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샤를 단치: 오늘의 인용-책과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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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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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있다. 그 생김새와 냄새는 물론이고, 그것이 전해 준 약속까지 모두 다 사랑한다. 떄로 그 책들은 너무나 흉측하게 변해 있기도 하고, 역겹고 실망스러운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래도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참 신기한 것은, 흰색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빼곡히 박혀 있는 그 평범한 물건들에서 매번 하나의 신세계가 솟아나온다는 사실이다. 책은 결코 삶과 대립하지 않는다. 책은 인생이다. 진지하고 난폭하지 않은 삶, 경박하지 않고 견고한 삶, 자긍심은 있되 자만하지 않는 삶, 최소한의 긍지와 소심함과 침묵과 후퇴로 어우러진 그런 삶이다. 그리고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가 위대한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펀드매니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권력자들에게 친절한 시선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뭔가 다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독서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점을 모른다. 그럼에도 폐로 호흡하고 뇌의 주름들을 조이면서 오늘도 저마다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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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아갈 때 나는 죽음과 경주를 한다. [...] 왜냐하면 독서의 본질적인 동기이자 유일한 이유, 그것은 바로 죽음과 당당한 결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과의 결투를 지지하며 앞으로 이끄는 용사들은 바로 작가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반기를 든 씁쓸한 무리, 결국 비인간적인 것과 그리 멀지 않은 반민주주의의 무리는 이 전쟁에서 패배를 선언한다. [...]

 

우리는 항상 실패했지만 결코 굴복하지는 않았다. 작가와 독자는 한 팀이 되어 실패를 향해 나아간다. 왜냐하면 승리는 항상 죽음에게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랫동안 죽음에 저항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이다. 멸망한 제국의 이름은 몰라도, 천 년 전 시인들의 작품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죽음은 망각이며, 특히 단순화다. 반면 독서는 죽음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을 회복시킨다. 무덤을 꺾을 유일한 경쟁상대는 결국 도서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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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이 사라진] 정보화된 미래는 권력자들에게 더 충실히 봉사할 것이고, 그럴수록 인류의 정신은 더욱 조그만 상자 안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인류는 자연으로 되돌아가 짐승들과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 미개하고 착하고 순한 독재자가 곳곳에 설치된 총천연색 화면들 속에서 미소를 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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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 단치(Charles Dantizg), <<왜 책을 읽는가>>(임명주 옮김, 이루, 2013), pp. 25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