유 또는 지능을 모방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한 사람이 닫힌 문 뒤에 숨은 두 피험자와 텔레타이프로 소통하도록 요구하는 "모방 게임"을 제시한다. 첫 번째 피험자는 다른 한 사람이고, 두 번째 피험자는 기계이다. 각각은 자신이 실제로 인간이라는 점을 그 인간 심판에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한다.

 

모방 게임을 사유 또는 지능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 정의로서 제안하면서 튜링은, 누군가가(또는 무언가가)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관한 매우 오래된 의문에 대해 자신이 창조적으로 응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영리한 논리적 미사여구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일을 행한다. 사실상, 그는 정말로 지능에 관한 의문을 전적으로 회피하며, 그것을 사유의 산물들로 대체하는데, 이 경우에는 진짜 인간만큼 설득력 있게 그리고 흥미롭게 "인간다운 행동"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지능이 있다는 것은 인간처럼 조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또는, 훨씬 더 잘 표현하면, 지능―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이나 기계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보다 그런 과정의 결과, 즉 그것이 관찰자들과 대화자들의 내부에 만들어내는 경험이 더 흥미롭고 생산적인 대화 주제이다.

 

이것은 무대와 스크린 위에서 가장 쉽게 발견되는 일종의 기만이다. 배우의 솜씨는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 그가 역할을 연기하는 방식,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 등의 견지에서 가장 잘 서술된다. 결과가 창발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방법(예를 들면, 스타니슬라프시키 방식이나 마이스너 기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확실히 가능하지만, 아무도 그런 과정들을 그것들이 산출하는 결과로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배우의 연기는 그가 그 연기를 실행하는 논리로 환원될 수 없다.

 

튜링이 "인공 지능"이라는 술어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업은 그 분야에서 영향력이 엄청나게 컸다. 그럼에도, 인공 지능은 지능에 관한 튜링의 교훈―사유가 일어나는 과정들은 우연적이지 않지만, 또한 그것들은 직접적이지도 않다―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강한 AI"는 컴퓨터를 인간만큼 지능이 있게 만들고 싶어하는데, 흔히 인간의 인지 모형들을 창안하거나, 또는 훨씬 더 나은 방식으로 뇌 자체가 컴퓨터처럼 작동한다는 점을 논증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튜링은 결코 컴퓨터들이 지능이 있을 수 있다고도 주장하지 않았고, 그것들이 인공적이라고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컴퓨터가 모방 게임에서 어떻게 연기를 잘 할 수 있을지―그것이 흥미로운 방식들로 인간인 체할 수 있을지―고려하는 것이 마음을 끌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떤 종류의 기계들이 모방 게임의 최선의 피험자들인지에 관한 의문에 대해, 우리가 컴퓨터라고 부르는 디지털 기계들이 성공적인 모방을 위한 최선의 후보자라는 점은 이제 우리에게 명백하다.  1950년에는 이것이 그렇게 명료하지 않았으며, 그리고 튜링은 합리적 사유을 수행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기계적인 계산 장치들에 대한 제안의 긴 역사에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추상적 계산에 관한 그 자신의 이론과  튜링 기계로 알려져 있는 장치에서의 실행 덕분에 튜링에게는 컴퓨터 자체가 또 하나의 기만 사례를 나타낸다. 튜링이 제안한 형식에 따르면, 이 기계는 한 조각의 긴 테이프 위에 기호들을 조작하는 장치이다. 앞으로 움직이기, 지우기, 쓰기, 그리고 읽기 같은 단순한 명령들을 통해 그런 기계는 어떤 알고리듬도 실행할 수 있으며, 그리고 사실상 현대 CPU의 설계는 직접적으로 이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른 종류들의 기계들과 달리, 튜링 기계의 목적은 곡물 갈기 또는 철을 분쇄하기 같은 어떤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된 명령들을 통해 어떤 다른 기계이든 그것의 논리를 수행함으로써 그 기계를 흉내내는 것이다. 컴퓨터는 다른 기계인 체함으로써 작동하는 특수한 일종의 기계일 뿐이라는 점이 판명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컴퓨터들이 행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계산기, 장부, 타자기, 필름 스플라이서, 전화, 빈티지 카메라, 기타 등등의 기계인 체한다.

 

사유와 기계에 관한 튜링의 관념들을 조합하면, 우리는 설득력 있게 다른 기계들인 체하는 기계들을 발견한다. 튜링 검사는 인간의 지능에만 적용될 뿐 아니라, 튜링에게 지능이란 사실상 납득시키는 행위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장치 행동"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에도 적용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관계는 중첩적이고 회귀적인 것이 되었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현존하는 기계적 또는 물리적 기계들뿐 아니라, 잔존하는 다양한 형식의 계산 기계들도 흉내낸다. 로터스 1-2-3가 장부를 흉내낸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은 로터스 1-2-3를 흉내낸다. 아이폰이 노트패드를 흉내낸다면, 삼성 갤럭시 넥서스는 아이폰을 흉내낸다. 계산 기계가 발달함에 따라 그것도 변형되었으며, 그리고 오늘날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회사들의 일은 대체로 어떤 특수한 장치가 흉내내는 그런 종류의 기계는 우선적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일단 기만을 튜링의 조직 원리로 이해하면, 그가 다룬 모든 것에서 그것을 발견하지 않기가 어렵다. 계산은 무엇이든 어떤 다른 기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의미한다. 지능은 한 가지 흥미로운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에서 결정 문제에 대한 그의 해답은 튜링 기계 정지 문제를 그것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것을 수반한다. 튜링에게는 암호학도 기만에 해당했는데, 영국의 기계가 독일의 라디오 수신기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상 최근의 증거는 앨런 튜링의 고소와 죽음조차도 일종의 소급적 기만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가 형벌의 일부로서 화학적 거세―그의 동성애적 육체를 무성적 육체처럼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 여성 호르몬을 그의 남성 육체에 주입하는 처치―를 받았던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는, 부당한 고소로 고통받았던 튜링은 얼마 후에 청산가리로 중독된 사과를 섭취함―그것 자체가 <<백설공주>>의 유명한 장면을 흉내내는 행위―으로써 자살을 저질렀다고 말해왔다. 두말할 나위가 없이 비극적이었지만, 튜링의 자살은 사회적 정의에 대한 그의 공헌을 부분적으로 촉발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수학자를 순교자처럼 행동하게 만든 기계였다.

 

그러나 그의 탄생 백주년에 튜링 전문가 잭 코플랜드(Jack Copeland)는, 1954년 튜링의 비극적 종말에 대한 검시에서 제시되었던 증거는 그의 죽음이 자살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튜링은 자기 전에 정기적으로 사과 한 개를 먹은 것 같으며, 그리고 코플랜드에 따르면, 예모나 계획에 대한 어떤 증거도 부재한 상태에서 자살 평결은 확증될 수 없다.

 

컴퓨터의 중첩 논리가 그렇듯이, 튜링의 생애에서 하나의 기만을 밝히는 것은 항상 또 하나의 기만을 드러낸다. 1954년에 튜링의 죽음은 검시관이 자살을 확신하기에 충분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 결론을 의문시하는데, 법적 결론에 대한 증거 기준이 더 높거나, 또는 자살이 어떤 모습인지에 관한 관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확실히 1950년대의 컴퓨터는 현대의 사용자들에게 그것이 계산기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납득시킬 가능성이 오늘날의 컴퓨터보다 더 낮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1950년에 "계산기"는 소형 전자 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직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튜링의 유산은 이것이다. 각각의 것이 실재가 아니라 다른 관념, 장치, 개체, 또는 개념의 캐리커처를 가리키는 기만들의 중첩 연쇄의 유산. 그의 죽음에 대한 검시에서 튜링의 검시관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와 같은 유형의 인간에서는 그의 심적 과정들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결코 알지 못한다." 이 진술을 사소한 것, 겨우 동성애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범죄자로 간주하는 문화를 가진 국가의 영웅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기는 쉽다. 그러나 또한 그것을 다르게, 더 관대하게 볼 수는 없는가? 모든 사람―모든 것―은 나름의 유형의 것이고, 자체의 내부 과정들은 영원히 가려져 있으며, 자체의 본질은 자체의 행동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묘사될 뿐이다. 튜링의 유산의 상속자들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기만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우리가 여하튼 그것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