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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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샤비로: 오늘의 인용-빚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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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8.

 

- 아래의 글은 스티븐 샤비로(Steven Shaviro)의 <<접속, 또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Connected, or What It means to Live in the Network Society)>>(2003)의 160-162쪽에 실린 글을 옮겨 놓은 것이다.

 

 

과 죽음.

빚(debt)과 죽음(death)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그리고 그것은 단어들이 영어로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니체는 정의라는 바로 그 관념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원시적인 인간 관계, 즉 판매자와 구매자,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의무는 물질적 상환 의무의 은유적 확장일 뿐이다. 그리고 형벌은 이런 의무를 강제하는 방식으로서 발생했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이자를 붙여서, 상환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점과 선수금을 보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자신의 채권자를 공격한 빚쟁이는 범법자"이고, 그래서 그에 알맞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사형은 이런 강제적인 빚 상환의 궁극적인 형식이다. 어떤 다른 식으로도 자기 빚을 상환할 수 없다면, 자기 목숨을 채권자들에게 몰수당함으로써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버로스(Burroughs)는 비슷하게 연관짓는다. 그는 "스콧(Scott)과 같은 옛 소설가들이 빚에서 벗어나는 길을 항상 쓰고 있던" 방식을 상기한다. 비슷하게, 그는 현대적 소설가는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쓰기 시작한다"고 시사한다. 그것은 결국은 항상 실패하는 노력이다. 마침내 그 작가는 "이야기의 끝, 말로 행해질 수 있는 것의 끝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죽음은 "정신적 파산 선언에 상당한다"고 버로스는 말한다. 여러분의 모든 계정을 최종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니체와 버로스 둘 다에게 죽음은 빚의 진전에 있어서 마지막 시기이다. 죽음은 그것의 절대성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아무 등가물도 없는 것, 끝없는 상환의 연쇄에 대한 등가물이 된다.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죽음은 결코 상환되지 않을 자금을 대신하는 즐거운 보상을 제공한다. 그리고 채무자에게 죽음은 최소한 출구, 끝나지 않는 의무의 지옥으로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죽음 속 삶

그러나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빚과 죽음 사이의 관계가 역전된다. 죽음이 빚을 해결하고 말소하는 대신에 빚이 죽음의 순간을 끝없이 연장한다. 빚―그리고 특히 계속 축적되는 복리 이자―의 "나쁜 무한성"이 죽음의 유한성과 최종성을 대체한다. 여러분은 재정적 또는 실제 자살을 저지름으로써, 물질적 또는 정신적 파산을 선언함으로써 더 이상 상황을 종식시킬 수 없다. 그런 빠져나갈 구멍은 제거되었다. <<누아르(Noir)>>에서 묘사된 포스트모던한 조건은 오히려 "빚을 지고 있어서...구멍 속에 매우 깊이 빠져 있어서, 매우 많은 돈을 갚아야 해서, 여러분 자신의 죽음이 여러분을 해방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터(Jeter)의 채무자들은 사실 살아있지 않다. 그들은 쾌락이나 정념이 없고, "기억, 꿈, 희망"의 기분 전환이 없이 무정하다. 그들은 정보자본주의 시대에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순수한 상업적 갈망"을 더 이상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무덤의 평화도 박탈당한다. 그들은 결코 쉴 수 없다. 그들은 일밖에 하지 않으며, 일하기 위해서만 생존한다. 더 나쁜 것은, 이런 노동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채무자들의 수입은 일반적으로, 원금을 갚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이 죽었다면 짊어지고 갔을 빚 부담이 얼마이든 그것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누아르>>의 세계에서 채무자들은 저작권 위반자들이 당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사형에 처해지지 않는데, 그들은 쾌락만큼이나 고통에도 둔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콜리지(Coleridge)의 죽음-속-삶의 비참함을 견뎌야 한다. 또는 블랑쇼(Blanchot)가 다음과 같이 서술한 미묘한 형이상학적 고문을 견뎌야 한다. "죽는 것이 죽음으로 귀결되지 않는 병, 더 이상 죽음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지 못하는 병,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더 이상 오지 않는 병."  지터는 삶과 죽음, 또는 인류와 "생기가 없는 물질"을 가르는 "경계 현상"이 "지워진" 상황을 서술한다. 살아 있는 죽은 자들은 "거리를 채우는 쓰레기와 돌무더기와 전소된 건물 잔해로 내려 [가는] 연속체 위의 한 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