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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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신이치: 오늘의 인용-생명=동적 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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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4.

 

 

- 아래 글은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의 과학에세이 <<생물과 무생물 사이>>(김소연 역, 은행나무, 2008)에 실린 부분(pp. 235-6)을 옮겨 놓은 것이다.

 

 

"기계에는 시간이 없다. 원리적으로는 어느 부분부터든 만들 수 있고, 완성된 다음에라도 부품을 제거하거나 교환할 수 있다. 기계에는 재시도가 불가능한 일회성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 내부에는 이미 접혀 다시는 펼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 번 접히면 다시는 펼칠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생명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GP2 녹아웃 마우스는 우리 안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다. 그러나 그 정상적인 모습은 유전자의 결여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즉 GP2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GP2에는 세포막에 대한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생명이라는 동적 평형이 어느 순간에 GP2의 결여를 교묘하게 보완한 결과다. 눈앞에 보이는 '정상'이란 결여에 대한 다양한 연쇄적 응답과 적응, 즉 반응의 귀추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평형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한 개의 유전자를 잃은 마우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