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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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트 셀드레이크: 오피니언-새로운 과학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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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7.

 

새로운 과학혁명

The New Scientic Revolution

 

―― 루퍼트 셀드레이크(Rupert Sheldrake)

 

2012년이 슬그머니 가기 전에 올해가 토머스 쿤(Thomas Kuhn)의 영향력이 대단히 큰 책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가 출판된지 오십 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기억할 가치가 있다. 그 책 자체가 혁명적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낱말을 들을 때면 거의 다 쿤의 책이 배경에 놓여 있다.

 

쿤은, 과학이란 그저 합리적인 진리 추구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점, 야망, 감정, 그리고 동료집단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패러다임은 실재에 관한 이론, 연구가 수행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모형, 그리고 전문가 집단 내의 합의이다. 어느 주어진 시점에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변칙 사례들은 거부되거나 무시당하며, 합의된 틀 내에서 '정상과학'이 계속 작동한다. 그런데 과학혁명의 시기에는 '한 개념적 세계관이 다른 한 개념적 세계관으로 대체되'고, 이전에는 설명되지 않았던 변칙 사례들을 포함하도록 틀 자체가 확장된다. 주요한 패러다임 전환들 가운데 잘 알려진 몇 가지 사례는 천문학의 코페르니쿠스 혁명,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이십 세기 물리학의 상대성 혁명과 양자 혁명이다.

 

더 이상의 패러다임 전환들이 일어날 것인가? 과학이 계속 진전되려면 그것들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경제적 세계와 금융적 세계, 정치적 세계에서 오랫동안 당연시되어 온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붕괴되는 때에 과학에서는 오랫동안 믿어져 온 유물론적 패러다임이 위기에 처해 있다.

 

물리학에서는, 관찰 가능한 것들에서 멀어져 가상적인 것들을 향하는 주요한 전환이 있었다. 21세기가 시작한 이래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물질과 에너지는 우주의 4%로 강등되었다. 나머지는 가상의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적 실재의 96%의 본성은 문자 그대로 모호하다. 한편, 관찰 가능한 물리적 영역은 모든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가상 입자들이 출현하고 사라지는 영점 에너지장 또는 양자 진공장으로 불리는 방대한 에너지 바다에서 부유하고 있다. 여러분의 눈은 여러분의 홍체가 빛을 흡수할 때 비등하는 가상 광자들을 통해 이 글을 읽고 있으며, 그리고 신경 충격이 시신경 위를 움직이고 여러분의 뇌에서 전기 활동의 패턴들이 일어날 때, 모든 것은 여러분의 내부와 주위에 존재하는 진공장 내의 대응 활동 패턴들에 의해 매개된다.

 

바위 같은 명백히 물리적인 객체의 질량도 가상의 장에서 생멸하는 가상 입자들에서 비롯된다.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에서 궁극적으로 모든 질량은 모든 곳에서 일정한 세기를 갖는 보이지 않는 힉스 장으로 설명된다. 힉스 보존은 주변의 힉스 장에 가상 입자들의 구름을 생성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상 입자들이 다른 양자 입자들과 상호작용하여 그것들에게 질량을 부여한다.

 

현대의 이론물리학은 각각 10차원과 11차원인 초끈 이론과 M 이론이 지배한다. 이 이론들은 시험받지 않은 상태이며 현재는 시험할 수 없다. 한편, 많은 우주론자들은 우리 우주 외에 수조 개의 우주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다중우주 이론을 채택했다. 이것들은 흥미로운 추측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구 패러다임의 유물론적 과학이 아니다. 실재는 녹아서 가상계의 물리학으로 되었다.

 

의식 연구에 있어서 유물론은 새로운 판본의 물활론 또는 '범심론'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전자 같은 모든 자기조직적 물질 체계들은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심적 측면도 있다. 최근에 출판된 책 <<마음과 우주: 유물론적 신다윈주의적 관념은 왜 거의 확실히 옳지 않는가>>에서 무신론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은 신을 환기할 필요가 없는 그 어떤 실제적인 자연 철학에 대해서도 범심론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생물학에서는, 유전자와 분자생물학이 곧 생명의 본성을 설명할 것이라는 이십 세기 말의 확신에 찬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아무도 식물과 동물이 어떻게 수정란에서 발달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2000년 유월에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에 의해 처음 선언되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기술적 승리 이후에 대단히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예견했던 것보다 인간 유전자들의 수가 훨씬 적었는데, 100,000개가 아니라 23,000개에 불과했다. 성게의 유전자 수는 대략 26,000개이고 쌀의 유전자 수는 대략 38,000개이다. 키 같은 특질들을 예측하고자 한 시도들은 유전자들이 개인간 변이의 80%라는 예상치가 아니라 대략 5%만 차지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무한한 확신은 '손실된 유전율 문제(missing heritability problem)'로 대체되었다. 유전체학과 생명공학의 투자자들은 수십 억 달러를 잃었다. 생명공학산업에 관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최근 보고서는 "여태까지 기업들 가운데 매우 작은 일부만 수익을 올렸었다"고 밝혔으며, 획기적인 발견에 대한 약속들이 어떻게 거듭해서 실패했는지 보여주었다.

 

유물론적 과학은 단순하고 분명한 듯 보였다. 그런데 이제 구식의 유물론적 실재는 녹아서 다차원의 가상 물리학으로 되었다. 범심론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철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생물학자들은 분자적 층위로 환원될 수 없는 '체계'와 '창발적 특성'에 관해 생각해야만 한다.

 

쿤의 통찰, 그리고 과학학에서 이어진 진전은 그저 과거의 혁명들을 살펴보는 역사적인 관련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하건대, 그것들로부터 우리는 오늘을 알게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혁명의 와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