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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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아 롬브로조: 오늘의 논평-우아함이 윤리를 이긴 어느 과학적 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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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

 

우아함이 윤리를 이긴 어느 과학적 추문

Elegance Trumps Ethics In A Scientific Scandal

 

―― 타니아 롬브로조(Tania Lombrozo)

 

지난 금요일[2013년 4월 26일] <<뉴욕타임즈>>에 게재된 주목할 만한 기사에서 유디지트 바타차르제(Yudhijit Bhattacharjee)라는 필자는 55편 이상의 과학 논문에서 부정을 저지른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디데릭 스타펠(Diederik Stapel)의 흥망을 논의한다.

 

나는 스타펠에 대해 거의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의 조작 배후에 놓인 충동을 깨닫고는 놀랐다. 그 기사의 표현에 따르면 이렇다.

 

스타펠은 자신의 사기가 야망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정은 그것보다 더 복잡하다고 그는 내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사회심리학을 사랑하지만, 명료한 결론을 거의 낳지 않는 실험 데이터의 혼란스러움에 실망했다고 역설했다. 우아함과 질서에 대한 평생에 걸친 강박 때문에 저널들이 흥미롭다고 여기게 되는 매력적인 결과들을 꾸며냈다고 그가 말했다. "그것은 미학,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였습니다. 진리 대신에 말입니다." 그는 말했다.

 

스타펠이 요약한 저널 편집자들로부터의 응답은 이렇다. "사실상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빼시오. 더 단순하게 만드시오.'" 그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구조, 단순성, 아름다운 줄거리"―을 제공하는 데 뛰어났다.

 

내 자신의 연구의 많은 부분이 사람들이 어떻게 설명을 생성하고 평가하는지에 집중한다. 스타펠이 옳다. 사람들은 단순하고, 포괄적이며, 우아한 설명들을 갈망한다. 자신의 설명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내 자신의 연구에서 나는, 사람들이 어떤 복잡한 설명에 대한 증거가 더 많이 있을 때에도 흔히 단순한 설명을 채택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내었다[...].

 

1918년의 일식이 중추적인 증거를 제공하기도 전에, 상대성 이론은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틀림없이 참이라는 점을 알았다고 아인슈타인이 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 단순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때때로 과학은 우리가 여태까지 상상했던 것을 넘어서는 아름다고 우아한 발견들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은 우리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 때때로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T. H. 헉슬리는, 과학의 큰 비극은 "추악한 사실에 의한 아름다운 가설의 살해"라고 적었다.

 

많은 경우에, 선호하는 가설들이 허우적대는 것을 바라보게 되면 과학자들은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론들을 재구성하며, 자신들의 발견 결과들에 대한 이전의 해석들과 씨름하는 데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것은 좋은 일, 진보의 엔진일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설명을 향한 충동이 어두운 면―과학적 정직성에 (원컨대) 드물지만 진정한 위협을 초래하는―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은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