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존 그레이: 오늘의 인용-끔찍한 불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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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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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시신을 육면체의 무덤에 봉인해 넣게 만든 희망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칼로리 식단으로 노화를 방지하거나 인간의 정신을 슈퍼컴퓨터에 업로드 하거나 우주 공간으로 이주하거나……. 영원한 삶을 열망하면서, 인간은 여전히 "죽음이 규정하는 동물"로 남아 있다.

 

과학적 탐구의 최종 결과는 인류가 바뀔 수 없는 그 자신의 존재로 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학은 인류가 자신의 운명을 향상시키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환경을 훼손한다. 과학은 죽음을 극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대량 살상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기술들을 만들어 낸다. 이 중 어느 것도 과학의 오류는 아니다. 단지 과학이 마법이 아님을 보여 줄 뿐이다. 지식의 성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의 범위를 확장시켜 준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지는 못한다.

 

[...]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것은 곧 자신의 생기 없는 이미지만을 보존하려 하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다면, 부활하고 싶거나 사후의 낙원에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죽을 수 없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유토피아처럼 내세는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다. 계절이 없으면 그 무엇도 익어서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나뭇잎은 색이 변하지 않고 하늘도 공허한 파란색에서 다른 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죽지 않으면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는다. 영원한 존재는 영원한 고요함이다. 무덤 속의 영원한 평화다. 불멸을 추구하는 자들은 혼돈에서 탈출할 길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들 자체가 혼돈의 일부다. [...] 불멸은 빈 스크린에 흐릿한 영혼이 투사된 것일 뿐이다. 그것보다는 낙엽이 떨어지는 쪽에 더 많은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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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그레이(John Gray), <<불멸화위원회(The Immortalization Commission)>>(김승진 옮김, 이후, 2012), pp. 2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