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셰리 터클: 오늘의 인용-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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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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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세세한 삶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일종의 소명이라면, 나는 추억이 서린 벽장 속 물건들의 냄새와 느낌 속에서 그 소명을 찾았다. 벽장에서 나는 세상과 내가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곰팡내 나는 책, 사진, 꽃 장식, 장갑을 발견했다. 그 안에서 옛 물건을 단서로 삼아 그간의 비밀을 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파리에 있을 때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브리콜라주(bricolage)를 가리켜 긴밀한 재료들을 결합하고 또 결합하여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레비-스트로스에게 물질적인 것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자, [...] 생각을 떠올리기에 좋은 사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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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사물을 실용적인 것이나 아름다운 것, 필수품이나 헛된 사치품으로 여긴다. 반면 사물을 정서적인 삶의 동반자라든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로 생각하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다. 의미 있는 사물(evocative object)이라는 개념은 이런 두 개의 낯선 접근법을 합한 것으로, 우리와 사물 사이에 생각과 느낌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물을 통해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사물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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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물들의 한가운데서 산다. 물질문명은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감정과 생각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사물들은 최근 들어서야 그에 합당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물이 지닌 힘을 알기란 쉽지 않다. 사물을 정서적인 삶의 중심으로 여기길 꺼리는 모습 이면에는 무절제로 비하된 유물론(materialism), 또는 하비즘(hobbyism)이나 물신숭배(fetishism), 도착증으로 비하된 유물론을 지지하는 듯이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사물을 생각의 중심이라고 인식하기를 주저하는 모습 이면에는 서양 전통 아래에서 형식적이고 명제적인 앎의 방식을 중시하는 태도가 있었다. 과학 분야에서는 확고하게 추상적인 추론이 예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사고방식이라고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추론이 지식과 동의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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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사고방식은 1980년대부터 점차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특히 추상적인 사고만을 정통으로 인정했던 과학계 내에서도 하등한 사고방식으로 여기는 일이 줄어들었다. 과학 실험실은 구체적이고 임기응변의 방식으로 발견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비춰지다가, 나중에야 널리 검증된 형식주의(formalism)를 추구하는 장소로 인식이 전환되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과학의 대상을 촉각적이고 놀이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다고 밝힌 바 있다. 페미니즘 학자들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구체적이고 맥락적인 추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실제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구체성의 연구가 점차 널리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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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물은 [누군가의] 인생에 들어오게 된 특정한 순간과 환경으로 인해 강한 흡인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물은 본래부터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이를 테면 기괴한 것(uncanny)이라고 부를 만한 성질을 띤 사물이 그렇다. [...] 기괴한 것은 엄청나게 두렵고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섬뜩할 정도로 왜곡된 무언가를 가리킨다. [...] 기괴한 것은 우리를 안으로 끌어들이고 동시에 밖으로 내몰기도 하는 복잡한 경계를 나타낸다. [...]

 

의미 있는 사물을 통해 우리는 현실 안에서 철학을 접하게 된다. 우리가 사물에 관심을 기울일 때, 의사와 철학자, 심리학자와 디자이너, 예술가와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일상의 경험 속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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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리 터클(Sherry Turkle),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Evocative Objects)>>(정나리아, 이은경 옮김, 예담, 2010), pp. 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