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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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 오늘의 인용-마르크스주의의 퇴조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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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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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체제에 대한 견해를 수정한 대다수 급진주의자들이 단순히 주변의 면화공장 수가 줄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구레나룻이나 머리띠와 함께 마르크스주의를 던져버린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맞섰던 체제가 너무 강고해서 깨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가능성에 대한 환멸이 결정적이었다. [...] 노동계급 운동은 너무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고 정치적 좌파는 너무 사납게 격퇴당한 나머지 이제 미래는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 듯했다. 좌파 일부에게는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소비에트 진영의 몰락도 이런 환멸을 심화하는 데 기여했다. [...] 이른바 거대서사를 일축하고 역사의 종말을 의기양양하게 선언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를 배태한 것은 무엇보다 미래가 이제 그저 더 많은 현재일 뿐일 거라는 확신이었다. [...]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신용을 떨어뜨린 것은 무엇보다 스멀스멀 엄습한 정치적 무력감이었다. 변화가 의제가 아닌 듯이 보일 때 변화에 대한 신념을 유지하기란 힘든 법이다. [...] 어찌 되었든 불가피해 보이는 것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한 것이 얼마나 불가피한지 절대로 알 수 없다. 소심한 탓에 예전의 관점을 20년 더 꾸역꾸역 고수했던 사람들이라면, 어찌나 의기양양하고 난공불락이던지 2008년 번화가에 현금인출기를 열어두기도 힘겨워하는 자본주의를 목격했을 것이다. [...] 역사의 종말은 이제 종말을 맞이했다. 사정이 이러하지 않다 해도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모름지기 패배에 익숙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이보다 더한 파국을 이미 알고 있다. 오로지 탱크를 더 많이 가진 덕일 뿐이라 해도, 정치적 승산이란 늘 권력을 가진 체제 쪽에 있는 법이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의 무모한 비전과 끓어 넘치던 희망 탓에 오히려 이런 식의 하락이 그 시대의 생존자들에게는 유난히 입에 더 쓴 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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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황정아 옮김, 길, 2012), pp. 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