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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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언 이바키프: 오늘의 인용-내재적 자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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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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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자연주의(immanent naturalism)"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궁극적인 설명, 비역사적 힘, 또는 초월적 틀을 추구하지 않는 사유 전통을 가리키는 정치학자 윌리엄 코널리(William E. Connolly)의 술어다. 오히려 내재적 자연주의는 우리 같은 필멸자들이 경험하는 대로의 세계 속에서 충분한 의미를 발견한다.

 

세계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더 불가사의하며, 변화와 창발적 복잡성, 혁신에 더 본원적으로 열려 있으며, 그리고 그런 풍성함과 불가사의에 우리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것들을 위해 삶의 경험을 심화시킬 수 있는 우리 능력을 확대한다는 것이 [내재적 자연주의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재적 자연주의는 우주를 근본적으로 열려 있는 다원론적인 것으로 여기며, 우주를 전적으로 파악했다는 결론을 비롯한 그 어떤 폐쇄 형식도 삼가는, 지구와 생명을 포괄하는 윤리를 가리키는 또 하나의 술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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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널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다양하게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니체, 푸코, 그리고 들뢰즈 같은 내재적 자연주의자들은 우선 윤리를 세계에 대한 애착 또는 자신들에게 주입된 정체성을 포함하고 넘어서는 존재에 대한 감사에 정초한다. 우리는 먼저 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먼저 우리는 어느 정도 이미 우리에 주입되는 정체성을 넘어서는 풍부한 생명에 대한 배려를 복돋우고 계발하는 방법을 묻는다." 코널리는 "본능적인 감사"와 "존재의 변화 무쌍한 다양성에 대한 배려"의 안내를 받는 것에 관해 적고 있으며, 그의 다양한 글은 그것이 정치와 문화에 대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와 어떤 방법과 기법으로 그것을 향상 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함의들을 이끌어낸다.

 

[...] 코널리의 핵심 주장은, 그가 기대는 스피노자주의적 전통과 들뢰즈적 전통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들뢰즈의 경우에, 존재하는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 우주의 구조, 즉 생성의 구조에서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그것이 결국 현실화되든 아니든 간에)이 전부다. 그러므로 자연주의는 경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현존하는 것들만을 다룰 필요가 없다. 자연주의는 세계가 과정이며, 우리 자신처럼 편파적이고 상황에 처한 관찰자-참여자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인식 불가능한 것도 세계의 일부라고 깨닫는 문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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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드리언 이바키프(Adrian Ivakh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