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마르첼로 글라이저: 오늘의 에세이-많아지면 달라진다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3. 7. 6.

 

많아지면 달라진다: 다루기 힘든 자연의 복잡성

More is Different: Nature's Unruly Complexity

 

―― 마르첼로 글라이저(Marcelo Gleiser)

 

환원주의에 따르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모든 체계는 자체의 기초적인 구성요소들의 거동의 견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초점은 물리적 연쇄의 가장 아래 층위에 집중된다. 물질은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전자, 양성자, 그리고 중성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그런 연쇄가 여기서 끝나는지 아닌지 모른다.

 

생물학적 층위에서 유기체는 장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기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는 유기 거대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분자는 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 등등.

 

피자의 층위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속 물질적 조직의 각 층위는 그것 자체의 견지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으며 전체를 설명하는 기초로 환원될 수 없다.

 

더 급진적인 환원주의자들―십팔 세기의 경솔한 실재의 기계화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은 모든 거동들은 소수의 기본적인 물리 법칙들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가장 기초적인 층위에서 이런 법칙들을 밝혀내면, 우리는 조직적 복잡성의 더욱 더 높은 층위들로 외삽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환원주의자들은 이런 외삽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또는 알아야 한다). 쿼크와 전자들이 어떻게 거동하는지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우라늄 핵이 어떻게 거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고, 유전전 생식이나 뇌가 작동하는 방식를 이해하는 데에는 훨씬 더 그럴 것이다. 철저한 환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원칙의 문제―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은 기초 과학의 최종 목표, 즉 아원자적 층위에서 물질의 거동을 좌우하는(나는 할 수 있는 한 "서술하는"이라는 술어를 사용할 것이다) 대칭성과 법칙들의 발견이라는 선언―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가 과학이 처음 400년 동안 채택한 환원주의적 접근방식의 위업을 찬양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항상 심화되고 있는 우리의 이해와 마찬가지로, 지난 사 세기 동안의 기술적 혁신 대부분도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우리의 디지털 혁명은 원자와 아원자 입자들을 연구하는 물리학 분야인 양자역학의 부산물이다. 이제 우리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감에 따라 난점들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얼른 검토하자.

 

우리는 가장 단순한 화학 원소, 즉 단 하나의 양성자와 단 하나의 전자로 이루어진 수소 원자의 거동을 매우 정확히 서술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우리가 미묘한 보정들―예를 들면, 전자가 상대론적 속력(즉, 빛의 속력에 가까운)으로 양성자 주위를 공전한다는 점이나, 또는 전자의 고유한 회전(즉, 스핀)이 양성자의 자기력과 상호작용하는 비슷한 자기력을 초래한다는 점을 부가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포함하려고 시도할 때 어려움이 잠재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섭동 이론(perturbation theory)"―원자의 허용된 에너지들에 작은 변화를 부가하는 근사적 도식―을 사용하여 이런 효과들을 고려한다.

 

또한 물리학자들은 주기율표의 그 다음 원자, 즉 헬륨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데, 그것은 헬륨이 나타내는 고도의 대칭성 때문이다. 그런데 복잡성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생명은 매우 빠르게 복잡해진다.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과감하고 덜 효율적인 근사 도식들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핵 속의 양성자들과 중성자들 사이의 상호작용들(이것들은 상이한 힘, 즉 강한 핵력을 요청한다)을 포함하지 않으며, 게다가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쿼크와 글루온들―강한 상호작용들의 원인이 되는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훨씬 더 무시된다.

 

물리학은 근사의 기예다.

 

우리는 복잡한 체계들을 벗겨 자체의 꾸밈없는 본질적인 것들을 드러낸 다음에 우리가 시작한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표를 훼손하지 않은 채 가능한 한 단순한 술어들로 그것들을 모형화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새로운 일단의 법칙과 접근방식들이 필요할 정도로 복잡해질 때까지 잘 작동한다.

 

복잡성의 그 다음 층위에 놓여 있는 것은 원자들의 조립체인 분자들이다. 매우 거친 방식으로 서술하면, 모든 화학 작용들은 전하의 불균형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다. 얼마나 많은 분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일례로 생화학을 고려하자. 단백질은 기저에 놓인 DNA 코드에 의해 지정된 아미노산들의 고리다. 20개의 상이한 아미노산들이 존재하고 전형적인 단백질은 약 2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단백질의 수는 대략적으로 20^(200)개다. 단백질의 길이, 즉 아미노산들의 가능한 선택의 수를 증가시키면 조합적 폭발이 일어난다. 물리학자 월터 엘사서(Walter Elsasser)는 10^(100)―구골(1에 0을 100개 붙인 숫자)―보다 더 큰 수를 서술하기 위해 "엄청난(immense)"이라는 술어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가능한 단백질의 수는 확실히 "엄청난" 수다. 우리는 생명체들에서 구현된 작은 부분집합을 볼 뿐이다.

 

10^(100)이라는 수는 임의적이지 않다. 엘사서는 10^(100)개의 분자들을 포함하는 목록은 우주의 모든 물질보다 더 많은 물질을 함유하는 컴퓨터 메모리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더 나쁜 점은, 그 목록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나이, 즉 137억 년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것들을 알 수는 없다.

 

최소한 화학자와 생화학자들은 결코 실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탐구되어야 할 미지의 특성들을 지닌 엄청난 수의 새로운 분자들이 존재한다. 유전자 조합, 세포 유형, 그리고 심적 상태들의 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물리 법칙들에 기반을 둔 상향식 접근방식으로 복잡한 생명분자들의 거동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질적 조직의 한 층위에서 그 다음 층위로 이행하는 것은 연속적이지 않다. 물질적 조직의 상이한 층위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법칙들, 즉 일반적으로 "복잡성 법칙들"로 요약되는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요구된다. 이것은 적과 동지 둘 다를 끌어당기고 있는 얼마간 참신한 연구영역이다. 한 전문서는 온라인으로 입수할 수 있다.

 

1972년에 노벨상 수상자 필립 앤더슨(Philip Anderson)은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라는 예지적인 에세이를 발표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환원할 수 없는 물리 법칙들의 이런 중층화를 지지하는 논변을 전개했다. 우리는 상향식으로 더 높은 층위의 법칙들을 연역할 수 없다. 환원주의적 프로그램은 벽에 부딪쳤다.

 

그렇다면 환원주의의 시대는 끝났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런 새로운 견해에 기반을 둔 상보적인 접근방식에 대한 필요성이 명백히 존재한다. 미결 문제는 새로운 프로그램, 즉 복잡성 법칙들의 유한 집합을 획득하는 프로그램이 실행 가능한지, 아니면 여전히 환원주의의 아이인지 여부다.

 

아마도 자연의 다루기 어려움은 엄청난 수의 법칙들을 낳을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탐지할 수 있는 체계들을 서술하는 법칙들을 식별하는 일일 것이다.