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알랭 드 보통: 오늘의 인용-집단적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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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3.

 

- 아래 글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일'에 대한 에세이 <<일의 기쁨과 슬픔(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정영목 역, 이레, 2009)에 실린 부분(pp. 157-160)을 옮겨 놓은 것이다.

 

- 책 소개글 일부.

 

10월 말의 어느 흐린 일요일,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부두에 선 채, 항구로 들어오는 거대한 화물선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다섯 남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일'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했다는 드 보통은 이 책에서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노래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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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네트를 쓴 여러 그룹의 엔지니어들이 위성 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현재 과학계의 삶이 개인적 에고의 제한 또는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 영광의 기회는 없었다. 전기가 기록되거나 일반인이 기억할 만한 이름으로 남을 전망이 없었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도, 심지어 어떤 상업적 또는 학술적 조직도 명예를 독차지할 수 없는 집단적 기획이었다.

 

천재들이 관측소나 작업장에서 일로매진하여 과학사의 방향을 바꾸던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는 천체물리학자와 항공 엔지니어들이 어느 한 사람을 우리 시대의 갈릴레오로 띄우려는 미디어의 시도에 저항하면서 공동 실험실에서 작은 수수께끼를 10년 동안 함께 공략하는 소박한 시대에 들어섰다. 무중력 상태에서 은-아연 배터리의 수행 능력을 완벽하게 다듬는 일에만 매진하는 회사는 위성 전기공학의 또 다른 수수께끼를 다루는 일로 시야를 확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과학자 한 사람이 고온에서 티타늄의 속성을 살피거나 점화 시점에 수소가 보이는 반응을 살피는 일에 평생을 바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인류에 기여한 결과의 총합은 <<고급 추진 방법 연구 저널Journal of Advanced Propulsion Methods>> 한 호로 요약이 될 수도 있다.

 

[중략]

 

천재들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화려함과 소설적 잔재미는 물론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대를 졸업하고 집단적 노력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전보다 더 나아지고 더 편해진 면도 생겼다고 볼 수 있다. 행성 탐사의 운명이 요하네스 케풀러의 부인 바르바라의 기분이나 그의 후원자였던 루돌프 2세의 성향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좌우되어 위기에 빠지는 일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독일 천문학자는 그와 비슷한 많은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쿠루의 음울한 거리 한 곳에 자신의 이름을 제공하기는 했다. 한쪽은 세탁소와 접해 있고 또 한쪽은 불타버린 인터넷 카페와 접해 있는 사각형의 버려진 땅이었다. 케풀러 뒤에 중요한 발견을 한 천재들의 후손이 이 광경을 본다면 조상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순순히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