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후쿠오카 신이치: 오늘의 인용-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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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1.

 

 

- 아래 글은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의 과학에세이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 과학자들은 왜 세상을 잘못 보는 것일까>>(김소연 역, 은행나무, 2011)에 실린 세 문단(pp. 227-8)을 옮겨 놓은 것이다.

 

 

"어느 쾌청한 오후였던 것 같다. '어렸을 적'이라는 것 외에 그것이 얼마나 오래 전이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방에서 뒹굴며 책을 읽고 있었다. 더웠던 기억도, 추웠던 기억도 없다. 집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뭔가 핑계를 대고 학교에 빠졌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 지루해져 문득 레이스 커튼 너머로 환한 하늘을 바라봤다. 약간 열려있던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간질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커튼이 겹치면서 움직이는데 그 안에 오로라 같은 잔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커튼의 레이스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 가로세로 격자 무늬로 짜인 방충망 같은 모양이었는데 그것이 포개져 움직이니 완전히 다른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잔물결은 멈추지 않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렀다. 나는 잠시 그 흐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숨을 멈추었다. 흐름은 커다란 바람을 품고 회전하면서 부풀어올랐다. 그때, 정말 짧은 순간, 아름다운 소용돌이 모양이 빛을 발하며 떠올랐다.

 

다음 순간 그 모양은 사라지고, 바람은 멎고, 커튼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그저 평범한 하얀 커튼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음 바람을 기다렸다. 분명 그 후로도 바람은 몇 번인가 더 불어왔다. 하지만 그 완벽한 소용돌이 모양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